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장에 진정한 성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정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성전이란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성전이란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한다면 그 모든 곳이 성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장15절에 “계7: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성전이 어떤 건물이겠습니까? 어떤 장소이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곳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밤낮 건물로서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어떻게 밤낮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깁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가 우리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합니다. 이 장막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우리가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거기서도 밭을 갈고 경작도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여러분들이 가는 그 곳이 하나닝이 함께하시는 성전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곳에서 일만 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다면 이 곳은 그냥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본문 앞에 보면 사마리아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다섯남자와 더불어 살았습니다. 또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도 남편이 아닙니다. 이 여인은 마치 빈물동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으로 인생의 만족을 채워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절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지 않습니다. 상종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로 지나갈 때 그곳으로 가지 않고 항상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갈 때 절대 사마리아를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마리아로 통과해야겠다고 하십니다.
더욱이 유대인 남자는 낮에 여자들과 절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의 랍비들은 낮에 자신의 부인과도 길에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27절을 보시면 “요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까 이 여인이 어떻게 말합니까?
예수님 그런 물이 있다면 내게 그런 물을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요4:15).
그러니까 갑자기 예수님께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요4:16-18).
이것은 이 여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어떻게 말합니까?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유대인의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평소에 예배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을 물어봅니다.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기서 우리 조상은 사마리아인들의 조상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조상들은 이 산 즉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산이라고 하고, 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라는 질문합니다.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왜 이 여인이 이런 질문을 했는가 하는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이 되었을 때 북 왕국 이스라엘은 남쪽인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 왕국 이스라엘에 속해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성경이 모세오경밖에 없었습니다. 또 모세오경을 잘 가르쳐 주는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오경만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는데, 예수님 과연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그리심산입니까? 아니면 예루살렘입니까? 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인은 예배할 장소가 그리심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이르렀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여기서 너희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모세오경을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배에 있어서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열광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구약의 제사를 그대로 드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사람들은 지금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대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열심히 제사를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예배가 무엇인지,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 24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무엇인 진정한 예배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입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한다고 하니까 아주 신령스럽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성경에서는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개역한글)”고 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신령하게 드려야 한다.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지금 번역이 맞습니다. 원어로 보면 “예배하는 자는 성령 안에서 예배하고,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예배는 자는 성령 안에서 예배하고 진리 안에서 예배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먼저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드리는 예배는 열심은 있었지만 말씀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열광적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그 안에 말씀의 진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안다고 하지만 모세오경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세오경에 대해서도 바르게 해석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예배를 드렸지만 진리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하십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느낌과 감정이 아니라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아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알고 예배해야 진정한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았다 받지 못했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내 개인적인 감정이 두고 있습니다. 내 느낌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감정으로 무언가 감동을 받으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이 시간에 정확하게 깨달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리고 새롭게 알게 된 진리가 무엇입니까? 무언가 내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흘렸습니다. 또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예배 가운데 새롭게 알게 된 진리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마리아인의 예배입니다. 그리심산에서의 예배입니다.
그것이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는 잘 듣습니다. 내 머리로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 와 닿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와 닿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예루살렘에서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그리심산에서 예배가 맞습니까? 예루살렘의 예배가 맞습니까? 라고 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에서의 예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그리심산에서 드리는 예배와 달리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와 달리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예배는 마치 불은 붓는데 장작이 없이 불이 붙는 것과 같습니다.
또 성령이 없는 예배는 장작은 있는데 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알고 정확하게 깨닫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진리 위에 성령의 불이 붙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내 가슴에 와서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불이 붙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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