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경연구/출애굽기

출애굽기강해(5)모세의 지팡이(출4:1-17)

by 금빛돌 2023. 2. 17.

사람이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맛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밥맛입니다. 사람이 밥맛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살수 가 없습니다. 두 번 째는 잠맛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사람이 잠만 잘 잘 수 있으면 어떤 정신질환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일 맛입니다. 사람은 일을 해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 이루는 성취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일할 맛이 생기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일 맛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옵니다.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가 되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전혀 하나님의 일을 할 맛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일을 못 하겠습니다하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고 고 합니다.

그래서 출311절에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누구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스스로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계시고, 한순간도 쉬지 아니하시고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오늘 본문에 어떻게 말합니까?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는 40년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도 나를 믿지 아니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난 것도 그들이 믿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그러면서 모세는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래서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노하시며 말씀하십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여러분들은 이런 모세의 태도를 겸손이라고 보십니까?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이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모세는 겸손이 너무 지나쳐서 아무 일도 하기 싫은 좌절가운데 있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죄는 교만입니다. 그런데 교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좌절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좌절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손도 쓰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포자기하면 하나님도 돕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교만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너무 자신감을 잃어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또 아무 일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 힘만을 믿는 자신감은 교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신감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0세까지의 모세는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40세 이후의 모세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80세 이후의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교만해서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내 모든 교만을 죽이시므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물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고 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할 맛을 잃어버린 분들이 있습니까? 이제 내가 나이가 많아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병약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도 실패를 하는 사람이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나를 설득하시는 하나님께 설득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제일 먼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지팡이니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1)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무엇보다 모세의 연약성을 나타냅니다.

왜 사람들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대부분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은 몸이 불편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연로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지팡이란 모세의 연약을 나타내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자신의 연약성의 상징인 지팡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연약성의 상징인 지팡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모세의 연약성의 상징인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려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기적을 통해서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성의 상징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뱀이 모세를 해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때 그 뱀의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의 군대가 다가왔을 때 이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놓았습니다(14:16)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군대를 모두 죽이셨습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원망했을 때 이 지팡이를 통해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20:11). 이제 모세의 언약성의 상징이 이 지팡이는 이제는 연약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적의 지팡이가 됩니다. 그래서 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그리고 이제 이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이것은 사도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연약성은 그의 육체의 질병이었습니다. 또는 바울의 대적자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에게 떠나기를 세 번씩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약함 때문에 힘들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함 때문에 나는 할 수 없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부족하여 약하다는 것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도구가 되게 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던지라, 하였을 때 던졌습니다. 또 그것이 뱀이 되었을 때 꼬리를 잡으라 하니까 잡았습니다.

언제 모세의 지팡이기 기적의 지팡이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뱀은 절대 꼬리를 잡으면 안 됩니다. 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아니면 막대기로 몸통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뱀의 꼬리를 잡는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합니다. 그런데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보고 모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뱀이 자신을 물지도 모르는데 순종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연약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됩니까?

그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어떤 위험과 두려움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순종해야합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우리의 연약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천명이 주리신 것을 보시고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빌립은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어떻게 말합니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모두 연약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때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어떤 능력이 있느냐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자질이 있느냐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을 강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또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모세가 마지막 하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이제 왕자로서의 권력도 없습니다. 또 신앙의 패기나 자신감도 없습니다. 또 그를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양을 치는 지팡이입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로 양들을 칩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로 자신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마지막 남은 한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손에 있는 지팡이입니다.

미국에 어떤 목사님에게 눈동자가 흐릿하며 초췌한 모습으로 52살 된 중년신사가 찾아왔습니다(빈센트 필). 그리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은 잠잠히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했고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마지막 상담 하고 내 인생을 정리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앉으시지요.” 하고 따뜻하게 그를 맞이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분에게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까고 했습니다. “, 한때 잘 나가다가 경제 공황으로 인해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안심시키고 조용히 이런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아무것도 없으십니까” “찾아보시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찾겠습니다. 선생님 집안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까?” “, 30년 같이 산 아내가 있습니다.” “소중한 분이군요. 또 묻습니다. 선생님에게 자녀가 몇이나 있습니까?” “, 착하게 자라고 있는 삼남매가 있습니다.” “, 보화와 같군요. 그러면 또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친구가 있는지요.” “, 그래도 망하면서도 의리 있는 친구가 몇이 있습니다.” “,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들이군요. 또 묻겠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래도 건강합니다.” “요즘 세상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래도 세상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마지막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 선생님은 엄청난 것을 가지고 있군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하고 지금 있다고 고백한 것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처음으로 그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목사님, 제게 참 보화가 많이 있었군요. 이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이제 처음에는 눈동자가 흐리면서 좌절감에서 찾아왔던 그 신사는 돌아갈 때는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그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졌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언제 좌절하고 절망합니까? 그것은 내가 없고, 잃어버린 것들만 생각할 때입니다.

과거에 건강이 있었는데 건강도 잃어버렸습니다. 과거에 돈이 있었는데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과거에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생각하고 지금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들에 주목을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네 손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지 않느냐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애가서에 보면 가장 큰 좌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가 잡혀가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심지어 하나님에게 조차도 실망을 합니다. 그런 예레미야가 어떻게 그 큰 좌절과 절망을 극복합니까?

그가 잃어버린 것만 가지고 생각 했을 때는 절망이었지만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아직 그에게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직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 다 잃어버렸어도 아직 포로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또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고 자신의 동족들도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어떻게 고백합니까?

3:20. 내 마음이 그것을(잃어 버린 것을)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지금 내게 있는 것-살아있는 것)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죽지) 아니함이니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고통만 기억할 때는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금 내게 있는 것, 즉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마음에 두니까 그것이 그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내게 없는 것만을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게 없는 것이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직 내게 남기신 것들이 더 많습니다. 돈은 없지만 아직 건강이라도 남아있지 않습니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얼마든지 나 자신에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가정을 바라볼 때도 없는 것만 가지고 생각하면 우리는 금방 좌절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정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고 하면 그 가정은 절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에 있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가정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편은 밤을 세면서 일을 하였고 아내는 네 명의 지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비난하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가정전문가가 그 가정에 처방을 내렸습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비난하지 말고 감사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감사해보았습니다. 아내도 남편에 대해서 힘든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자녀들을 키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없는 것만 생각하시면 우리는 금방 좌절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우리 교회에 없는 것을 그것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교회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라고 하기만 하면, 일을 하려고 하는 그 사람조차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좋은 부분들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일할 맛이 납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체워주십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도 붙지도 않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인간적인 자신감은 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인한 자신감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인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이 붙습니다.

/또 믿음으로 인한 자신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 내게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모세의 지팡이는 십자가를 나타냅니다.

십자가는 모세의 지팡이와 같이 연약하고 초라해 보입니다. 그런데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그 연약한 십자가에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내게 있는 가장 값진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합니다.

/나에게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 속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 속에서 아직까지도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좌절하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갈 길을 분명히 인도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 고 순종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