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성경에 66권인데, 이사야서도 66장입니다. 구약이 39장이고, 신약이 27권인데, 이사야서도 39장까지가 1부고, 40장부터 66장까지 스물일곱장이 2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신구약 모든 성경의 압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사야서는 모든 선지서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사야서를 통해서 성경전체와 선지서가 우리에게 들려두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아 부터 히스기야 시대 60년간(B.C. 740-680년경)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 시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가 있던 북 왕국 이스라엘에 활동했던 선지자는 호세아입니다.
이 시대를 bc8세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bc8세기 때 유다와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떠한 줄 아십니까? 이때가 경제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모두 번영했던 시기였습니다. 또 무엇보다 종교적으로도 가장 부흥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살던 시기였는데, 유다와 이스라엘이 가장 죄악가운데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종교적으로 부흥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주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부흥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보면 이 시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어려움이 없기에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 없는 시기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시기 선지자를 집중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이사야 선지자이고, 호세아 선지자이고, 아모스 선지자등입니다.
그리고 이때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특히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이 법정에 재판장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서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재판장이시지만 아버지로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에 있는 내 아들을 불러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11장 1절에서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과 같이 보호하시고 기르시고 양육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장성한자가 되게 하셨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금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역했다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다 달아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소와 나귀와 같은 가축과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르는 소도 그 주인을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그들이 하나님을 정말 알지 못한다는 말이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화려한 예배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들은 그들을 향하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다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죄악 되었는지 깨닫지, 또 영적으로 얼마나 비참한 가운데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당시 유다백성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지금 이 이야기가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가? 지금 우리는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우리 몸에 병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온 머리는 병들었고,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 터진 것, 새로 맞은 흔적만 있다”고 하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유다백성들의 육신의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 그들이 영적으로 말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들어 있고 상하여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 뜻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무엇이 병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기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가 영적으로 상한 것입니까?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영적으로 우리가 매를 맞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왔을 때 진정한 영적인 기쁨과 감사와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상하게 하고 매를 맞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백성들은 이런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육신의 눈으로 보여주십니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는 영적인 매를 때리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신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눈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땅을 황폐하게 하십니다. 또 주위에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파괴를 시키십니다. 그래서 삶 가운데 하나씩 경고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경고를 주실 때 우리에게 있는 것을 완전히 빼앗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은 남겨두십니다.
그리고 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고 합니다.
여기서 소돔의 관원은 진짜 소돔의 관원이 아니라 유다백성들의 관원들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또 고모라의 백성들도 진짜 고모라의 백성들이 아니라 유다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백성의 지도자들을 소돔의 관원이라고 하십니까?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하십니까?
소돔과 고모라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유다나라가 곧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을 당할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유다나라는 그들이 스스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멸망을 당하는 죄악의 도시와 같은 유다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0절에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또 영육간에 병든 자신들의 모습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유다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11절부터 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당시 유다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을 하지 말고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신앙생활입니까?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한다할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악행을 한다면, 그 예배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절대 받아주지 아니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로서 이 땅 가운데 진정한 선행을 행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정의를 배우라고 말하십니다.
정의란 내 기준에서의 정의가 아닙니다. 여기서 정의란 하나님 앞에서의 정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정의란 절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돈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 사람이 돈이 없고 힘이 없다고 해서 절대 그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공평하게 대하십니다. 절대 차별을 두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절대 정의롭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그 사람이 돈이 없고 힘이 없다고 해서 차별을 합니다. 그래서 돈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진정한 정의를 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정한 영적인 모습을 깨닫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구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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