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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여호수아

여호수아강해⑤요단을 건너라(수3:1-13)

by 금빛돌 2015. 7. 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축복의 땅인 가나안땅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나안 땅은 축 환영 이스라엘백성 마음껏 들어오시오라고 하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나안땅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오면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 앞에는 난공불락의 성인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그들 앞에는 요단강이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려 할 때 그때가 제일 좋지 않은 때였습니다.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평상시 요단강은 30미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려 할 때는 보리 추수시기라 강 너비가 1,6킬로 미터나 되었습니다. 200만명이 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싯딤을 떠나서 요단강에 이르러 사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이스라엘백성이라면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이런 때에 우리로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십니까? 이제 우리에게 가나안땅은 물 건너갔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죽는구나, 여호수아는 왜 하필 이런 때에 우리를 여기로 인도했는가?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그때 이스라엘백성은 어떤 말을 했습니까?

1410.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213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의 축복을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땅 앞에 요단강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 앞에도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요단강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정의 문제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일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오랫동안 믿지 않는 남편이나 자녀가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일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할 수 없는 요단강일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는 질병이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일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결혼문제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요단강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우리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요단강들이 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백성들을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요단강으로 인도하셨습니까?

/9절과 1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가까이)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가까이)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요단강으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들을 낙심시키거나 죽이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가까이 함께 계시는 것을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10절에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가까이) 계시사”, 라는 동사와 9절에서 “(가까이) 이리 와서라는 동사(고슈)는 같은 동사입니다. 이 말은 끌어 당겨서 가까이가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허락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 당겨서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서, 더 친밀하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이 없을 때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작게 들린다. 그러나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음성은 확성기처럼 우리에게 더 크게 가까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이 없을 때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은 작게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통당할 때는 그렇게 멀리만 느껴졌던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들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요단강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1세대 이스라엘처럼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리로 인도하셨습니까? 우리를 죽이시려고 이렇게 인도하셨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원망불평하거나 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요단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내게 보여 주옵소서

또 하나님이여 내 인생의 요단강을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와 더 가까이 함께 계심을 나로 알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로 하여금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더 크게 듣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요단강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을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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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우리 인생의 요단강을 건널수 있는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역사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되는 과정들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분문을 통해서 우리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만을 보고, 그 언약궤의 뒤를 따라 가야합니다. 그러면 요단강이 건너 갈수 있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언약궤) 뒤를 따르라 고 합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여기서 보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과 언약궤 사이 거리가 이천규빗이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 말라 라고 하십니까? 이천규빗은 1키로 쯤 됩니다.

언약궤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계시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가면 죽습니다. 그래서 1키로쯤 멀리 떨어져서 따라가라고 하십니다.

또 여기서 1키로쯤 멀리 떨어지라고 하신 이유는 모든 이스라엘사람들이 다 보기 위함입니다. 만일 제가 지금 여기서 내려와서 맨 앞에 같이 서 있다면 저 뒤에 있는 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200만명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게 하기 위해서 1키로쯤 떨어지라고 하셨습니다.

또 언약궤는 금으로 칠해져있습니다. 그러니까 1키로 앞에 있는 언약궤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이 언약궤를 보게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언약궤만 보라고 하시고, 왜 언약궤만을 따르라고 하십니까? 언약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과 만나가 든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십계명대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불평했던 죄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또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기16장에 보면 고라의 일당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을 하여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른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십니다. 그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언약궤에 넣습니다. 이렇게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언약궤에 넣는 이유에 대해서 민수기 17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7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언약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표시)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이와같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에게 대하여 반역한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약 궤안에 든 세 가지 물건들은 모두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원망 불평만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까? 언약궤위에 시은좌(施恩座-은혜를 베푸는 장소-시은소-황금)가 있습니다. 그곳을 속죄소(죄를 사하여 주는 곳)라고 합니다. 그 속죄소위에 어린양의 피가 뿌려집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가리워지게 됩니다(카파르-가리다 덮다 속죄하다). 그리고 그 피가 뿌려진 속죄소(시은좌)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앉아 계십니다(구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왜 모든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보게 하십니까?

그 언약궤를 보면서 그들의 죄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어린양의 피로 사해졌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와 친히 함께 하고 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 언약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까?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약궤만을 보고, 그 언약궤를 따라 오라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보고, 그 십자가를 따라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떤 요단강도 건너갈 수 있습니다.

내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삶에 있어서 인간관계에서 건널수 없는 요단강이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내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무지 용서하지 못하는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하고 용서하게 할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인간관계에서 넘을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지게 합니다.

//평생 낫지 않은 질병의 요단강이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져 주심으로 믿음으로 그 질병을 낫게 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인간의 힘으로 낫지 않는 질병이라는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만 아닙니다. 나의 질병이 낫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아멘).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병이 낫지 않아도, 그 병보다 더 낳은 은혜를 주심으로 질병의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십니다.

//여러분 가정에 나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요단강이 있습니까? 또 나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인 요단강이 있습니까?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 내게 그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십자가의 은혜만 있으면 너는 네 앞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만족하면 감사하며 살아갈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이 하나님의 언약궤, 이 십자가만을 바라보시고, 따라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건널수 없는 그 어떤 요단강도 능히 뛰어넘으며 살아갈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주여--이것이 마지막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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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늘 말씀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까?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엘 너희 가운데서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행하시리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언약궤에 나타난 십자가의 피를 보고 갈 때 요단강을 거너갈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이제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가는 기적을 행하시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사무엘서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언약궤를 어떤 마술적인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짓더라도 이 언약궤만 들고 가면 싸움에서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들고 갔지만,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만 아니라 이스라엘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왜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가 증거되지만, 왜 그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단순히 어떤 마술적인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십자가만을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시기에 얼마든지 죄를 지어도 괜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사시대 말기에 이스라엘처럼 십자가를 내세우지만 십자가의 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와 함께 우리 모두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안에서 죄를 짓는 모든 공장들을 다 파괴하고 부수어 버린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언제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가운데서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그리하면 내가 네게 기이한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에 성결해야합니까?

먼저 신앙에 성결해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도,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고 따라가는 것은 영적인 간음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성결해야합니다. 이 시대는 음란의 시대입니다. 이성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합니다. 저는 항상 말합니다. 교역자들은 이성 문제에 있어도 실수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교역자를 그만두어야합니다. 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말에 있어서 깨끗해야합니다. 시기 질투하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음란한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말로 한 약속은 손해가 되어도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십자가의 능력으로 스스로 성결하며 거룩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요단강이 건너가는 기적을 베풀어 주 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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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어떻게 요단강을 건너갈수 수 있습니까?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언제 요단강의 물이 그쳐서 마른 땅처럼 건너가게 되었습니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길 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입니다.

//물이 그친 것을 보고 요단강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물이 그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발이 물에 잠기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몇주간 동안 계속해서 순종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먼저 용서화라 화해하라 하나 되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절대 인간관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순종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흘러 넘치는 들어가서 죽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물속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합니다.

그럴 때 요단의 물이 말라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갈수 있었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싫은 사람에게 내가 찾아가는 것이 나의 모든 자존심을 죽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죽을 각오를 하고 순종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인간관계로 인한 모든 문제들을 한 순간에 다 해결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가 안된다고 하지만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 지금도 살아계서서 복음의 모든 막힌 담들을 다 부수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가운데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이 들어도 부정하게 돈을 벌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직장 문제도 다 해결해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01일 세겹줄 기도회나 함께 다 나오라 할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손해가 되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요단강을 마른땅과 같이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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