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담장의 높이가 한 장대 즉 3미터이고, 또 두께도 한 장대 즉 3미터입니다. 이렇게 담장의 높이고 3미터이고, 두께도 3미터인 것은 이 성전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이 성전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본 이 성전인 신약시대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서 교회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성도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성전은 어디서나 들어갈 수 있는 있는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은 양의 문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담장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통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의 벽을 두껍게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성전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모시고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성전의 문중에서 정문에 해당되는 동쪽 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 그가 동쪽을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의 통로를 측량하니 길이가 한 장대요 그 문 안쪽 통로의 길이도 한 장대며
레 1장 16을 보면 성막의 출입문도 동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민 3:38; 10:5을 보면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족속이 이동하는 순서도 동쪽에 위치한 지 파부터였습니다. 또 겔43장4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으로 들어오기 곳도 동쪽으로 난 문이었습니다. 겔8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전해진 곳인 북문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 성경에서 동쪽은 출입문이 있는 곳이며 진행하는 방향의 중심축으로 자주 사용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성전의 정문이 동쪽이겠습니까? 왜 동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옵니까? 어떤 분들은 동쪽이 태양이 뜨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보시면 태양의 빛이나 자연의 빛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석굴암은 동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와 지성소에서는 오직 등대의 불빛으로 비추기 때문에 태양의 빛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 창세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4장16절에 보면 “ 창4:○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에덴의 동쪽은 가인이 하나님의 앞을 나서 유리하고 방황하다가 거한 놋 땅이 바로 에덴의 동쪽입니다. 그래서 에덴의 동쪽이라는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에덴의 동쪽은 좋은 곳이 아닙니다. 에덴의 동쪽은 범죄 한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유리하고 방황하다가 이 세상에 아주 거하여 살고자 했던 곳입니다. 성전의 정문이 동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앞을 떠나서 이 세상 가운데 방황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오늘도 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소와 지성소라는 사랑을 방을 준비해놓으시고, 하나님을 떠나 에덴의 동쪽에 있는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담을 통해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오직 양의 문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로만 통해서 얼마든지 나의 지성소로 들어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떠나서 유리방황하는 곳을 향해서 열려 있는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로 들어갈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그가 동쪽을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라고 하는데, 이 층계는 7계단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길이가 한 장대요 너비가 한 장대요 각방 사이 벽이 다섯 척이며 안쪽 문 통로의 길이가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 문이 있으며
동문에 보면 그 문간에 문지기들의 방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그 문지기들 각방 사기에 벽이 다섯 척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왕실 규빗으로 보면 50센티로 보면 5*5=25 해서 2미터 50이 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동쪽 문지기들의 방이 있는데, 각 방사이의 두께가 지나치게 두껍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담장의 두께도 한자 즉 3미터였는데, 이제 문지기들의 방들의 두께도 2미터 50도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담장의 두께를 두껍게 하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동문에 들어가는 문지기들의 방사이의 두께조차도 두겁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사이에 아주 두꺼운 벽이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절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사이을 갈라 놓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사이에 막한 모든 담을 허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 우리사에서 벽이 두껍게 있다는 것을 무엇을 나타내겠습니다.
만일 우리 사이에 앞 뒤로 벽이 두껍께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절대 우리의 기도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기도 할 때 우리의 기도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절대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할 때 절대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거나 들리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는 길거리 모퉁이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 기도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한 것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그 어떤 누구도 보이지 않는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실제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시간 기도할 때 절대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또 우리의 기도가 사람들에게 들리게 하기 위한 기도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는 너희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또 만일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는 절대 하나님께서 들으시지 않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어떤 누구도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식하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식하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오직 하나님만 받으시는 참된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약성경연구 >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 마당(겔40:17-19) (0) | 2019.10.17 |
---|---|
성전 문지기(겔40:7) (0) | 2019.10.15 |
성전 담장의 높이와 두께(겔40장1-5) (0) | 2019.10.15 |
회복의 비결(겔36:33-38) (0) | 2019.10.12 |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겔10:1-22) (0) | 2018.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