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삶 가운데서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궁극적인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만세전부터 구원받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냐고 했을 때 우리가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우리가 무엇이 되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내가 a라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b라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를 묻습니다.
이때 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a라는 직장에 들어가든, b라는 직장에 들어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낸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소명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명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 어떤 소명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또는 어떤 사명을 위해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르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에게 어떤 소명 때문에 구원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어떤 사명 때문에 구원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을 구원하실 때 어떤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 이것은 생명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천억 조를 주어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소명, 또는 사명은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알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구원받은 자로서 내가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싶은 것입니다.
둘째는 공동체가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구원받은 자로 내가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 속에 불붙은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입니다.
/어떤 성도님은 보니까 정말 권위의 은사를 가지신 분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든 사람이 있으며 찾아가서 위로합니다. 그분은 그렇게 위로하는 것을 정말 하고 싶어 하시고 좋아하십니다. 또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마음에 불붙은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도님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권위의 은사입니다. 위로의 은사입니다.
그러면 그 성도님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 또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도를 위로하는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성도님을 향하신 구체적인 하나님의 기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나는 특별한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긍휼의 은사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생명보다 귀한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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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러면 어떻게 우리를 향하신 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룰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2:13을 다시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가운데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을 아실 것입니다. 형제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절하는 꿈입니다. 또 해와 달과 형제들의 열한별이 요셉의 별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요셉이 꾼 꿈은 요셉이 꾼 꿈입니까?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입니까?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한 뜻이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구체적으로 요셉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으로 하여금 많은 고난과 낮아짐을 경험하게 하신 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단순히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 총리가 되기 전까지 종이 되고 죄수가 된 것은 이 땅에서 종이 되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요셉이 꾼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가 팔려간 곳은 바로왕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입니다. 거기서 그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가정총무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가정총무는 가정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감옥은 바로 왕의 죄수를 가두는 궁중 감옥이었습니다. 거기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입니다. 요셉은 이 두 사람의 꿈을 풀어주었는데, 누가 감옥에서 나갑니까? 술 맡은 관원입니까? 떡 맡은 관원입니까? 술 맡은 관원입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은 술술 풀려났고, 떡 맡은 관원은 떡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가자 억울한 요셉을 풀어주기로 해놓고 2년 동안 잊어버렸습니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그때 바로의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기억하여 바로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감옥에 있던 요셉이 바로의 꿈을 풀어주게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역사하신 것은 언제였습니까? 우리는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전생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만일 요셉이 청소년 시절에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면, 애굽에 팔려가지 않았고, 그러면 요셉은 애굽이 총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청소년 시절에 형제들에게 미음을 받았던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또한 그가 보디발의 집에 가서 가정 총무를 한 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굽의 총리가 애굽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바로의 궁중감옥에 간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궁중감옥에서 그가 장차 가게 될 바로의 궁중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요셉은 감옥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궁중감옥에서 미리 정치공부를 다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십니다. 또한 술 맡은 관원이 감옥에서 나가서 2년 동안 요셉을 잊어버리게 된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왜냐하면 술 맡은 관원이 감옥에 나갈 때 요셉의 나이가 28세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는 애굽의 법에 30살이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술 맡은 관원이 감옥에 나가 요셉을 잊어버리게 된 것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리고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통하여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의 전생에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마치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 있는 것과 같습니까? 그렇게 믿었던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잊어버렸던 상황과 같습니까? 그래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상황입니까? 그래서 지금 내 삶을 보았을 때 그 어디에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무지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80: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요셉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요셉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의 목자도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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