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이 세상에서 무언가 가지고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손을 꽉 쥐고 태어납니다. 그것은 무언가 가지고 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먹는 것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것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다 입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다 입에 넣어봅니다. 어린 아이들은 누구든지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에게 정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어릴 때는 먹음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합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고 청년기가 됩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성을 통해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다가 장년이 됩니다. 장년이 되면 무언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야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과 야망을 쫒아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제 노년이 됩니다. 노년이 되면 사람이 가지려고 했던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죽을 때 모든 사람들은 손을 펴고 죽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가지려고 하고 체 우려 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도 무언가 가짐으로 인생의 만족을 누리려 했던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자를 통해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 남자와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또 그 남자도 처음에는 잘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증을 느끼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만족이 되지 못합니다. 또 다른 남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다섯 남자와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래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여 이제 또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여인의 마음의 상태는 지금 이 여인이 들어 있는 물동이와 같습니다. 물동이에 물을 넣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곧 떨어지고 물동이는 빈 물동이가 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물을 담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매일 빈 물동이가 됩니다.
-----이 여인이 우물가에 물을 깃기 위해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7절에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요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그때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마리아란 말이 나옵니다. 사미리아 사람은 당시 유대인들이 상종하지도 않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백정이 있었습니다. 이 백정은 노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란 유대인들로 보면 백정과 같습니다.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또 이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여러 남자들과 지낸 그런 여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제일 유의해야 할 점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모두 사마리아 여인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를 지금도 찾아오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찾아오셔서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고 한 것은 이 여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참 이상한 것입니다--그래서 물을 달라고 한 예수님에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기서 갑자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먹어도 목마르지 않은 인생의 영원한 생수--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예수님의 탁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접근 하실 때 접촉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과 빈 물동이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빈 물동이에 물을 담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 여인의 인생과 같습니다.
빈 물동이에 물을 넣습니다. 그러나 곧 비워집니다. 이와 같이 이 여인도 빈 물동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물과 같은 세상의 것들을 넣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넣어도 차지 않는 빈 물동이와 같습니다.
--지금 이 여인은 육신이 목말라서 물을 기러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도 무언가 채움으로 인생의 갈급함을 채우려 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단순한 물만 아니라--인생의 만족을 채워줄 수 있는 인생의 생수를 그리던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인생도 생수를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무언가 내 인생에 진정한 만족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그래서 돈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또 이 세상의 쾌락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우려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채워도 담기지 않는 빈물동이와 같은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빈물동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도 비워있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달라고 하셨다가 갑자기 인생의 생수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13과 14절을 보십시오--같이 읽겠습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즉 이 세상의 물도 먹으면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것들로는 인생의 참된 만족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돤 인생의 갈급함을 채워줄 수 있는 생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생수란 우리 인생의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니까 ///참된 인생의 생수를 찾던 이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 여인의 상태를 다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지금 이 여인이 다섯 남편이 있었지만 그 남자들로서는 인생의 만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불러올 남편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진짜 남편이 없다는 말도 되지만 이 세상의 그 어떤 남자들로도 인생의 만족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한번은 헌책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이병철 정주영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재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표지도 아주 화려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 안에 그분들이 한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책들을 보면서 갑자기 그 책 속에 글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보실 때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게 무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빈 물동이에 물을 담기 위해 온 이 여인과 같습니다. 무언가 가지고 차지함으로 인생의 참된 만족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지고 차지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면 그것으로 참 인생의 만족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릴 때 계속해서 셋방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꿈이 작지만 자기 집을 가져보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나중에 집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집에 들어가니 이것이 꿈인가 하여 잠이 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지나고 또 하루 지나고 일주일 지나고 조금 더 지나고 나니 그 기쁨과 흥분이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새 집에 가서 일년 동안 매일 기뻐하면 정신병원에 가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 합니다. 집만 바꾸어 보십시오. 우리 아파트로 오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또 차를 바꾸어보십시오. 이 차를 타시면 너무 안락하고 좋습니다. 온통 이런 광고입니다.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또 사실로 말하면 참 편리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편리는 하지만 평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있다고 자랑합니다(집, 돈)-무언가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 영혼이 얼마나 공허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진정으로 여러분 내면세계속의 영혼의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고 자랑하고 있는 그것들로 참 만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먹고 마시고 환경적인 조건으로만 결코 인생의 만족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전2: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여러분 가운데 한때 사업을 크게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을 크게 해서 성공해도 그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야합니다. 또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채워야합니다. 그래야 참 인생의 만족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태어나자 우는 것과 같습니다-아이가 태어났을 때 왜 아이가 웁니까? 원래 있었던 어머니의 품속 때문입니다.
