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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이사야

이사야강해(2)회개와 회복(사1:18-21)

by 금빛돌 2017. 12. 22.

이사야 110절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B.C.8세기 당시의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눈으로 보이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다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의 죄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누구보다 거룩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를 역겨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성회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을 참아보지 못하셨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예배는 거룩하게 드렸지만, 악을 행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예배는 잘 드렸지만, 하나님의 정의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란 모든 사람을 차별이 없이 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위가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백성들은 형식적인 예배는 드렸지만, 악을 행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즈음 되면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을 완전히 버리실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제 내가 그들에게 그 어떤 말씀도 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부터 여호와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고 합니다.

앞에서 유다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꾸짖고 책망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꾸짖고 책망하시는 말씀만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꾸짖고 책망하시는 말씀만 하시다가 이제 회개와 용서에 관한 말씀도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오라고 하는 것은 걸어서 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반응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라라고 하신 다음에 원문에는 원컨대 이제 제발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꾸짖고 책망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마치 애걸하듯이 말씀하십니다.

원컨대 이제 제발 내 말에 반응 좀 해라 그래서 제발 내 말에 반응을 하고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변론이 무엇입니까? 변론은 무언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가까이 와서 너의 잘못을 한 번 더 따져 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당연히 그 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오겠습니까?

정말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더 안 되겠네 내가 당장 너희를 벌하리라고 말씀해야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여기서 주홍과 진홍이 무엇입니까? 도무지 지을 수 없는 붉은 죄를 상징입니다.

그런데 눈과 양털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죄가 없는 깨끗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같이 붉고 진홍같이 더 붉을 지라도 내가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설입니다.

너희가 내게 가까이 오라 그래서 너희들의 죄를 변론하고 따져보겠다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죄를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무조건 덮자는 말씀이겠습니까?

또 죄에 대해서 아무 조건이 없이 용서하자는 말씀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내가 너희를 용서할 뿐 아니라 너희들에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면 나를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망하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꾸짖고 책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가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있으면 내가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홍같이 붉은 죄가,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어떻게 눈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죄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십자가 앞으로 걸어서 달려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철저히 자백하고 회개하고 돌이길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더 정직하지 못하고 더 정의롭지 못함을 회개해야합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음을 두고 회개해야합니다.

정직과 공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사랑과 용서를 외치는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의와 함께 사랑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함께 정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무서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공의로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공의의 채찍을 다른 사람에게 내리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정직하지 못함을 두고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이 없음을 두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정직을 회복하시고, 또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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