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겟세마네란 말은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름을 짜듯이 기도의 땀과 피를 짜 내고 계십니다.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는 우리가 하는 모든 기도의 절대적인 모범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눅22:40. 그 곳(겟세마네)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38).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자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게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이 겟세마네동산의 예수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1)첫째는 기도는 습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는 십자가를 자시기 전에 예수님의 특별기도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겟세마네)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이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는 특별한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습관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뒤에 보면 가룟유다조차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는 제자들과 겟세마네동산에서 습관적인 기도를 하시다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더 특별히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위급한 상황가운데서 특별히 기도를 하셔야할 분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위급한 상황에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위급한 상황가운데서 특별히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를 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평상시에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습관이 되어 있는 분들은 일이 없을 때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십니다. 그러다가 위급한 일이 있으면 더 특별하게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는 분들은 위급할 때도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기도의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도에 있어서는 저희 할머니와 저희 어머니를 기도의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잠에서 깨게 된 것은 뒷간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저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단순히 울음소리로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어머니의 습관적인 기도였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월요일에 특정한 시간에 집에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항상 기도하러 가셨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시다가 집에 위급한 기도제목이 있으시면 어머니는 특별기도를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도의 습관이 있으십니까? 내가 적어도 하루에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그 시간만큼은 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그 시간만큼은 내가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습관적인 기도의 시간이 있습니까?
//아주 바쁘신 어떤 남자 성도님들은 출근할 때 차에서라도 기도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직장에 가서 제일 먼저 습관적으로 그 날 하루를 두고 기도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어떤 남자 성도님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신데, 하루에 알람시간을 세 번 맞추어 놓고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시다가 그 분이 사업에 어려움을 당할 때 정말 흔들리지 않고 더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침 9시가 되기 전에는 기도실에서 나오지 않는 습관을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집에 어떤 일이 없으면 그 장소와 시간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약속한 기도의 시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힘이 들어도 정말 습관이 되니까 그 아침 기도시간이 제게 영적으로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처럼 습관적인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기도하다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더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내 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를 한다는 것도 내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간절히 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된 기도가 아니라 농성기도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설득하여 하나님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나를 설득시키고, 나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설득시키고, 굴복시켜야합니까?
그 이유는 내 육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항상 충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청년독서모임에서 용서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용서를 빌지 않아도 용서 해주어야 한다. 용서란 내 삶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으로 용서해 주어야한다. 그래서 용서란 감정이 아니라 순종이다. 용서란 단순히 내 상처를 치유하고, 또 인간관계를 회복시켜주기 위함이 아니라, 용서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래서 용서하면 하늘의 문이 열린다. 하늘의 문을 열기 위해서 서로 용서하자. 용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갈급함의 문제다”. 이런 내용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나누고 난 다음에 저를 포함한 모든 청년들의 느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기기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원초적인 본능은 복수입니다. 우리는 복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허용을 합니다. 복수는 인간이 살아가는 최고의 본능이자 활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겠고 하늘의 문을 닫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설득해야합니까? 그것은 우리 육신의 본성은 항상 하나님의 뜻이 항상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아무리 용서해야한고 배워도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용서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용서는 절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합니까?
그것은 내안에 복수하려는 내 뜻이 없어지고 내 안에 용서하려는 하나님의 뜻만이 있을 때 그때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예수님처럼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나를 하나님의 뜻에 설득시키고, 굴복시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예수님의 이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란 노동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난주 청년들이 다녀왔던 예수원에 가면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고 하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기도를 건성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셔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노동하는 것처럼 영혼만 아니라 육신의 온 힘을 다하여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기도하시는 분들을 보면 기도 때문에 얻었던 육신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한쪽다리가 항상 부어 있으셨습니다. 또 코는 메부리코처럼 되어 있으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옛날에 겨울에 매일 밤 철야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방이 잘 되지 않는 겨울철에 철야를 하시면 매번 다리에 동상이 걸릴 수밖에 없으셨고, 또 코도 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철이 없어서 그 모습을 보고 놀려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도를 통한 영광의 흔적들이십니다.
/혹 여러분들은 기도 때문에 몸이 상하여 본 적이 있으십니까? 기도 때문에 몸이 피곤하여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러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통한 영광의 흔적들입니다.
또 이렇게 기도를 노동으로 여기시는 분들은 노동도 기도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예수원에서 청년들이 한 것은 조용하게 기도하고, 또 나머지 시간들은 노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노동처럼 하는 사람들은 노동을 기도처럼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지난주에 면접하러 오신 어떤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이 기도라는 사실을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우들에게 생강차를 끓여주는데, 생강을 씻지도 않고 끓어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씻지도 않은 생강차를 끓인 것은 당신은 먹을 수 있습니까?” 하니까 “절대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먹을 수 없는 생강차를 어떻게 학우들에게 줄 수 있습니까”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생강을 그 전도사님이 일일이 다 씻어서 차로 끓여서 학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학교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생강을 열심히 씻는 것도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노동처럼, 노동을 기도처럼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또 예수님의 이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란 영적인 싸움이라는 사실을 배울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시험은 사탄의 영적인 시험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보면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탄의 시험은 실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을 때, 그때 사탄의 무리들은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잡으려고 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 다음에 사탄의 무리들이 가룟유다를 앞세워 예수님을 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왜 우리가 항상 깨어서 기도를 해야 합니까? 지금도 사탄이 우리를 잡으려하고, 삼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할 때와 기도를 하지 않을 때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기도를 하지 않을 때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항상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또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나의 싸움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는 교회는 항상 눈에 보이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웁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나의 싸움의 대상이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함께 미워하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함께 미워하는 내 속에 역사하는 사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교회는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싸움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교회는 사람과 더불어 싸우지 않고 사탄과 더불어 싸우게 됩니다.
//제자들이 자고 졸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탄은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졸고 있는 순간 그때도 사탄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항상 깨어서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또 이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에서 승리해야 삶에서 승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까? 그것은 겟세마네동산에 기도에서 승리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삶에서 실패했을 때 삶의 자리에서도 실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실패하지 결국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고 깨달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말씀대로 살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아무리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말씀대로 살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좋은 계획을 세워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하는 모든 전도 선교 예배 새가족사역, 또 다음세대 교육의 배후에 철저하게 중보기도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제일 먼저 기도에서 승리하여 모든 사역에서도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마지막에 보면 기도의 삶에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제자들의 모습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기도가 습관화되지 않아서 특별히 기도해야할 때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도 기도할 때 노동하는 것처럼 육신의 온 힘을 다해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을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제자들처럼 기도의 삶에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자리에서 실패한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는 말씀 속에 기도의 자리에서 실패한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란 일어나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습관적이 되고, 또 기도가 노동이 되고, 또 기도를 통해서 내 뜻을 굴복시키고, 기도를 통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기도는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면 기도에 있어서 온 힘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 얼마든지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또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면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25장 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1)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2)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3)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4)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이 한 주간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함께 동행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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