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러므로 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전부터 선택하셨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부터 선택하신 동기는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전부터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으므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선택하셨으니) 이는 그(예수님)로 많은 형제(우리)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형제가 되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맏형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기서도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신 분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부터 선택하여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가운데서 “그러므로” 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심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셨으므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13장 14절에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서 벽에 기대고 슬피 울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하는 어린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침 그 옆에 성경책이 있어서 폈는데,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방탕한 삶을 접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롬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서로 받으라
여기서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본 받아서 서로 받고 용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우리는 복음주의를 넘어서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교단입니다. 복음주의란 —에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죄인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복음주의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전도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게 하는 것이 복음주의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주의는 우리가 –에서 구원을 받은 것만 아니라 -을 위한 구원을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죄인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데서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디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주의에서는 단순히 그 사람을 빼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수렁해서 빼내는 것만으로 다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혁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수렁에 빼낼 때 그냥 빼내지 않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사람을 빼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수렁에 빠진 사람을 빼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빼낸 사람을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다듬어 가는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때 아무 목적이 없이 우리를 선택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구원과 선택)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과 선택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구원받기로 선택하신 자는 반드시 그 구원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구원받기로 선택하신 자는 반드시 그를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창 12장에 보면 위기의 때에 바로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로의 손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창 13장에서 롯과 헤어지면서 점점 더 성화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롯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헤브론 땅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창 15장에서 아브라함은 그와 사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있으리라는 말씀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3년 동안 그에게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창 17장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와 사라 사이에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창 21장에서 아비멜렉에게 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창 22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 합니다. 무엇을 시험하고 있습니까?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사실 독자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자신의 생명 이상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삭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창22: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순종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을 통해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창 22장에서 이삭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린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 바칠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창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 22장 9절에 보면 “창22:9.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나무에 결박당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삭이 아브라함보다 힘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전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부르신 목적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ㅇ르 본받게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롬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먼저 큰 자인 에서를 버리시고, 작은 자인 야곱을 선택하시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있는 그대도 보면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큰 자로서 어린 자를 섬기는 모습은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야곱을 부르신 목적도 예수그스도와 같이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삶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무조건 속여서라도 장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외삼촌 라반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얍복강에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환도 뼈를 꺾으시면서 큰 자이시지만 져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야곱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창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야곱은 큰 자이시지만 져 주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창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섬기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에서에게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에서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한군데 있습니다.
“창37:2. 야곱의 족보(이야기)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
여기서 야곱의 족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이야기라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시면 야곱의 이야기는 이러하니라 고 하면서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요셉이 죽기까지 낮아졌다가 나중에 애굽의 총리로 높아지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을 일방적인 사랑으로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낮아지시고 섬기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언제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목적을 완전히 깨닫습니까? 그가 죽기 직전에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입니다(창48:14-20). 당연히 오른 손으로 장자를 축복하고, 왼 손으로는 차자를 축복해야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장자가 차자에 비해서 복을 두 배나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재산이 3이면 큰 아들은 2를 받고 작은 아들은 1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장자에게 오른 손을 얹으소서 라고 합니다(창 48:18). 그러니까 야곱은 창 48장 19절에서 “창48: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작은 자)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죽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목적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자가 큰 자가 되게 하는 복을 주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작은 자를 선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 대신 아벨을, 함 대신에 셈을, 이스마엘 대신에 이삭을, 에서 대신에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작은 자인 에브라임을 므낫세 보다 더 큰 복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낮아지시고 섬기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왜 로마서에 우리로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왜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우리 안에 반드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더 낮아지고 섬기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날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으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무엇을 하더라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 동안에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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