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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사도행전

사도행전(22)왜 스데반을 죽였나(행8:1)

by 금빛돌 2022. 7. 22.

1절을 보시면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제일 조심해야할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돌로 사람을 쳐서 죽인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스데반을 죽였습니까? 자신들이 생각하는 종교적인 신념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연약하게 보이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만든 건물로서의 성전에 계시지 않고 온 세상에 계신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이 만든 종교적인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왜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겠습니까?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가 믿고 있던 종교적인 신념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스데반의 어떤 말이 유대인들의 귀가 가장 거슬렸겠습니까?

747-5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건물로서 성전)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보시면 특히 스데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너희가 손으로 만든 이 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시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귀가 거슬렸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이 손으로 만든 건물로서의 성전에만 계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지금 하나님은 너희가 만든 이 성전에 계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스데반의 말은 단순히 스데반의 말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말씀이었습니다.

6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성전)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성전)가 어디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이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온 세상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온 세상이 내가 거하는 성전인데,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성전을 짓겠다고 말하느냐 내가 안식하고 거할 성전이 어디 있느냐 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 땅에서 지금 너희가 만든 그 성전에 내가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스데반이 하는 말은 스데반이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시대에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가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은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만든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면 이사야시대에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66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6: 3. (성전에서 형식적으로)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성전에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성전에서 형식적으로)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여러분 여기서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은 종교적인 형식은 완벽하게 갖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를 잡아서 드립니다. 또 양을 잡아서 드립니다. 또 제물을 불태워서 분향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행사에 불과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종교적 형식으로 완벽하게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가지 않고 자기의 길을 택하여 가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가증한 것을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유대인들과 같습니다.

이 유대인들도 종교적인 형식으로는 성전에서 완벽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또 그들 마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가증한 것을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또 스데반도 죽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여기서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길을 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들과 함께 하십니까? 어떤 자들이 있는 예배가운데 함께 하십니까?

이사야 66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함께 하려니와)-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화려한 성전을 지어놓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형식을 갖추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록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드리는 예배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심령에 통회하는 자들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의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이렇게 마음 가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반응하여 심령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내려주십니까?

66:12.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가난한 자로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떨며 살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평강이 강같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행 756-58을 보시기 바랍니다.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여러분 왜 스데반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 것이 그렇게 듣기가 싫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 유대인들은 성전을 지어놓고 열심히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 도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종교적인 형식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죽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눈에 보이는 성전입니다. 또 종교적 형식입니다. 또 그들이 만든 율법적 규칙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여러분 과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여러분들은 보고 계십니까?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 계십니까?

만일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지금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사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신념을 믿는 분들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날마다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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