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성경 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쓰여 진 책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한복음은 성경에서 제일 먼저 쓰여 진 창세기와 서로 비교를 이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면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2절에서는 말씀이신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으로 성부하나님과 같이 말씀으로 이 세상은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하나도 말씀이신 예수님이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4절에서 예수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다시하면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생명을 가진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 바로 빛입니다. 그래서 창1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1장4절에 보시면 “요1:4. 그(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이신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지금 이 세상이 어두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는데, 왜 이 세상에 어두움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장23절에 보면 “렘4: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 세상은 인간의 죄 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과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창1장 2절에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태양이 비치니까 이 세상은 여전히 빛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도 지구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 세상이 질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무언가 이 세상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실 때 빛이 없는 어두움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서가 파괴된 혼돈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허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이 태초에 창조하신 세상과 비교할 때 어두움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태초에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다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 창조사역이라고 하고, 또한 구원 사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18절은 서론이고, 19-28절이 첫째 날이고, 또 29-35절은 둘째 날이고, 35-42절은 셋째 날이고, 43절부터 51절은 넷째 날이고, 요 2장에는 일곱째 날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7일 동안 창조하신 것처럼 요한복음 1장과 2장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7일 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중에서 7가지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재창조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7일 동안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기뻐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7일째 가나혼인 잔치에 물로 포도주를 창조하신 그 사건을 통해서 그 이전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창조 때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빛을 창조셨는데, 재창조 때는 예수님 자신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인간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거울로서 온전히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거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은 사탄의 모습을 나타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례요한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6-8절에서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계속 강조하는 것이 세례요한이 빛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빛에 대하여 증언하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이 세상으로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시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절대 우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의 인간적인 것들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 인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빌 3장에서 인간적인 모든 자랑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유일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오직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증언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세례요한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바람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죽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은 오직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다 증언 하다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더 온전히 세례요한과 같이 예수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증언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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