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욥의 고난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 모든 자녀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 또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또 사랑하는 아내에게 버림을 받는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를 보면 욥의 가장 큰 고난은 욥의 친구들로 인한 고난입니다. 그들은 욥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욥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가장 큰 상처와 고난을 주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큰 고난과 고통은 말로 인한 고난과 고통입니다. 또 마음에 입은 고난과 고통입니다.
욥기 4장과 5장은 욥의 친구 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이 나옵니다.
엘리바스의 말을 보면 어느 하나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모두 옳은 말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서 이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어떠합니까?
욥기 4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중에서 데만사람 엘라바스과 두 친구들에게 분노하시며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이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 옳다고 말한 것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는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한마디로 하면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4장 7절에 보면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합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기억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생각 또는 기억은 율법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즉 율법을 보면 죄 없이 망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있는 자를 반드시 벌하시고 정직한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과응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지금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5: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네가 아무리 부르짖고 기도해도 응답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절대 너에게로 향하여 얼굴을 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도 보면 범죄 한 유다백성들을 향해서도 너희가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 만큼 욥에게 고통을 준 말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욥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욥이 구할 것은 하나님의 얼굴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지금 네가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고, 얼굴을 너에게로 향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비수를 꼽는 이야기를 합니다.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지금 엘리바스가 무슨 말은 하는 것입니까?
“욥아 너는 분노하는 자였다. 그래서 네가 분노함으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었다. 또 욥아 너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어리석은 자였다. 그래서 너의 시기와 분노의 죄로 너는 지금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구절만을 보면 엘리바스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분노와 시가가 결국 그 사람을 죽이고 파멸로 이끈다는 이 알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 욥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사실 욥에 몸에 상처를 입는 것보다 이 말이 욥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또 6절에서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이 말도 무슨 말입니까?
“지금 네게 당하는 모든 고난은 결국 이 세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까? 맞는 것 같은데 틀린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욥기 1장을 보지 않았다면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욥기 1장에 보면 욥에게 고난을 준 자는 사탄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사탄의 고난을 잠시 허용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을 허용하신 것은 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욥의 고난 중에서 가장 큰 고난은 말로 인한 고난입니다. 무엇보다 바른 말을 통한 고난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말로 인한 고난을 줄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고난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이것에 대해서 분노하시면, 잘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당하는 자에게 제일 큰 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같이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려는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왜 이런 말씀들이 기록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욥이 친구들의 바른 말을 통한 고난이 얼마든지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만일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말을 통한 고난을 받고 있다면 욥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가 없이도 고난을 받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을 생각해야합니다. 무엇보다 죄가 없이도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 주위에 욥과 같이 고난당하는 자가 있다면 아무 말이 없이 기도로만 그를 위로해 줄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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