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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요셉의 꿈(창37:18-19)

by 금빛돌 2015. 12. 26.

얼마 전에 기독교계에서 高地論未踏地論서로 논쟁이 된 적이 있습니다.

고지론이란 이런 것입니다. 전투를 할 때 먼저 고지를 점령해야 전투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높은 자리(즉 고지)에 올라가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소서”.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더 잘 전할 수 있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고지론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지론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들 중에서 고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의사나 판사나--또는 국회의원, 또는 재벌이 되는 것, 또 유명한 연예인이 되는 것, --이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의 목표가 그런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고지만 바라보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평생을 패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이루지도 못하고-- 고지에 올라가는 허황된 꿈만 꾸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기독교인 대통령시절에 우리나라가 완전 기독교국가가 되었어야하지 않습니까? 또 국회의원 중에서 3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정치가 기독교적으로 다 바뀌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실을 보았을 때,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고지를 점령했다 해서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무리가 있는 말입니다.

/또 이런 고지론만 강조될 때 사람들은 낮은 곳 섬기는 곳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미답지론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단순히 높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밟지 않은 곳(未踏地), 또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낮은 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실 고지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이런 고지론의 입장에서 볼 때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의 삶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삶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요셉의 꿈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조차도 요셉을 가리켜 꿈꾸는 자라고 했습니다. 37: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와 같이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오늘 주일학교 학생들도 참석했기 때문에 제가 주일학교학생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친구들 요셉이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형제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 해와 달과 11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은 부모님들을 상징하고, 11별은 요셉의 11형제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이 요셉은 꿈은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부모님들과 11형제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절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고지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셉의 꿈은 애굽의 2인자인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을 꾸면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설교할 때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요셉의 꿈은 애굽의 총리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면밀하게 요셉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요셉이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요셉의 꿈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특히 구약시대에 나오는 꿈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꿈을 꾸었다는 것은 사실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또 요셉은 꿈을 꾸었을 때-그 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꿈이란 그 꿈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직전까지도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한 번도 미리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은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사실입니다--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꿈은 어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그 삶 속에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 요셉이 평생 꿈꾸었던 것은 -어떤 위치가 있건-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꿈이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만일 요셉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되는 꿈만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찬스가 왔습니다--그것이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청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 총리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그 청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인정을 받고, 나중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시위대장 보디발에게도 인정을 받아, 정계에 들어가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될 기회를 엿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관심을 가진 것은 애굽의 총리, 높은 자리, 즉 고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삶 속에서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보디발 아내 앞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득죄하리요”.

--즉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단순히 사람 앞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세상적인 성공이나 고지나--쾌락이나 재미가 아니라-그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입니다. 비록 억울하게 감옥에 가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지난주에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타큐를 보았습니다. 만일 주기철목사님도 이 세상에서 높이 되고 성공하는 목회자를 꿈꾸었다면 당연히 일제의 신사에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철목사님도 세상적으로 높은 곳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꿈도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억울하게 감옥에 간 요셉이나 주기철 목사님은 실패한 인생이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 죄수의 신분이었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에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꿈이 단순히 애굽의 총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감옥에서의 요셉의 삶입니다.

