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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가난한 과부의 헌금(막12:41-44)

by 금빛돌 2012. 2. 25.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헌금함 맡은 편에 앉아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전에는 헌금함이 13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계시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당시에는 돈은 지폐가 아니라 동전이기 때문에 헌금함 앞에 있으면 동전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얼마를 헌금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풍족한 가운데서 헌금하는 것도 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관심을 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입니다.

14: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맡은 편에)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그런데 이 과부는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두 렙돈은 당시 화폐단위로 말하면 제일 작은 화폐단위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삭인데, 두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100분의 일도 되지 않는 돈입니다. 지금식으로 말하면 라면 한 개 값에 해당되는 헌금입니다(700-800). 그런데 이 여인에게 그 돈이 자신의 생활이 전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하루에 라면 한 개를 살 정도의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여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풍족한 가운데 많이 넣는 헌금보다 이 가난한 과부가 가난한 가운데 넣은 이 작은 헌금이 더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어떤 목사님이 전도사님으로 그 교회에 처음 가셨을 때 그 교회에 집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 우리교회에서는 절대 헌금설교를 하지 마십시오, 헌금설교를 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도사님이 어떻게 설교하시는가를 잘 듣고 은혜가 되면 알아서 헌금할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도님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설교가 헌금에 관한 설교입니다. 또 목사님들도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설교가 헌금설교입니다.

-그런데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헌금에 관해서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헌금에 관해서 설교를 적게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중요한 것은 헌금에 관해서 바르게 설교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헌금에 관해서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없는 것을 설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을 설교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헌금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헌금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가 무엇인지를 먼저 말씀을 드리고 헌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헌금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지 돈이나 물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나 물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보면 돈과 물질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하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물질을 창조하시니라고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질을 창조하시고 이 물질을 우리에게 청지기로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지배받지 말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를 하고난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범죄한 인간은 돈과 물질을 대한 청지가가 아니라,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물질과 돈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하듯이 돈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전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범죄 한 인간에게 있어서 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범죄 한 인간에 있어서도 돈은 하나님보다 더 큰 욕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 범죄 한 인간들은 돈과 물질의 양을 가지고 인간 존재를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이나 물질이 많은 사람은 무겁고 존귀한 존재로 보게 되었습니다. 또 돈이나 물질이 없는 사람은 가볍고 하찮은 존재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범죄 한 인간들에게 물질과 돈은 하나님의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네가 하나님을 주로 섬길래 아니면 물질을 주인으로 섬길래고 말씀하십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큰 우상이 될 수 있는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의 주인이 이제 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물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청년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물로 듣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자신의 삶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도 그 청년이 헌금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이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한 번도 돈을 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아 보이든 그 청년은 이제 신앙생황은 하지 않고 오직 돈만 쫓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받으신다. 그래서 하나님 내 마음만을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담겨져 있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가 헌금을 할 때도 이 헌금 속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합니까?

//그리고 이 물질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물질을 드림으로 물질에 대한 나의 모든 욕망을 끊어버리겠다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또 이제는 내가 이 물질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또 이 물질의 양으로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물질의 양으로 우리의 존재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년과 희년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물질을 하나님께 전부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우리 모두가 본질상 가난한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부자건 가난한 자건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가난한 자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헌금이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림에 있어서 헌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과부가 드린 물질의 양은 한 끼 간식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그 헌금에 자신의 마음 전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양이 아니라 이 과부의 마음의 양이 부자보다 더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헌금을 드릴 때 우리의 온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을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

또 우리가 가진 헌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헌금을 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헌금을 단순히 의무감과 부담감이 아니라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8장을 읽어보겠습니다.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 그 환난보다 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아멘). 이것을 마게도냐 교회에게 주신 은혜라고 합니다.

또 무엇이 은혜라고 합니까?

