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 국기에 삼각형 두 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별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제일 존경하고 소망을 가지는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야가 나와서 온 세상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통일시킬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땅의 하나님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인물을 소망하고 있지만, 정작 다윗이 소망하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것과 다릅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죽기 직전에 썼던 시입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죽기 직전을 말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죽음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이며 또 그가 이 땅에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에 보면 다윗은 평생 그러했듯이 노년에도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시편들 같으면 하나님이여 “내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나님이여 저 악인들을 심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저 악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부르짖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1절에 보면 “악인들 앞에서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제 “아무 말을 하지 않겠다, 침묵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침묵하겠다는 의미도 되지만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침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다윗은 이제 잠잠히 침묵하며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침묵의 결과 어떠합니까? 침묵해도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근심이 더 심합니다.
그래서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침묵함으로) 내 속이 뜨거워서 묵상 할 때에 화가 발하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침묵하면 할수록 더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침묵하는 가운데 이제 죽음과 인생에 관한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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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종교인들이 데모를 하면서 침묵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와 천주교에서는 묵언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참된 침묵은 어떤 현실적인 목적을 두고 거리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침묵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벗어나 좀 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함으로 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너무 말이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 있으면 모두다 여기저기서 이런 말들 저런 말들을 쏟아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들만 많이 하다 보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또 더 나아가 인생이 더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다윗의 침묵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백 마디의 말보다 침묵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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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윗은 침묵하는 가운데 무엇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다윗은 침묵하는 가운데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나의 종말(죽음)과 (죽음의 )연한(때)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종말, 즉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음에 대해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조용히 침묵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앞에 관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관속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 관속에는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그 관속에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사실가운데서 제일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먹고 사는 현실의 문제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잊어버리려 합니다. 살기도 힘든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이여 아무리 내 앞에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도 나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잊지 말게 하시고,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언제든지 나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인정한다면 무엇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까? 죽음 앞에서 우리 모든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군왕도, 권세자도, 재벌가도, 학자도 죽음 앞에서는 연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나의 죽음을 알게 하사--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보다)-
--또 그 다음에 다윗은 침묵하는 가운데 무엇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이제 다윗은 삶과 인생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5절과 6절입니다.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생애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한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다윗의 일생은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여기서 셀라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멘(예 그렇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다 함께 아멘 해야합니까? 우리 인생에서 제일 잘나가고 잘 될 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그때도 진실로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뿐입니다--오늘 말씀대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여기서 허사란 말은 영화와 같은 말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합니다. 또 어떤 영화는 보면서 박수를 칩니다. 그런데 사실 그 영화는 모두 사실이 아니고 허구입니다--마치 우리 인생이 잘나 갈 때도 영화와 같습니다.
그래서 6절을 한 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와 같이 다니며, 헛된 일에 바쁘고,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도 누가 그것을 가져갈지 모릅니다---또 내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가있어도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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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다윗이 자신의 죽음과 인생의 연약함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습니까?
또 왜 다윗이 이 땅과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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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7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절“(그러나 이제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
여기 7절 앞에 원래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다윗도 젊었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다 맛보았지만--이제 노년이 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헛된 그림자와 같은 것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이 땅에서 진실로 무엇을 바라리요--이 땅에서 나의 참된 소망은 오직 주님한분밖에 없습니다---“오 주여 내가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바라리요 이 땅에서 나의 참된 소망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이것이 우리 모두의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인간이 죽음과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하면---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또 예수그리스도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그 어떤 인간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디--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소망의 시작입니다-
--또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 땅의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요, 그림자와 같고, 나그네와 같다”(6,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참된 실체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여행을 왔다가 저 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몇년전에 중국 장년 단기선교여행 할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날씨와 경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잠자리도 너무 좋았습니다. ----
그런데 그때 가셨던 분들 중에서 어느 한 분도 여기가 좋사오니--한국에 가지 말자고 말씀하신 분이 한분도 없었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본향은 한국에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이 땅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그림자와 같고 또 나그네와 같고, 저 천국이 우리 본향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합니가?
