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면 육신의 양식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6장 15절에 보면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제촉하셔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요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6:22. ○(오병이어의 기적인 있은 후)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후 그 다음 날에 무리들은 배가 한 척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배는 제자들이 타고 간 배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않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거기에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그곳에 없음을 보고 곧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바다 건너편으로 갑니다.
그리고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님을 찾아 바다 건녀편으로 가니까 그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랍비여 선생이여 언제 여기오셨습니까? 라고 합니다.
여러분 왜 무리들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까? 분명히 제자들이 바다를 건널 때 예수님께서 그 배에 오르지 않으신 것을 무리들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고 나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풍랑이는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무리들이여 내가 너희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하겠다. 어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인 일을 잊어 버려라. 나는 어제 밤에 그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죽게 되었을 때 내가 바위를 걸어왔지. 그리고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했지, 정말 놀랐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리들의 반응은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 우리의 영원한 임금이 되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먹을 문제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환호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께서는 바다위를 걸으신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이 배를 타고 와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고 말씀하십니다.
표적이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표적이란 기적을 통해서 무언가 표시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표시하려고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단순히 오병이어로 5천명이 먹고 배푸른 기적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어떤 것을 표시하려고 하신 기적입니까?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육신의 양식을 주시는 분인 것을 나타내는 기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신 것을 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6장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요6장 47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요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구약시대에는 하늘에서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준 육신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먹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고, 영생의 떡입니다. 누구든지 이 영생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영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생의 떡은 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살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영생의 떡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생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영생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이 무슨 말씀인 줄 아십니까? 이 말씀이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모르신다면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말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 줄 몰랐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6장 5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그리고 요6장 60절과 6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리고 요6장6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때는 많은 무리들이 배를 타고 와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내가 영생의 떡이다 나를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무리들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든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요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님에게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리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무엇이 진정한 양식입니까? 육신의 양식이 진정한 양식이 아닙니다. 이 말은 육신의 양식이 우리에게 필요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육신적으로 일용할 양식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서 육신적으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신 분들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일용할 양식도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육신의 양식을 많이 먹어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정한 양식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양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양식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양식이신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말씀이 단순히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 성찬의 떡을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래서 성찬의 떡과 잔으로 배가 불러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 책을 읽어보니까 유럽에 어느 수녀원에 수녀가 있는데, 그 수녀는 몇십년 동안 육신의 양식을 먹지 않고, 성찬의 떡과 포도주로만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주교에서는 성찬식 때 먹는 떡이 진짜 예수님의 살이 되고, 포도주가 진짜 예수님의 피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서 보시면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 문을 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들어오셔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다고 하는데, 과연 무엇을 먹는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이것을 먼저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먹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의 근거는 계3장 16절입니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입에 넣고 맛을 보실 때 우리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면 예수님의 입에서 우리를 토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교통하면서 예수님을 양식으로 먹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영적으로 배부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예수님을 배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사도바울입니다. 그래서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마음이 너무 공허해서 먹는 것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꾸 살이 찐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배고픈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양식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도 우리의 진정한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영원히 배부른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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