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일로 초대교회에 큰 박해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 박해를 통해서 복음이 예루살렘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모든 땅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쓰임을 받은 사람이 빌립집사입니다. 그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때 그로 인해서 많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귀신이 물러가고, 병든 자가 고침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마술사 시몬 때문입니다.
9절부터 11절을 보면 사마리아 성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전부터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전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마술사 시몬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마술사 시몬도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특별히 빌립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고 마술사 시몬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성에 보냅니다.
그리고 15절과 16절에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도 성령을 받지 않은 경우가 나옵니다. 그래서 17절에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18절과 19절에 라고 합니다.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을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라고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합니까?
20절에 베드로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했느냐고 네가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술사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도 믿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을 다하여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몬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이런 초신자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정말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시몬은 하나님의 성령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돈이면 성령도 살 수 있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시몬주의(시모니즘)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시몬주의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18절과 1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
여기서 잘 보시면 지금 시몬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성령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능입니다. 그는 성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권능입니다.
또 여기서 더 잘 보시면 정작 시몬은 자신이 성령을 받기를 소원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시몬은 그가 성령을 받는 것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과 같습니까?
그가 예수를 믿기 전과 같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마술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마술을 행함으로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은 후에도 그의 관심은 성령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가 오직 관심을 가지는 것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돈을 드려서 성령의 능력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는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시몬은 복음과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재로 역사에 보면 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교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하더라도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직분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을 다해서 주님을 섬긴다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행동이 중요합니다. 열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시몬처럼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겠습니까?
첫째,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 부터는 능력을 더 사랑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물질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이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빼앗아 가실 때입니다.
욥기에 사탄은 욥에 대해서 욥은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들 때문에 하나님은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우리 마음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우리 마음의 동기가 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스가랴 7장 5절과 6절에서 “슥7:5-6.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만일 70년 동안 매년 5월과 7월에 금식기도하고 애통하는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대한 것입니까? 만일 우리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분은 아주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 금식이 과연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것이 겉으로는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너희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주님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한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가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것입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지성소로 들어갈수록 문이 좁고 방이 좁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 방에는 오직 하나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 방에 하나님도 들어가고, 돈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지성소에는 무엇이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돈이 들어가 있습니까? 과연 내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 자아가 들어가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오직 하나님이 들어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제일이 되고 싶으십니다.
내일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하는데, 이렇게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말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여러 가지 것들을 말 할 것입니다. 친구, 장난감, 게임기, 등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 위에다가 동그라미 영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동그라미 영 더하여 영 더하기 영 더하기 영 하면 얼마냐고 볼 것입니다. 얼마가 됩니까? 동그라미가 아무리 많아도 0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동그라미가 큰 숫자가 되겠습니까?
영 앞에 1을 쓰면 됩니다. 그 1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리 영이 많이 있어도 영입니다.
그리고 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제일 중요한 분은 누구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네 마음에 제일이 누구이냐고 하나님은 물어보십니다.
돈이 친구가 명예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보다 예전에 청년들을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청년들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또 저의 경우에는 내가 가진 비전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비전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 마음에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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