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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욥기

욥기강해(7)네 가슴에 난 그 큰 구멍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다(욥6:1-10)

by 금빛돌 2023. 7. 21.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인생의 절망을 경험할 때입니다.

송병주목사님이리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55살의 아버지를 천국으로 떠나보냈다. 그후 향상교회 유학생으로 공부하는데, 어머니의 뇌종양 말기 판정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미국 땅에서 전화기에 대고 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마쳤습니다. 그 뒤 다시 공부하여 박사과정 지원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막내 아들의 유치원 원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자폐인 것 같습니다.”

그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밤마다 두세 번씩 깨서 울기 시작하면 한 시간 반 동안 내리우는 아이 앞에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찼습니다. 미국에 왔던 계획을 수정하며 유학을 지원한 교회의 비전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편 22편을 묵상하면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다는 다윗의 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편이 다윗의 노래이며, 네 고통의 노래라고 생각하느냐? 인간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결코 아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린 내 수난의 시였고, 고통의 노래였지. 내 손과 발에 구멍이 났고 내 마음에도 큰 구멍이 났단다. 그래서 네 가슴에 난 그 큰 구멍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서야 그에게 이런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제 고통을 아시는군요. 제 절망을 당신께서 너무나 잘 아시는군요.”

오늘 본문에서 욥도 인생의 절망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2.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거칠었구나)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저울에 달아보며 자신의 파멸을 저울 위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 고 합니다. 지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의 무게가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겁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라 라고 하는 것은 나의 말이 거칠었구나 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고통이 너무 심하면 그 사람의 말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4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4.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욥은 이제 아주 거칠게 말을 합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혼이 그 독을 마셨다고 합니다. 지금 욥은 마치 하나님께서 욥을 과녁으로 삼으셔서 그에게 화살을 꽂으시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예레미야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3: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지금 욥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를 화살로 과녁을 삼으시듯이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이 그 화살의 독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욥은 하나님으로 오는 그 어떤 평안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습니까?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욥을 위로 해 주기 위해서 온 친구의 말이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욥의 친구들의 말은 하나도 먹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마찬가지로 만일 내게 한마디라도 위로가 되는 말이 있으면 내가 이렇게 울겠느냐 그런데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지금 이렇게 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6절입니다.

6.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여러분 싱거운 것이 소금이 없으면 어떤 맛이 있습니까? 닭의 흰자위가 맛이 있습니까? 맛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친구가 어떤 말을 해도 그것은 소금이 없는 싱거운 음식과 같으며 맛이 없는 계란의 흰자위와 같다고 합니다.

7절입니다.

7.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지금 친구들의 말은 맛이 없는 음식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맛이 없는 음식을 만지기도 싫어하고, 꺼리는 것처럼 지금 친구의 말들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 욥이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까?

욥의 친구는 욥에게 네가 무언가 잘못했기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의 말은 욥에게 그 어떤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말은 많지만 쓸모 있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욥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욥은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주시며 나의 기도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느냐 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의 간구가 어떤 간구입니까? 욥기32절과 3절에 3: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욥은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고 간구했습니까? 하나님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죽여달라는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욥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제발 알아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만 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 학교에서 자살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23살밖에 되지 않는 신입 교사입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그 선생님이 왜 자살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것도 이번 한 번이 아니고 연초에도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학생이 선생님을 얼굴을 치며 심지어 내동댕이를 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선생님이 소리를 치면 아동학대가 될 수 있어서 소리도 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답답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고통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위로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아무도 내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욥도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제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0.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여기서 그러할지라도가 무슨 말입니까?

내 고통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무거울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친한 친구의 말이 하나도 쓸모없고 그것이 도리어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줄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나를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아니할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게 잠시도 쉬지 않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는 말입니다.

그래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내게 그칠 줄 모른 고통 가운데도 내가 기뻐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온전히 위로하지 못해도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는 고통 가운데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 되며, 기쁨이 되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사558절과8절에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우리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십니다. 우리의 영혼의 깊은 곳까지 다 헤아리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이야기해도 하나님은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나를 위로하지 못합니까?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하지 못합니까? 나를 위로해주고 이해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새벽기도시간에 역대상을 보고 있습니다. 왜 열왕기서가 있는데, 역대기가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될 때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책망하십니다. “너 그렇게 살다가 망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열왕기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로를 주십니다. 희망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역대기서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합니다. 그런데 40장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는 책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01절에서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0.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무리 고통이 심할지라도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 기뻐하는 이유는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그 어떤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려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으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욥기를 보면서 제 화이트보드에 이런 말을 적었습니다.

내 모든 고민 낙담 염려 수치 괴로움의 시간을 성경 말씀으로 채우자

고민이 되면 말씀으로 고민하자

낙담이 되면 말씀으로 용기를 가지자

염려가 되면 말씀으로 염려를 물리치자

수치스러우면 말씀으로 위안을 삼자

괴로우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쁨을 얻자 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 시험으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도 우리를 위로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끊임없는 슬픔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슴에 난 큰 구멍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손과 발만 아니라 가슴에 큰 구멍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네 가슴에 난 그 큰 구멍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얻으시고, 기쁨을 얻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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