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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욥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욥2:1-10)

by 금빛돌 2020. 9. 26.

오늘 본문에는 욥의 고난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절에 보시면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고 합니다.

사탄은 대적자, 참소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까닭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참소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여기 저기 다니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겠지만 사탄의 존재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사탄은 욥이 무슨 까닭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욥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욥에게 마치 자랑하듯이 말합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욥기를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는 신앙의 모습은 무엇 때문에의 신앙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구약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은 항상 무엇 때문에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있으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이라도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없으면 금방 돌이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또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내게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제 욥에 대한 사탄의 마지막 시험은 그의 육체를 치시는 시험입니다.

이렇게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5절에 사탄은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도록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탄만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의 아내도 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의 아내는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것만 아니라 죽으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욥이 어떻게 말합니까?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요즘 우리나라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샤마니즘적인 신앙입니다. 샤마니즘적인 신앙이 무엇입니까?

샤만이란 보통 무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샤만 즉 무당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당은 인간에 무조건 복만 빌어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그에게 정성만을 바치면 무조건 복만 빌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샤마니즘적인 신앙입니다. 이 샤마니즘적인 신앙의 특징은 철저히 기복주의적입니다. 오직 이 세상적인 복을 받는 것만이 샤마니즘적 신앙의 특징입니다. 또 샤마니즘적인 신앙은 윤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부정을 행한다할지라도 오직 육신의 복만 받으면 된다는 신앙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불교를 믿건 천주교를 믿건 기독교를 믿건 모두 샤마니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욥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도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왜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만 아니라 화도 주십니까?

욥의 경우에는 우리의 신앙은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참인지 거짓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시험가운데 드러납니다. 그래서 시험은 우리의 신앙은 오히려 순금과 같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또 이스라엘백성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범죄 함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 했는데, 화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증거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만 아니라 화도 내리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럴 때 우리의 자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더 겸손해야합니다.

반대로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 우리는 어느 한 순간에도 우리의 입술로 범죄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더 순수하고 단단해지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복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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