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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약자의 하나님(출22:23,마12:17-21)

by 금빛돌 2024. 2. 1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사람이 만든 신이 아니라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신을 만든다면 절대 약자의 신을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강자의 신들을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신에게 가기 위해서 자신이 더 크고 강해야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더 많은 돈을 바쳐야 하고, 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본 하나님은 강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약자의 하나님입니다.

출애굽기 222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22: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이 말씀은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율법은 십계명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십계명 뒤에 좀 더 세부적인 율법들이 20장부터 23장까지 있습니다. 이것을 시민법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시민법에서 제일 중요한 율법이 본문에 나오는 약자보호법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아나 과부들은 약한 자들에게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들어갈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네가 축복의 땅인 가나안땅에 가면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를 해롭게 하지 말라 만일 네가 그들을 해롭게 하고 억울하게 하여 그들이 울부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고아와 과부의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한 자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나의 노가 맹렬하여 너희를 칼로 죽일 것이다. 그래서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신명기 15장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5: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가나안)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약한 자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여기서 신15:9절을 보시면 면제년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것은 안식년을 말합니다. 안식일도 있듯이 구약시대에는 안식년도 있었습니다. 이 안식년이 되면 제일 중요한 규례가 모든 빚을 면제해 줍니다(15:1).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중에서 누가 누구에게 빚을 져서 그들 가운데서 가난한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15:5).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에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니까, 안식년이 가까울수록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더 악하게 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안식년에만 가난한 자를 도와주면 되니까 안식년이 되기 전에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의 생각조차도 악한 생각으로 보시고, 그것을 죄라고 하셨습니다.

또 시편68:5-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약한 고아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강한 자들에 의해서 억울함을 당하는 약한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고독하고 외로운 약자들을 도와주셔서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는 분이십니다. 또 약한 자들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이끌어 내셔서 형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약자인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고, 약자인 과부의 재판장이 되신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들의 거처를 메마른 땅과 같이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시세로는 말한다. <신들은 큰일에 몰두해 있다. 그들은 작은 일을 무시한다>. 아니 그리스 뿐 아니라 이 땅의 신들은 대부분 크고 강한 것, 화려하고 웅장한 것, 영웅과 권력자의 편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공의로운 분배나 겉으로 드러난 사물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시인과 예언자들이 제시하는 하나님은 약한 <인간의 형편>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홀로 앉아 영원한 이데아를 명상하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형편을 살피고 대처하는 분이다(헤셸, <예언자들>1987:12)”고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많이 인용하는 하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만든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자의 하나님, 약자를 무시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부자를 더 부자가 되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은 철저히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146편에서는 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약한)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신명기 10장에서는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진짜) (하나님)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계속해서 나그네가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그들을 따라온 이방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주로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따라갔겠습니까? 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하마스는 격멸해야 하지만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강자의 하나님을 만들어서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숭배입니다. 가나안땅에 바알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에서 그 어떤 악한 일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에 가 보니까 그런 신이 있었습니다. 바알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남자 신인 바알과 여자 신인인 아세라 신이 성적으로 결합하면 많은 곡식과 가축들이 생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바알 신을 대신해서 남자제사장을 두었고, 여자신인 아세라신을 대신해서 여자 제사장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남자제사장과 여자제사장이 서로 간음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알의 제사장들은 모두 창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도 바알의 신전에 가서 바알의 제사장들과 간음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알의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에 가서 이런 바알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마치 바알 신과 같이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가나안땅에 가거든 반드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15:5).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해서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조건 부자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까?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읽지는 말 것).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구원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이 우리의 구원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강한 분이시지만, 태어나실 때부터 가장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로 사셨던 동네도 가장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사역하셨던 대상도 가난한 자, 병든 자, 외로운 자, 연약한 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상한 갈대와 같은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을 내세워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 같으면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편 손 마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14절에 보면 이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합니다. 이때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신다는 것을 아시고도, 다른 곳에 가셔서 계속해서 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고발을 당해서 죽을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병자를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연약한 자의 연약함을 절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곤고한 자의 곤고함을 절대 무시하지 아니하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연약한 자를 위해서 목숨을 거셨던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마12장에서 예수님은 한 편 손 마른 사람만 상한 갈대로 보지 아니하셨습니다. 스펄전은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 했던 바리새인도 상한 갈대로 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논쟁을 거는 바리새인들에게 12절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시고 바리새인들과 다투거나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19절에서 “19. 그는 (바리새인들과)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세상에서 누가 약자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외로운 자들만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난한 자들이고 병든 자들이고, 약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모든 약자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때 여러분 중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약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니야 나는 강한 자야,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구원을 받을 사람입니까?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약한 자임을 고백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이신 예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보시기 약한 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첫째는,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마음 놓고 약해져야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이었다면 장애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이었다면 우리 교회 가운데 연약한 성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이라면 건강할 때는 함께하시는데 그렇지 않으면 버리실 것입니다. 또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강자의 하나님이라면 세상에서 성공하면 함께 하실 것인데, 실패하면 버리실 것입니다. 또 약하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보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절대 우리가 약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패해서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들었을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하였을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곤고하고 외롭고 힘들고 눈물 날 때 우리와 더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약자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나와서 강한 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서 강한 체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외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강한 체 하는 바리새인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한 갈대로, 꺼져가는 심지로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어느 누가 약한 자이고, 어느 누가 강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모두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약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강한 채 하지 마시고 마음 놓고 약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꺼져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고 고백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여러분의 연약함, 곤고함, 억울함과 눈물을 숨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약자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강해져야 합니다(고전1:27,28).

고린도전서 127, 28절에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약한 자)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강하다고 하는 자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우리가 약한 그대로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강하다고 하는 자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 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적인 지혜와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강함이 강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하심이 더 강합니까?

이 세상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약하심이 더 강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지혜가 더 지혜롭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미련하심이 더 지혜롭습니까?

하나님의 미련하심이 이 세상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이것이 고전125절에 있습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약한 자들이지만, 이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은 절대 약한 자들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강한 자들보다 하나님 안에서 있는 우리들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강함은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불어버리시면 다 날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해 보여도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약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 부족하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나는 강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전에는 저는 우리 교회가운데 어떤 특별한 분들만 약한 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 목사도 교역자도 약한 자들입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들입니다. 또 우리 모든 성도님이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께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시는 약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셔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게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약자의 하나님 앞에서 약자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27).

127절을 보면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합니다.

무엇이 참된 경건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이여 나는 연약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경건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와 같이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삶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역사의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한 일들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를 놓았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빌딩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잠수함으로 해저까지 내려갔으며, 과학적 · 기술적 능력으로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역사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내가 굶주렸지만 넌 먹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넌 입히지 않았으며, 내가 깨끗한 집이 없을 때도 거할 곳을 주지 않았도다. 그러므로 너는 위대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을 우리가 약한 자를 돌아보는 삶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갈 자라면 당연히 약한 자를 돌아보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약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삶이라는 것이 절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보면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동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나는 당신보다 돈이 더 많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더 강합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보다 더 강하고 나으니 내가 당신을 돌보겠습니다 고하는 것이 동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 저는 저 고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저 과부와 같은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고 고백하고 삶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과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주위에 장애인을 주셨습니까? 나는 장애인이 되지 못한 것에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 저는 눈먼 사람과 같습니다. 주님 저는 걷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고 고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하나님 앞에서 맹인이라고 하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맹인이 아니라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약한 자임을 날마다 고백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약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날마다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의 약함을 감추지 마시고 약한 모습 그대로 나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 주위에 연약한 자들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그들을 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그 약한 자를 돌아본 것이 나를 돌아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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