첫째//이 세상에서 우리의 참된 행복과 소망을 오직 주님께만 두고 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 땅에서 엇이 참된 행복입니까? 그것은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 또는 어떤 위치에 올라가느냐-가 행복의 참된 기준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헛된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세상에서의 참된 행복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좀 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하나님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가 지금 무엇인가 가지지 못했고, 이루지 못했기에 그것을 가지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또 내가 무언가 가졌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너무 교만하거나 자랑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그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그림자와 같습니다--슬퍼도 영화와 같고--기뻐도 영화와 같습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그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는 그림자와 나그네와 같은 세상에서 삶의 참된 목적지를 이 땅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두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 미군 군목으로 계시는 분인데, 정말 기구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남다른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선교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이민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국내에 있는 그 목사님의 동생은 정신병원에 있었고, 또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민 가서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그 모든 돈을 친구에게서 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암이 걸렸는데 한개도 아니도 두 개의 암이 걸려 생사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해서 차를 몰고 미국의 어느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항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갑자기 느보산에 서 있는 120세의 모세를 생각나게 하습니다. 그 목사님은 한때 이스라엘성지순례 안내자로 있었기에 느보산을 몇 번 가 보았습니다. 느보산의 정상에서 날씨가 좋으면 그 앞에 요단당도 보이고 여리고도 보이고 가나안땅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나아가 많아도 눈도 멀정하고 얼마든지 가나안땅에 갈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가나안땅을 목적지로 살아왔던 모세를 가나안땅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 같았으면 하나님께 지금처럼 원망하고 불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 전혀 불평하지 않고 그냥 사라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은 저 가나안땅이 아니라--저 천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전혀 원망하지 않고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그 목사님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내가 바라고 소망하고 꿈꾸었던 것은 이 세상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이 땅의 가나안땅만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내가 갈 곳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라는 사실을, 나의 참된 본향은 저 천국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땅은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제 이 땅에서의 불행과 슬픔 이것을 초월하겠습니다. 이제 저 천국을 소망하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러 이라크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 이제 놀랍게 역사해주셔서--정신병원에 있던 동생도 나오게 하시고, 또 아내의 암도 한 개는 고쳐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저 저 천국에 대한 더 큰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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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장 13절부터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저 천국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이)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14 이 사람들은 (저 천국의) 본향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15 저희가 이 세상의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으니 곧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하늘의)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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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진정으로 이 땅의 모든 삶이 나그네며, 그림자며, 또 저 천국을 준비하는 삶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천국의 곡간에 얼마나 보화를 준비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이 땅의 복만 생각하고, 또 이 땅에서 다 영광을 받고--저 천국에서 아무런 영광과 상급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저 천국의 곡간에 보화를 쌓아두는 여러분들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3. 또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 세상 허무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8절에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죄에서 건짐 받는 삶”-즉 “죄를 멀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기에 이 땅에서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또 이것은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 완벽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는 살아야합니다.
또 우리가 저 천국을 바라보면 살아가는 삶이란 단순히 저 멀리 있는 세계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이 세상에서 죄를 멀리는 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죄에서 멀리는 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또 다윗은 우매한 자에게서 욕-즉 수치를 당치 않는 삶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허무하고 헛된 이 세상가운데서 살더라도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야합니다. 남들에게 수치를 받는 삶을 살지 말아합니다. 우리의 명예가 깍이는 삶을 살지 말아야합니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깍아 내리는 삶을 살지 말아야합니다. 천국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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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윗은 허무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13절입니다. “주는 (나의 죄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죽기 전에)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여기서 다윗은 단순히 육신의 건강만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건강이라는 말을 더 엄밀하게 말하면 “활력 생기 미소”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말씀을 “오주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미소를 회복시키소서”
라고 번역합니다.
----우리는 허무한 세상이라 해서 허무하게 살아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허무한 세상이지만 처 천국을 소망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미소를 잃지 말고 살아야합니다-
---마치 우리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지고 있지만-------미소를 띠고 경기를 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방송은 재 방송이기 때문입니다---계속해서 밀립니다-지고 있습니다-정말 허무하게 느껴집니다-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이승엽선수의 한방으로 역전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 허무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더라도 절대 기죽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하나님깨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언젠가는 역전승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그런데 혹 지금 내가 사는 삶에서 역전승이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이 땅에서 역전승이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저 천국에서의 역전승이 있습니다. -----
--그래서 오늘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가 비록 그림자와 같이 허무하고 헛된 이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낙담해하며 우울하게 살지 말게 하옵소서--하나님의 내게 죄가 있다면 나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하나님이여 내게 잃어버렸던 미소를 ---생의 활력을-- 생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 세상의 허무와 낙담을 밟으며 천국의 소망가운데---하나님과 함께 하는 활기있고 생기있는 미소 띤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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