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동문을 지나 성소와 지성소로 가기 전에 성전의 바깥뜰에 관한 말씀입니다. 17절에서 바깥뜰을 공동번역에서는 마당이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17.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마당)에 들어가니 뜰(마당)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서른이며
그래서 그림으로 보시면 이렇게 서쪽을 제외하고 성소와 지성소 주위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성전의 바깥뜰이 성전의 마당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깥뜰 즉 마당의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습니다. 여기서 박석이란 마당에 깔려 있는 얇은 돌입니다. 여기서 마당에 얇은 돌을 깔아 놓는 것은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때 흙을 밟은 발로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때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얇은 돌을 깔아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마당은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깨끗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성전마당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천사가 또 이렇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계10:1. (천사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고 합니다.
1절에서 보시면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줍니다. 이 갈대는 치수를 재는 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갈대 자를 가지고 어디를 측량하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측량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이 제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또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란 하나님께서 계신 성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성전과 그 안에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갈대 자로 측량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측량하라는 것은 재난에서 보호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슥2:1).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재난과 환난가운데서 보호를 하신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성소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모든 재난과 환난가운데서 보호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 안에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측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10: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성잔 바깥 마당을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밖에 내던져 버리고 측량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주었다는 것은 이방인과 같이 취급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전 마당만 밟고 다니는 사람은 환난이나 재난이 있을 때 그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성전마당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1)첫째,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성전마당만 밟고 가는 자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무엇 때문에 교회를 나옵니까? 단순히 일 때문에 교회를 나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일학교로 바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정말 성전마당만 밟고 다시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지방에 있을 때도 이런 청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수련회를 하면 캠프파이어 준비를 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하느라고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수련회기간 동안 한 번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일만하다가 돌아갑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에는 결국 신앙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또 몸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실제 설교시간에 앉아서 회계장부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 일이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을 채찍으로 쫓아 보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실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일이란 원래 예배를 돕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물이 상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와서 제물을 삽니다. 그래서 원래 성전에 제물을 파는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일은 예배를 돕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사람은 제물을 파는 일만 하지 그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쫓아 보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운데 교회에 와서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또 누가 성전마당만 밟고 다니는 사람입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닙니다. 또 예배도 열심히 드립니다. 또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합니다. 이들은 예배를 열심히 드리지만 성전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나오지 않는 자들입니다. 또 지금도 살아계시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할 때 진정으로 말씀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누가 성전마당만 밟고 다니는 사람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 말씀에 보면 누가 성전 마당만 밟는 자입니까? 수많은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만 고아와 과부를 괴롭게 합니다. 그들의 억울함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 요구와 내 기도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성전 마당만 밟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전마당만 밟고 다니는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예배의 자리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위에 고아와 과부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까? 약한 자들이 있습니까? 절대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돌보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진정한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예배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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