극심한 가난 가운데 풍성한 연보(헌금)를 넘치도록 하게 한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헌금이란 무엇입니까? 헌금이란 억지로 내는 세금이 아닙니다. 헌금이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는 헌금을 말할 때 모두 은혜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참으로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절망이었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에 기도를 하다가 잠을 자려고 했는데, 염려와 걱정과 절망스러운 마음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하다가, 거의 밤12시를 넘겼습니다. 그때 갑자기 순간적으로 제 마음 가운데 "감사를 해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러면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끓고 무조건 감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감사를 외쳤습니다. 마치 염불을 외우듯이 무조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렇게 한 한참 감사를 외치는 가운데 처음에는 무조건 의식적으로 감사를 했는데 계속 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진심으로 내 속에서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하나님께 너무도 감사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감사 감사하면서 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감사로 밤을 세웠는데, 그 다음 날 주일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새신자 예배시간에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교회에 가서 새신자 예배시간에 말씀을 마친 후 헌금시간에 돈을 내지 말고 감사의 쪽지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시간에 감사쪽지를 받고 감사의 제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감사의 쪽지를 나누는데, 매주 마다 어떤 분이 빠닥빠닥하고 깨끗한 천원짜리 세장씩을 헌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신사부 총무를 하시는 집사님이 광고를 할 때 "여러분 이 시간에는 돈으로 헌금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신 자들이기 때문에 헌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헌금을 하지 마시고 그냥 감사쪽지만 내주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삼천 원 헌금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가 하는가를 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주위에 살던 아주 가난한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교회에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는 그런 할머니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한 달에 생활보조비로 8-9만원씩 받아서 혼자 살아가시는 가난한 분이었습니다. 또 제가 생각할 때 아마 글도 적을 줄 모르는 할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그 할머니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서로 나누자고 하니까//글도 모르고, 적을 줄로 모르지만, 그래서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로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매주 깨끗한 새 돈 삼천원"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 돈은 어떤 부자의 삼천만원보다 더 값지고 귀한 헌금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헌금이 무엇입니까? 헌금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몇 년 전에 교회 작정헌금을 끝내놓고 난 뒤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정헌금을 다 하고 나니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은 헌금을 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해서 백성들과 함께 헌금을 한 후에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대상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와 같이 헌금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할 때 가슴이 찢어지도록 마음이 아픕니다. 그것은 요즘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힘들고 또 앞으로 어려울 것이 예상이 되는데, 교회에서 또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도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가 하는 말이 요즘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헌금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과 함께 헌금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았을 때 이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당시의 유대종교가 가난한 과부의 모든 재산을 다 갈취할 정도로 헌금을 강조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헌금강조가 오늘 본문 그 다음 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성전을 망하게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저는 몇 달 동안 이 두 번째 해석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설교가 우리 가운데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과부의 호주머니를 빼앗기 위한 설교라면 제가 하나님께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헌금과는 관계없는 이 주일에 성경의 순서를 따라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헌금은 절대 의무감이 강요가 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헌금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드려져야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양을 하나님께 드렸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얼마를 하시든, 그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헌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을 믿습니다.

----또 헌금은 단순히 돈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먼저 네 자신을 드리고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헌금과 헌신은 같은 것입니다.

--또 이 헌금 속에 이웃사람의 표현이 되어야합니다. 고린도후서에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이 헌금을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헌금을 드리면서 사랑으로 돌아보아야할 성도님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께 내가 얼마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할 때 그 마음이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처음 내가 마음으로 100만원을 생각했다가, 또 현실을 보니 50만으로 줄이고, 또 막상 낼 때 생각해보니 10만원으로 생각했다 막상 행동으로 옮길 때 5만으로 줄어들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마음으로 작정한 헌금이라면,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절대 부담감과 의무감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드리는가 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5012. 이 땅이 내 것이요 땅에 가득한 것도 내 것인데, 내가 배고픈들 너희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13. 내가 쇠고기를 먹겠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사람이 하나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약속한) 것을 갚는 일이다.

--또 헌금에 대한 오해는 헌금이란 단순히 교회의 사람들에게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헌금)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육신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빌립보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편에 바울에게 준 헌금은 단순히 바울에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의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육신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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