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엘라바스는 욥에게 네가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 그러니 너는 회개라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먼저 욥은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가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욥6: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고 합니다.
욥은 먼저 자신의 고뢰움을 달아보면 파멸을 저울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경솔했다는 말의 더 정확한 번역은 거칠었구나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욥이 3장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던 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괴뢰움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무겁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의 말이 거칠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욥은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화살의 과녁처럼 여겨서 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치 그에게 독을 마시게 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였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욥은 자신이 지금 고통당하여 괴로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합니다..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만일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일이 있으면 내 고통이 줄어들겠는데, 지금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욥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가운데서 계속해서 욥의 친구들에게서 충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8절과 9절에서는 지금 욥은 아무도 그의 간구를 들어 주지 않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조차도 그를 멸시하기를 기뻐하고 그의 손을 들어서 나를 끊어버리실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하나님이 그러하시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고통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 욥은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조차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이렇게 아무도 그를 위로하지 못하지만 그 자신이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은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욥의 친구들에게는 자기변명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욥의 정직한 답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수사관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무고하게 옥살이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왜 당신이 그렇게 짓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하느냐 고 하면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편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같으면 욥의 친구들이 아주 고상한 말로 네모든 고난이 네 잘못 때문이고 할 때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자신을 더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분명히 말을 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다고 정직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요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대해서 솔직하게 잘못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조건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넘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모든 것이 다 밝혀지면 결국 욥의 고난은 욥의 잘못이 아니라 사탄의 시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진노하시고, 잘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이런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가 만일 죄가 있어서 그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무슨 칭찬이 있겠습니까? 선을 행하고도 고난을 받으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고난가운데서 무엇보다 끝까지 정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 욥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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