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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강해(4)사람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요2:1-11)

by 금빛돌 2023. 7. 1.

여러분 변화와 변질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변화는 그 안에 생명이 있어서 좋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질은 그 속에 생명이 없어서 나쁘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1장에서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4).

그래서 우리가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해서는 절대 우리가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시면 얼마든지 우리가 변화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입니다.

여러분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은 어떤 변화입니까? 이것은 절대 물속에 있는 포도주가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포도주가 조금 남아 있는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질적인 변화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이 표적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질적인 변화를 주시는 분이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질적인 변화이겠습니까?

완전한 죄인이 우리를 완전한 의인이 되게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는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원수까지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듯이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켜주실 줄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듯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까?

1)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에 대해서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변화의 시작은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사람들이 인식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여기서 보면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먼저 거기 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잔치집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관계로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마리아가 알고 있었고, 이 사실을 예수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깨닫는데 있습니다. 왜 우리의 삶 가운데 변화가 없습니까? 그 이유는 나는 더 이상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부족해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변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화받기 위해서 제일 먼저 내가 변화 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아야합니다. 이와 같이 변화의 시작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깨닫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변화되어야할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예수님과 비교를 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합니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을 보니까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 보아야할 기준과 목표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우리가 바라 보아야할 기준과 목표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관원들에게 끌려가서 채찍을 맞으실 때 그 장소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언제 회개합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눈으로 볼 때 비로소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볼 때 불편한 사람의 눈을 보지 않습니다. 회피하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부인하고 저주하는 베드로를 사랑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래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자신의 비참함과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나의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는데 변화가 시작됩니다.

2)변화의 두 번째 열쇠는 오늘 본문에 보면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예수님에게로 가져갔습니다. 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여기서 마리아가 왜 예수님에게 포두주가 떨어진 것을 말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마리아는 예수님이 육신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이지만, 이 분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겠습니까? 먼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마리아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또 마리아는 예수님의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육신의 아들이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에게로 가서 포도주가 없다고 알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예수님에게로 가져가야합니다. 그래야 참된 변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그 다음 변화의 세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해야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굉장히 불경스러운 말씀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여자여 라고 하는 말은 여성에 대한 존칭어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여사님이라는 말입니다.

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합니다.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내 때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는 것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단순히 이 잔치집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마리아는 이 잔치집의 친척으로 이 잔치 집을 주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 자신이 이 잔치 집을 주관하는 사람으로 아들 예수님을 보고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어떻게 해 달라는 것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는 말로서 사실 나는 단순히 당신의 육신이 아들만이 아닙니다. 단순히 당신의 말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입니다. 그러니 내가 인간인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바뀌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다, 4대 성인중의 한 사람이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들어도 되고, 또한 듣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어떤 변화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진정한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임을 인정해야합니다.

놀라운 것은 마리아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리아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집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이 잔치집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잔치집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이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과 같은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과 같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심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과 같은 우리 교회의 주인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고 순종해야합니다.

4)그래서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네 번째 열쇠는 주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잔치집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여기서 예수님은 왜 유대인의 정결예식을 따라서 둔 돌 항아리에 주목하십니까?

이것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로는 절대 변화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유대종교에서 정결케 하는 의식으로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것에 손을 씻음으로 깨끗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으로는 변화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대인의 정결예식을 따라서 둔 돌 항아리는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손님들에게 가져 다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언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까?

물은 넣는 순간이 아닙니다. 또 물을 떠는 순간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물을 손님들에게 가져간 순간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떻게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원수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원수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다린다면 평생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물과 같습니다. 즉 여전히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때 변화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할 때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9절에 보면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말합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물 떠온 하인들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변화되는 삶을 맛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만이 변화되는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 어느 성당에 무덤에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중년이 되어서는 이웃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70살이 된 오늘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다. - 안소니 멜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다 변화가 됩니다. “오 주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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