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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여호수아

묵상의 은혜(수1:1-9)

by 금빛돌 2017. 4. 8.

이번에 월드컵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독일이 우승을 했습니다. 우승후보였던 브라질이 참패를 하고 독일이 우승을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분은 조직력과 개인기의 차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과 감정의 차이라고 봅니다. 독일도 8년 전 독일에서 홈에서 열렸던 월드컵 4강전에서 이탈리아와 2대 영으로 패했습니다. 그때 독일은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독일 감독이 하는 말처럼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왜 패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독일 축구는 힘의 축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힘의 축구에서 개인기를 더하고, 조직력까지 더하여 잘 준비해서 이런 결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올 한 해 우리나라를 볼 때도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사고의 원인을 차분히 잘 생각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나씩 대안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승리 이후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월드컵에서 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합니다. 잘 생각해서 다음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생각하여 낙담하고 좌절합니다. 또 반대로 분노하여 어떤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더라도 감정이 아니라 생각이 이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생각하라을 책을 쓰시기도 했습니다. 그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생각할 때 거기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도 감정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먼저 감정을 내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정을 내세우면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차분히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감정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성경에서는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219절에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억울한 고난을 받을 때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억울한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면 고난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항상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1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각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연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묵상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1편에서도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들을 보면 다윗은 모든 상황을 감정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했습니다. 또 모세도 광야에서 환경 속에서 감정적으로 살지 않았고,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살았습니다. 다윗과 모세가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게 된 비결은 하나님께 대한 묵상에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저는 여러분에게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묵상은 우리의 삶을 좌로나 우로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합니다.

여러분 혹시 다림줄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다림줄이란 건물을 지을 때 수직으로 내려오는 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다림줄은 항상 일직선으로 밑으로 내려가 있어야합니다. 만일 이 다림줄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그 건물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묵상이란 생각의 다림줄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생각의 다림줄을 하나님의 말씀위에 두지 않고 감정적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난과 상처가 있으면 우리의 생각의 다림줄이 우로나 좌로나 치우칩니다.

그래서 이 생각의 다림줄이 우로 치우치면 슬픔의 감정과 자기 연민의 감정과 자기 증오감와 우울감과 열등감과 불안감과 실패감과 죄책감과 깊은 낙담과 절망의 감정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쪽으로 치우친 생각의 다림줄의 결과는 자신을 죽이는 자살입니다.

또 이 생각의 다림줄이 좌로 치우치면 분노의 감정과 교만의 감정과 우월감의 감정과 경쟁의 감정과 군림의 감정과 완고함의 감정과 고집의 감정과 가르침을 받기 싫어함의 감정과 원망의 감정과 파괴적인 비판의 감정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쪽을 치우친 생각의 다림줄의 결과는 남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우리에게 고난과 상처가 있을 때 우리가 감정적으로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생각의 다림줄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로 치우친 사람들은 낙담과 좌절의 감정에 치우쳐 자신을 죽게 만듭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좌로 치우신 사람들은 분노하고, 공격하고 비판하여 남을 죽게 만듭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의 다림줄이 좌절과 낙심과 실망의 감정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절대 떠나지 않으며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생각의 다림줄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의 생각의 다림줄이 분노와 공격과 비판의 감정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생각의 다림줄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모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칩니다. 그래서 한 쪽은 낙담하고 좌절합니다. 또 한 쪽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죽이려고 합니다.

또 우리 개인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낙담하고 좌절하여 자포자기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더 공격적으로 나갑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지도자들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의 다림줄을 감정에 두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두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위에만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또 묵상을 통해서 강함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강함과 담대함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강함이란 어렵고 힘든 환경가운데서 그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또 담대함이란 더 나아가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환경에 지배를 받았다면 그들은 결코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의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 강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가나안의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의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도리어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가나안의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서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갔을 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려고 합니다. 그때 길 양쪽에서 우는 사자가 기독도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때 전도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도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당신을 죽이려는 저 사자를 보십시오, 그의 이빨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미 뽑혔습니다. 그리고 그 발들도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미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중간으로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머리털 끝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줍니다. 또는 좌절감을 줍니다. 이때도 우리는 감정에 따라서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사탄의 정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탄이 하늘의 전쟁에 패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사탄이 분을 내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사탄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칼에 그의 심장이 꽂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등뼈가 부러진 사탄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이단과 사이비를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절대 이런 사탄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가장 큰 공격무기인 죄의 권세를 깨뜨린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 사탄의 또 하나의 공격무기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의 부활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기셨고, 이기려고 하시고, 이기실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협하는 그 어떤 사탄의 권세도 능히 이기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묵상은 환경을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묵상으로 각종 이단과 사이비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시므로 강함과 담대함을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를 지날 때 물 없는 광야, 먹을 것이 없는 광야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같은 광야를 지나면서도 신명기 131절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모세는 같은 광야를 지나면서 원망 불평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그를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다 지나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안식처)가 되시니 (우리를 안으시는)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이 한 해 동안의 삶에 어떠했습니까? 혹시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광야와 같은 삶이었습니까?

그런데 어떤 분들은 내 삶에 광야와 같다고 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지금까지 내 삶은 어머니와 같으신 하나님의 품에 있다. 하나님은 어머니와 같이 나를 품고 여기까지 오셨다. 그리고 나를 당신의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내 아래 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지금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감정과 묵상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은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게 저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면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1: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모세는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미래의 삶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단순히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미래를 다 예비해놓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사탄과 싸워주시고,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을 말씀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두고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사울 왕을 피하여 동굴에 있을 때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피하여 동굴에 있을 때 그 동굴 속에서 신명기32장에 나오는 독수리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신명기32: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다윗은 마치 날개를 잃어버린 새와 같이 그의 인생이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동굴에서 동굴만을 보면서 언제 내 인생에 햇빛이 비칠까? 하면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울 왕에게서 피하여 동굴에 있으면서 떨어지는 새끼위로 너풀거리는 독수리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동굴이라고 했는데, 다윗은 그 곳을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라고 했습니다.

/비록 지금 내 인생이 아무리 날개 짓을 해도 내려가고 내려가는 동굴과 같은 인생이지만, 나의 하나님은 지금도 독수리와 같이 예리한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고 내 위에 너풀거리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도무지 내 인간적인 힘으로 살수 없을 때, 내 인생이 완전히 바닥을 치는 그 순간에 나를 당신의 날개로 높이 들어주실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동굴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날개 그늘입니까? 다윗처럼 동굴만을 보지 마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을 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찬송가 419장 다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1.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 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 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 리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 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 개 밑 내 쉬는 영호 영원히 거기서 살 리

3.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 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 리

넷째 묵상을 통해서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을 보면 우리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환경을 묵상하거나 사람을 묵상하거나 내 상처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야로 하나님과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통이라 함은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 어려움이 없는 삶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형통이란 아무 어려움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잊어지는 고통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말씀하시는 형통이란 그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주시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루 종일 성경책만을 보면서 하나님을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이란 치열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모세는 200만 명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울부짖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그를 품에 안으시는 어머니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또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이스라엘백성들 앞에서 모세는 그들의 길을 인도하실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기는 그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그를 독수리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묵상의 현장은 바로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이 곳만이 아니라, 이 예배당 밖에 여러분들에게 피곤함과 괴로움을 주는 삶의 현장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치열한 삶의 현장가운데서 여러분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어머니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모든 앞길을 미리 가셔서 준비하시는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독수리와 같이 여러분들 위에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의 날개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낙심되고 힘들 때 나를 절대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분노가 생길 때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시절을 따라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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