만일 요셉의 꿈이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면 -그는 총리가 아닌 죄수가 되었을 때, 실패와 좌절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하나님이 과연 이럴 수 있습니까? 왜 내가 죄수가 되어야합니까? 내가 가야할 곳은 저 고지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죄수들이 있는 감옥에 와야 합니까? 내가 고지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도 대체 뭡니까? 하나님 정말 당신은 살아계십니까? 나와 함께 하십니까? 정말 당신은 내게 대한 뜻이 있는 것입니까?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꿈이 아니었기에 감옥 속에서도 실패와 좌절감이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꿈이었다면 그 감옥 속에서는 대충 아무렇게나하고 자포하기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애굽의 총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과연 그 어떤 곳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감옥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았습니다-또 그는 총리가 되지 못할 상실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감옥속이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니-감옥 속에서의 죄수의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요즘 경제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직장에. 또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대학도 그렇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최고라 생각하는 그런 대학에 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청년들에게 이런 고지만을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직장에--이런 학교에 -고지에 올라가야 성공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적어도 나는 이런 자리에는 올라가야하는데--이런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데--이정도의 위치는 되어야하는데, 지금 내가 그것에 못 올라가니 나는 실패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고지를 점령하는 소수를 위해 다수가 패배주의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 고시에만 목숨을 거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위치에 있건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예를 들어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나는 절대 백만원 받는 작은 일은 못하겠다고 합니다. 큰 회사를 하다가 부도를 맞아 노숙을 하는 어떤 사람은 내가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아예 노숙자를 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어떤 고지에 올라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그곳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까? 또 내 삶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그가 어떤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어디에 있건--그 어떤 위치 있건--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원래 그 회사의 사장으로 일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함을 받아 회사말단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맡은 일은 자판기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사장할 사람인데--왜 내가 자판기 청소나 관리를 하느냐--그리고 아미 대충 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여 그 일을 집어치울 것입니다-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정말 그 분은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고-사명감을 가지고 자판기를 청소했습니다--그래서 어느날 열심히 자판기 청소를 하고 있는데=오해가 풀려 사장으로 다시 발탁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다음입니다

--457절과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9애굽의 총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여기서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것을 미리 아시고--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죽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그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으로 미리 보내셨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도 --단순히 총리자체가 아니라-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한 요셈의 삶에 대해 어떤 분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될 것을 기대도 안했고, 꿈에 대한 비전도 몰랐을 것입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고단함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힘든 노동의 자리에서, 누명을 쓴 삶의 밑바닥에서도, 높은 지위에 오른 후에도, 어떤 자리에서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성경은 이런 요셉의 삶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삶이라고 했다. 이렇게 고단하고 힘든 하루하루의 삶이 쌓여서 총리가 된 것이지, 총리라는 고지를 목표로 삼아 살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을 할 때에 비로소 자신이 꾼 꿈에 대한 이해를 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고지를 점령하라는 식의 적극적 사고를 강조한 부분이 없습니다.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한 자들입니까? 고지를 점령해서 선한 영향력을 심어준다는 발상은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생각입니다. 성경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한 죄악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질수록 더 욕심을 냅니다.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높아지기 위해 경쟁하고 다투며 피곤하게 삽니다. 이러한 욕심과 교만이 우리의 짐을 힘들고 무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통해, 일부러 높아지지 말고, 자기를 나타내고 드러내지 말며, 내 수준에 맞게 자족하며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쉽고 가벼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내 재능, 내 능력, 내 은사만큼 헌신하면 되고. 욕심내지 말면서 부담없이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아니 믿는다는 우리도 세상이 추구하는 경쟁과 욕심과 시기와 미움이 있는 길, 즉 누구나 가는 넓은 길로 가려합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임에도...

신앙 생활은 즐겁고 쉽게 해야 합니다. 짐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안식이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안식할 훈련을 이 땅에서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를 다스리고 빚어가기 위해선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 똑똑함이, 너의 잘난 척이, 너의 인간적인 계획이, 내 일을 방해하니 제발 좀 조용히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꿈과 계획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합니다. 온전히 그 분께 맡겨야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 안에서 어떤 역경도 고난도 쉽게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위치에 잇습니까?

혹 지금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 인생이 바닥을 살더라도 꿈을 꾸어야합니다. 이것은 어떤 고지를 향한 인간적 야망이 아닙니다---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가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꿈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모든 은사를 다 사용하시는 꿈입니다. 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사대로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꿈입니다.

--지금은 내가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또 나는 아직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 있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런 꿈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꿈이 있는 사람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란 현실의 세계를 떠나 하나님이 계신 꿈의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는 사람은 기도해야합니다. //또 꿈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는 성경에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약속을 하시고-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봅니다-그 말씀 속에서 당신의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이 내 뜻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다 잘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처해 있는 곳이 그 어떤 곳이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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