--인간도 원래 하나님의 품속에 나왔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으로 채워졌던 그 공간이 항상 비어 있습니다,
그 속에 돈을 넣습니다. 쾌락을 넣습니다. 지식을 넣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어떤 것을 넣어도 결코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래야 참 인생의 평안과 만족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중학교 때는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고등학교를 다닐 때 참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 몸으로 방황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방황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저는 참 하나님과 멀어진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우상은 히틀러였습니다, 히들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책을 잃다가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살려는 자는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영원한 투쟁에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는 자는 이 세상에서 생존할 권리가 없다”. 그 당시 교회도관에서 공부를하면서 히틀러의 사진을 앞에 붙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다 “살려는 자는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영원한 투쟁에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는 자는 이 세상에서 생존할 권리가 없다” 는 히틀러의 말을 묵상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매일 성경을 읽고 공부를 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히틀러의 말을 읽고-그것을 마음에 담고 공부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 주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다 싸워서 이겨야 될 적들이다. 내가 그들을 짓 밟지 않으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히틀러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에 빠졌습니다. 그는 항상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지성과 사랑. 그러면서 자기 내면 속에 쾌락을 쫓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지성으로 이기려 하는 두 마음의 갈등을 그의 글을 통해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사색과 고독 속에서 방황하고-고뇌함으로서 인생의 만족을 누리려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에 위안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그 책들을 읽으면서 사색과 고뇌로 인생의 만족을 누리려 했습니다.
-그 당시 책을 보다니가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고통하면서 아이를 낳지만 남자는 고통하면서 사상을 낳는다, 또 팡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행은 어디든지 갈 수 없다. 그러니 사상의 세계는 지구 우주 끝까지도 갈 수 있다 라고 하면서 사상의 세계 속에서 인생의 참 만족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불안했습니다-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3 때 전환기가 있었습니다. 학교를 가다가 도무지 마음이 갈급하여 견딜 수가 없었니다. 학교 가는 길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뒤편에 가서 저는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항복선언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제 의지를 가지고---내 마음대로 살아가보려 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오주님 이제 항복합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형식적으로 다녔습니다---이제 하나님을 제 마음의 중심에 모십니다. 이 시간 당신께 내 모든 삶을 의탁합니다--내 삶의 주인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이제 내가 하나님에게 내 삶을 맡기도 살아보겠습니다..
--그때 제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갑자가 공부를 잘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또 눈에 보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도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가우데 두 글자를 세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평안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후로 살아오면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후도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자 그 날 이후로 40년 넘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내 마음속에 어느 한 순간도 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그 순간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안은 더 아름답고 빛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예수 믿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목사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만일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세상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
----또 저는 예수님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우리와 함께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 --그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복되게 할 것을 믿고 잇지 많습니까? 야고보서에 보니까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좋은 분이라고 합니다-결코 나쁜 분이 아닙니다. --내가 어렵고 힘든 것은 무언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문제가 있기때문입니다==그것은 사랑의 채찍입니다—또 하나님 나를 사랑하니까 빼앗아갑니다.
또 내가 지금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도 어렵습니까? 그것은 분명 그 어려움 속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하고 더 좋은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지금 우리나라에 모든 것이 다 불안합니다-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한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이 가운데서 혹 오늘 처음 오신분이 있습니까?
기독교는 이상한 종교가 아닌가 생각하신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본래 인생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본래 인생의 자리가 어떤 것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회복하는 곳이 교회입니다--또 본래 인생의 모습을 회복할 때 인생의 참된 만족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생의 참 만족을 누리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강해(12)진정한 믿음은 무엇인가(요4:46-54) (0) | 2023.07.22 |
---|---|
요한복음강해(11)진정한 예배는 무엇인가?(요4:19-24) (0) | 2023.07.14 |
요한복음강해(9)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18) (0) | 2023.07.14 |
요한복음강해(8)높이 들린 십자가(요3장14-15). (0) | 2023.07.14 |
요한복음강해(7)거듭나야 합니다(요3:1-8) (0) | 2023.07.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