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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빌립보서

빌립보서강해(22)자족하는 마음(빌4:11-13)

by 금빛돌 2021. 12. 19.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은 모두 공간의 제약이 있고, 신체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은 공간의 제약과 신체적인 제약을 감사의 제목으로 삼고, 그 공간의 제약과 신체적인 제약을 이용해서 좀더 하나님께 나가는 기회로 삼는 곳입니다. 반대로 감옥은 공간의 제약과 신체적인 제약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곳이 감옥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지만 그가 단순히 감옥에 갇혀 있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그가 감옥에 있다는 표현을 주안에서 갇힌바 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주안에 있었고---그래서 그 감옥 속에서도 늘 감사하며 찬송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감옥은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나가기위한 수도원이 되었고, 천국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원망불평하면서 수도원에 있다면 그곳은 감옥과 같은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상황과 조건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천국생활을 하는 사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여기서 빌립보교인들이 나 바울을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라고 하는 말은 빌립보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어려울 때 물질로 도와준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것 때문에 크게 기뻐하고 있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을 하고 나니까 마치 지금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에게 준 그 물질 때문에 바울이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물질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13절까지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합니다. 즉 내가 마치 궁핍한 중에 너희들이 준 물질로 인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일체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일체의 비결이란 물질이 있건 없건 같에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주안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이제 13절을 보겠습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문맥을 따라서 볼 줄 알아야합니다.

여기서 지금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다 말이겠습니까?

---내게 돈이 없는데 갑자기 돈을 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문맥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햇을 때 여기서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말은 앞에서 나오는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할 수있다-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413절에서 말하는 능력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서 능력이란 말은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안에서 자족하며 만족하면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참된 만족과 기쁨과 감사는 물질의 유무나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만족과 감사와 기쁨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과 상황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두 가지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육신적으로 풍부했을 때의 상황이고, 또 하나는 육신적으로 궁핍했을 때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너무 궁핍한 상황에 처하면 낙심하고 좌절하여,,주님의 품을 떠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떤 궁핍한 상황 속에서라도 낙심하고 좌절하여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주님을 의지함으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사람이 풍부한 상황에 처하면, 교만하고 방심하여 주님의 품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풍부한 상황에 있더라도--그것 때문에 마음이 교만하여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주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 때문에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려울 때 주님 안에 있기가 어렵습니까?

아니면 풍부할 때 주님 안에 있기가 어렵습니까?
--어떤 분에게 물어보니까 어려울 때 보다 오히려 풍부할 때 주님 안에 있기기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도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일이 잘될 때-사실 그때가 오히려 주님 안에 있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은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너무나 풍부하게 잘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쉬운 마음이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은 그렇게 풍부한 삶 가운데서도 절대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 우리가 지금 풍부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절대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또 항상 그 어려울 때를 생각하면서 더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안에 있어야합니다--또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야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 자족하는 신앙은 결코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웠다는 말은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바울도 분명 어려울 때는 낙심하였고, 또 좋을 때는 방심하고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그의 신앙이 더 성숙되고 깊어지면서--모든 상황 속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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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지금 바울처럼 이렇게 모든 상황 속에서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해서--우리가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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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삶의 과정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를 다듬으시고, 더 성숙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면, 그 언젠가는 바울처럼 그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주안에서 모든 일에 항상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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