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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13)일어나 걸어가라(요5:1-11)

by 금빛돌 2023. 7. 22.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으로 가십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 또는 사랑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이 연못이 자비의 집, 은혜의 집, 사랑의 집이라고 했던 이유는 그 연못에 관한 대대로 내려온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번씩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그 연못에 들어가는 자는 병이 낫는다는 소문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동할 때 병이 낫는다는 것은 일종의 소문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마치 그 사실을 미신처럼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3절과 4절에 보면 “[3b.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는 부분은 괄호로 친 것은 이것이 사실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신과 같은 내용은 믿었을 때 어떤 경우에 낫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어디에 가니까 병이 낳았더라는 소문이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사실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무조건 낫는다는 믿음을 가졌을 경우에 혹 병이 낫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할 사실은 사탄도 광명한 천사와 같습니다. 마귀와 귀신의 역사로도 혹 병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기적적으로 병이 낫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나오는 천사가 하나님이 부리신 천사가 아니라 마귀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신과 같은 사실을 믿고 많은 병자들이 베데스다 못가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38년 동안 병이든 병자가 있었습니다. 이 병자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사람이 병이든 것은 38년이나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 병자가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자에게 “6b.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하십니다.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병자가 병이 낫기 위해서 베데스다 못가에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병이 낫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나을 수 있는 희망이나 의지도 없이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병자에게 네가 진정으로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때 이 병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병자가 낫고자 하는 희망과 의지조차 없게 된 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연못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또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병자를 보시고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베데스다 연못과 같습니다. 모두 은혜와 사랑과 자비의 집을 꿈꾸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오직 1등만을 알아주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공부도 1등을 해야 합니다. 대학도 1등의 대학에 들어가야 합니다. 직장도 제일 큰 대기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경쟁에서 이겨서 1등이 되어서 현대판 베데스다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렇게 모든 경쟁에서 싸워서 최고의 기업에 들어가고, 최고의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는 더 치열한 생존경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베데스다연못과 같이 모두가 1등을 꿈꾸고 있는데, 1등도 행복하지 못하고, 1등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베데스타 연못과 같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고 오직 내 힘으로만 살아가야하는 세상입니다. 지금 38년 된 이 병자는 병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어떤 병자를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도와줍니다. 그런데 38년 된 병자는 자신도 힘이 없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그 주위에 한 사람이라도 그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38년 된 병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단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야하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가 베데스다 연못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자포자기와 완전한 절망입니다. 그 어떤 희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입니다. 38년 된 이 병자는 병이 낫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사람의 도움을 간절히 구했겠습니까? 그러나 빈번히 실패했습니다. 계속 실패했습니다. 38년 동안 실패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0.0001프로의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라 더 노력을 해라 네가 죽을 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 중에서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으로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해도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희망의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거짓된 베데스다, 거짓된 자비와 사랑의 집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베데스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은 지금도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첫째, 베데스다와 같은 이 세상에 지금도 예수님은 찾아오고 계십니다.

이 베데스다는 오직 인간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자비의 집으로 찾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이 오직 인간 자신의 힘과 노력에 있습니다. 또 아무리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해도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38년 병자에게 네 힘으로 네 인간적인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38년 된 이 병자에게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아래 516-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에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소외와 고독과 실패와 절망의 베데스다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가 인간적인 힘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또 네가 남들과 경쟁해서 싸워서 1등을 하라고도 말씀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나에게 예수님은 지금도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에게 찾아오십니까?

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6a.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너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있는 그곳에서 네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나를 너를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139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나를 알고 계신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여러분 이 사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38년 된 병자의 제일 어려운 점은 병보다도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판 베데스다의 못가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은 가운데 있을지라도 예수님만은 우리를 지금도 잘 알고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먼저 사랑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잘 알고계시지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가운데 있는지, 주여 당신은 나를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지요 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인생의 무거운 모든 짐들을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다 맡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의 모든 죄의 짐들을 주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원래 이 베데스다는 양문 곁에 있었습니다. 양문이라 구약시대에 양을 잡던 곳입니다. 그래서 양을 잡아 베데스다 연못에서 씻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다른 곳도 아니고 양의 문 옆에 있던 베데스다에 오셨겠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의 짐들을 어린양 예수님에게 다 맡겨야합니다.

//내게 육신의 질병과 어려움이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날마다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죄는 우리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내가 사람의지 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때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시고, 또 나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에게 나의 모든 죄를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질병의 고통만 아니라 죄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또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모르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의 절망과 고통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희망을 하지 않고 꿈도 꾸지 않고 살아 갈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도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 어떤 꿈도 꾸지 않고 그 어떤 희망도 없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한다면 이제는 그 어디로 그 누구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베데스다에서 낙심하신 여러분,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여러분, 예수님만이 여러분들을 도와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신 이유는 단순히 질병의 고통에서 일어나 걸어가라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1)먼저는 이 세상의 거짓 베데스다에서 떠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네 병이 나을지어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에게 제일 먼저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어서 빨리 일어나서 이 베데스다에서 떠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할머니가 복권에 당첨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할머니에게 알려주면 할머니가 놀라서 심장마비에 걸려서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통해서 복권당첨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할머니에게 복권 당첨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할머니에게 갔습니다. 할머니 만일 복권이 당첨이 되면 할머니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만일 복권이 당첨이 되면 모두 교회에 헌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목사님께서 심장마비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도 혹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베데스다 연못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내가 만일 로또에 당첨되기만 하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거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생 로또 대박을 꿈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로또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가운데 베데스다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평생 원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 내 삶 가운데 베데스다의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 남들과 경쟁해서 무조건 1등만 해보려고 남을 짓밟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 걸어서 이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사회를 보았을 때도 이제는 더 이상 고도의 경제성장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고도의 경제성장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1등을 꿈꿀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함께 공존할 것인가를 꿈꾸어야합니다. 또 내가 1등이 되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 앉아계시다가 1등을 하는 사람만 인정하셔서 그에게 병을 낫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동안 1등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오늘도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1등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앉아 있기만 하는 우리에게 오늘도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또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곳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거짓베데스다에서 일어나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정한 베데스다로 일어나 걸어 가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진정한 베데스다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이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인간적인 차별이 없어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 1등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할 수 없고, 1등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을 서로 다 용납해 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서로 내가 더 잘 낫다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과 연약함을 서로 감싸주고 도와주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우리가 할 수 없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노화를 늦출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산병원 노년내과에 정희원교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적게 먹으라고 합니다. 둘째, 꾸준하게 운동하라고 합니다, 셋째는 잘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은 들으면서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본성은 어떠합니까? 첫째, 무조건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둘째,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셋째, 쉬지 않고 죽도록 일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노화를 늦출 수 있습니까? 우리의 본성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는 그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들이라면 38년 동안 병을 앓았는데, 전혀 낫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을 해도 우리 인간의 본성은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네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인간적인 힘으로 일어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38년 된 병자와 같이 나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절대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38년동안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가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라 말씀하십니다. 너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면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1:23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은 절망과 낙심과 좌절의 베데스다에 앉아 있는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오늘도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으로 믿음으로 절망과 낙심과 좌절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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