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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날마다 새로운 하루(신4:40-44)

by 금빛돌 2024. 4. 12.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40절에 있습니다.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율법)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율법은 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함으로 여러분도 복을 받고, 여러분의 자손도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율법을 선포하시면서 모세는 40-43절까지 도피성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피성에 관한 말씀은 율법을 다 선포하고 난 다음에 주어도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모세가 율법에 관해서 말씀을 전하다가 갑자기 도피성에 관한 말씀을 하겠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도피성을 세운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2.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도피성은 원한이 없이 부지 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도피한 자가 생명을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또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41절에 “41. 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43.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민수기 19장에 보면 19: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 성읍은 가나안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서 그 중간에 있는 성읍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어디서라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이 도피성은 누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 사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그리스도께로 도피하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모세가 율법을 선포하다가 갑자기 중에서 도피성에 관한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율법대로 살려고 하지만 우리가 그 율법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내가 율법대로 완전하게 살아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율법의 형식만 지키고 율법을 지켰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나가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가 주어집니까?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불의하지만 깨끗하게 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 회개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이 선포됩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라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면 우리에게는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면 우리가 깨끗합니까? 여전히 더럽습니까?

깨끗합니다.

인도에 가면 갠지스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물에 몸을 씻으면 죄가 깨끗해진다고 합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더러운 강이 갠지스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피를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나를 돌아보니 내가 실수한 것이 있습니다. 정말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잘못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얼마든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는 과거의 죄가 없습니다. 과거에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우리의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같은 죄를 짓습니다. 또 실수합니다. 넘어집니다.

그래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얼마든지 예수님을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 없다고만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다시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찬수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재미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네비게이션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실수해서 잘못 길을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옆에 타고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왜 이렇게 길을 잘못갔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경로가 이탈이 되었으면 또 다시 다른 길을 인도합니다. 이렇게 네비게이션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실수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최상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요셉의 경우가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사춘기 때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하나님은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하여 회개하면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를 또 다른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 우리가 잘못하여 회개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 과거라는 것은 없습니다. 과거를 우리가 현재에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과거에 잘못한 것만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 그러면 그 사람은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하루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새로운 날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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