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16절에서 복음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16절).
또 17절에 복음에만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롬3:22).
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 말미암는 의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에 절대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 인간의 의는 모두 불완전한 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시에게 불완전한 의를 로마서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을 불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의에 대해서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들의 불의에 대해서 지금도 진노하고 계십니다(18).
그러면 지금 불의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롬1장에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내어버려두심이라고 했습니다.
또 롬2장에 보면 인간의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당장 심판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오래 참고 계십니다. 또 롬2장에 보면 인간의 불의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은 지금도 쌓아놓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쌓아놓고 계시다가 마지막 날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완전히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가운데 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간다고 하는 종교인들도 다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하심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주셨습니다(19).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롬1장 21절에 “(종교심으로)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종교심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석가모니 부처상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슬람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종교심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자비의 하나님을 폭력의 알라신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람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가진 의는 모두 불완전한 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지옥 불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의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 인간이 불의하게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롬1장 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불 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불 경건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또 불의란 불 경건의 결과로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가 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불의하게 된 원인이 경건하지 않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1)먼저 불 경건이란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불경건한 마음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인간과 동물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는 불의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23).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불 경건)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불의)“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 혹 당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알고도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지 않고, 그들에게 황금을 주시는 하나님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한분만으로 과연 만족하고 있습니까?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부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께 바랐던 그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경우는 대부분 취업과 결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왜 내 취업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의 결혼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이제 어떤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취업을 보장해주는 하나님으로, 결혼을 보장해주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느새 취업과 결혼이 하나님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취업의 문제와 결혼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물질의복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분명 취업의 문제와 결혼의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단순히 취업의 하나님, 결혼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단순히 나의 현실적인 문제만을 해결해주시는 분으로 바꾸어 섬기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그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둘째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나님께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내 삶 가운데 이런 우상들은 어떤 것입니까?
2)또 불 경건이란 25절에 피조물을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즉 이제 누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까? 피조물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즉 돈이 하나님의 자리에 가 있습니다. 또 피조물가운데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 피조물인 인간 자신(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불 경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됨으로 나타나는 불의한 현상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이 동성애입니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이 시대의 가장 큰 우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인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왜 사람들이 동성애에 빠집니까? 그 이유는 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서 동성애에 빠집니다(동성애는 이성애보다 더 큰 성적인 쾌락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세리와 같이 되시고, 창기와 같이 되시고, 죄인들과 같이 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무차별적인 혐오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얼마든지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우리도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동성애를 옹호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동성애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불의한 죄인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나와서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동성애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서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3)또 불 경건이란 인간의 마음가운데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불 경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불의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한 일),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기서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불 경건 때문에 인간들이 모든 불의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이 불의하게 되는 원인이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의에 대해서 철저하게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또 윤리와 도덕으로 불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불의는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가운데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불의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에 부천에서 어떤 목사님이 자신의 아이를 폭행해서 죽은 뒤에 1년 동안 그 시체를 집에 숨기는 엽기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분은 국내에서는 정상적인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또 신학교교수까지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목사가, 신학교수가 그럴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나 신학교수나 신학박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신앙은 문제가 없는데, 인격과 성품이 바로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사과문을 내었는데, 거기에서는 앞으로 신학교수를 모실 때 인격과 성품을 잘 보고 뽑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은 신앙은 좋은데, 인격과 성품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인격과 성품이 잘못된 사람은 사실상 신앙이 좋은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우리가 많은 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도덕적인 인격훈련을 더 행합니까? 성품훈련을 더해야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즉 경건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모든 불의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은 공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과연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 무엇이 참된 경건입니까?
1)참된 경건이란 제일 먼저 지금도 진노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천의 목사를 두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1년 동안 죽은 딸의 시체를 두고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우리의 불의와 죄에 대해서 지금도 진노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진노의 손안에 있는 죄인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지금도 진노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말라기시대와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오래 참음으로 진노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참된 경건이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만을 최고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참된 경건이란 하나님을 나의 마음가운데 늘 모시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4)참된 경건이란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특별히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5)마지막으로 참된 경건이란 우리 입술에 재갈을 물리는 삶입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우리 입에 남을 비방하는 말,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축복합니다. 함께 합시다” 라고 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첫째가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다른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는 피조물(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네 번째는 결국 마음이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할 때 모든 불의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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