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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에스겔

성전 담장의 높이와 두께(겔40장1-5)

by 금빛돌 2019. 10. 15.

40장부터는 48장까지는 새 성전의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초반에 보면 유다나라가 멸망하게 된 이유가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과 함께 유나 나라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유다나라 백성들의 가장 큰 자존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나라의 멸망과 함께 이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겔40:1절을 보시면 40: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합니다.

에스겔에 포로로 잡혀간 지 25년이 지났습니다. 또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고 성전이 파괴가 된지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 포로로 잡혀온 유다나라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절망이었습니다.

3310절에 유다나라사람들은 33:10.--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즉 멸망)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제 완전히 절망이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은 항상 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을 보면 현실가운데 희망이 없을 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유다나라가 멸망 직전이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할 때는 이 세상의 왕은 바벨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세상의 왕이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이 온 세상의 왕이시라는 환상은 절대 허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파괴가 된지 14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절에 보시면 에스겔을 데리시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십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몸은 바벨론 땅에 있지만, 그의 영혼을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이상 중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매우 높은 산에 내려놓습니다.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는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새 성전입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시고 이제 새 성전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새 성전에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이 삼 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새 성전의 문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은 천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 줄은 긴 공간을 재는 도구로서 땅의 길이를 잘 때 사용하는 도구이고, 또 측량하는 장대는 짧은 공간인 성벽의 두께와 높이는 잴 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가 새 성전을 재는 도구들을 가지고 새 성전의 문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여기서 그 사람은 측량도구를 가지고 있는 천사입니다. 그 사람에 에스겔에게 이르기를 네게 보이는 새 성전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또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족속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새 성전의 환상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에스겔에 본 새 성전의 환상은 너무나 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엄청난 영적인 교훈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을 잘 살펴보면서 그것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 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 여섯 척이라 그 담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도 한 장대며

여기서 집은 새 성전을 가리킵니다. 새 성전은 사방으로 담이 있습니다(그림). 성전을 측량하는 사람이 성전을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길이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 여섯 척이라고 합니다.

보통 이스라엘사람들이 길이를 재는 단위는 한 규빗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까지입니다. 이것은 대략 45센티 정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여기에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라고 합니다. 이것은 왕실 규빗이라고 해서 왕실을 잴 때 사용하는 단위입니다. 그래서 보통 규빗이 45센테인데, 여기서는 왕실 규빗으로 해서 대략 53센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6()이니까 대략 5*6=30 해서 3.2미터입니다. 그러니까 한 장대의 길이가 3.2미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잘 보시면 담의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도 한 장대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담의 높이가 한 장대 즉 대략 3미터 정도가 되는데, 두께도 한 장대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높이가 대략 3미터 되는 것은 우리가 조금 이해가 되는데, 두께도 3미터가 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을 감사하고 있는 담의 두께가 왜 이렇게 두꺼운 가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새 성전의 담장의 두께가 3미터나 됩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성전이 타락했을 때의 환상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 8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여기서 보시면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했을 때 담에 구멍이 있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담에 구멍이 있다는 것은 실제 구멍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환상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했을 때 환상을 보면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씀이겠습니까?

거룩한 성전에 이 세상의 것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이 세상의 것들이 마음대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았듯이 예루살렘 성전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 각종 우상을 섬기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성전의 높이도 3미터이고, 두께도 한 장대 즉 3미터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은 이 세상에 대하여 높은 담을 쌓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성전은 이 세상의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 두꺼운 담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실제로 교회 건물을 지을 때 담장을 높이하고 담을 뚜겁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에스겔이 환상으로 보고 있는 이 새 성전은 신약시대에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먼저 교회를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우리를 성전을 이루는 건물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인 성전이 되어간다고 합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인 성전이 되기 위해서 교회의 담장이 높아야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성전이 되기 위해서 이 교회의 담장에 구멍이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물결이 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면 너무 담장이 낮습니다. 아무나 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 담장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렇게나 교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아니 그러면 교회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을 보면 담장은 높고 두꺼운데, 어디서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세 개가 있습니다. 북문, 남문, 동문입니다. 이 동문이 정문이 되는 문입니다.

이 문은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양의 문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통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성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내가 의롭지 않아도 병이 들어도 누구든지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누구나 다 성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 아무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성전인 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 안에 이세상의 것들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서 이 교회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을 높이 쌓고, 또 아무 것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을 두껍게 쌓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통해서 교회의 담장을 더 높이고, 교회의 담을 더 두껍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신약시대에 성전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실 처소인 성전입니다.

바로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세상과의 담장을 높이 쌓아야합니다. 또 이 세상의 것들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의 두께를 두껍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봉한 샘에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가서에 보면 봉한 샘이 나옵니다. 봉한 샘의 반대는 열린 샘입니다. 뚜껑이 열린 샘물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밑에서 샘물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맑은 샘물이 솟아나도 샘이 열려 있으면 그 샘물은 더러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향하여는 열린 샘이 되시고,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봉한 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에 대하여는 봉한 샘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무 민감한 열린 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성전의 담장을 통해서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이 세상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 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 성전의 담장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이 세상의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과의 담장을 더 높이하고 두껍게 할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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