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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두려워하지 말라(딤후1:7-12)

by 금빛돌 2015. 12. 4.

오르간을 전공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는 오르간 연주를 잘 하는데 무대에만 서면 떨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험 때가 되면 그 학생의 어머님이 우리아이가 무대에서 떨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 두려움이 있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매일 매일 어떻게 두려움이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자주 서다보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생의 무대입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인생의 무대에서 두려움이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15년 동안 감옥에서 지낸 분입니다. 15년 동안 감옥에서 그분을 정말 괴롭힌 것은 감옥이 아니라 마음의 두려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왜 성경에서 365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생각해보았더니 우리 인간은 일년 365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두려워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매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붙들고 그렇게 어렵고 힘든 감옥생활을 이겨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두려움에 대해서 성경을 검색해보니까 놀랍게도 400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관한 성경구절들을 묵상해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 해의 끝과 내년을 바라보는 오늘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나름대로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경제가 더 나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또 내년에 내가 사람들에게서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또 내 몸에 병들어서 어떻게 되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두려움이 있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두려움이 있으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에 관한 성경구절들을 보니까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제일 많이 나오는 성경이 놀랍게도 신명기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서 있다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두려우면 항상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왜 사람들이 점점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가 됩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두렵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차단막을 칩니다. 그래서 자기 세계 속에서 온 세상에 대해서 방어막을 치는 이기주의가 됩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두려우면 쾌락주의에 빠집니다. 요즘 불황속에서도 술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문화의 코드는 쾌락주의가 될 것입니다. 드라마도 영화도 음악도 더 자극적이고, 퇴폐적이고, 쾌락적인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왜 사람들이 쾌락주의에 빠집니까?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넷째는 사람들이 두려우면 비이성적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무너지게 됩니다. 아주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갑니다. 대부분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합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의 마음가운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어떻게 말합니까?

1:27절입니다.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두려움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미워하신다고 말합니다. 또 두려움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가나안땅에서 죽이시려고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조차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도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왜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의 마음 가운데 무언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예수를 잘 믿으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겠구나, 소심하지 말아야겠구나, 두려움과 소심은 잘못된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담대함이구나, 초인적인 담대함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절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인간적인 자신감을 가지라고 설교한다면--굳이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인간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나는 철저히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며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날마다 우리에게 오는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첫번째,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이 기질적인 원인이나 환경적인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래 그 사람이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환경적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두려운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들을 씁니다. 마인드 콘트롤, 극기 훈련, 또 강남에서는 두려운 마음을 없애고 집중력을 키워주는 병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두려운 마음의 근본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니까 성경에서 두려움이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 창3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서 도피하여 숨어 있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창세기 310절에서 아담이 어떻게 말합니까?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기서 잘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두려워할 환경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질상으로 아담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기뻐하며 살도록 지었습니다. 또 원래 하나님이 두려운 분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두려움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담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이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떠난 인간을 무엇을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일 큰소리 치고, 술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 사람들이 무언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왜 술독에 빠지고, 이상한 곳에 빠집니까? 그들 마음에 무언가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운 마음의 근본을 술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큰 소리 친다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참 생명과 평안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 원인과 해결책이 오늘 본문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 자신이 왜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사도바울은 그가 믿고 의뢰하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 가를 잘 알고 있었고, 또 하나님께서 이 모든 두려움을 다 이기고 극복하여 승리하게 하실 줄을 온전히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

먼저 그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기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알고 있더라도 그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완전히 의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 때 항상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기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또 그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지 말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우리의 모든 삶을 그분에게 의탁하고 맡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알고, 온전히 그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믿고 맡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이--하나님이 주시는 신적인 담대함과 평안함으로 살아가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고3초반까지 교회에 한 번도 빠지지도 않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항상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잘 다니고, 예배도 잘 드리고 주일성수를 철저히 했는데도 전혀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교를 가다가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그때 저는 그 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안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제 마음가운데 이제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오늘 예배를 참석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정말 한번쯤은 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체험이라고 하는 것이 죽어 있고 졸고 있는 하나님이여 역사하여 주옵소서--일어나 주옵소서,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절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수백 번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도 살아있다. 나는 지금도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너를 도와주고 있다--내가 네 삶을 책임질 것이다-나는 너에게 대한 뜻을 가지고 있다-네 곁에 있다-내가 반드시 모든 것을 이루어줄 것이다-너 대신 싸워줄 것이다고 수도 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시고, 이 세상에 그 어떤 사탄의 권세, 세상의 권세보다, 사람의 권세, 우리를 위협 하는 악인의 권세보다 강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여 믿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를 위협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거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그 하나님을 믿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하나님을 내가 의뢰하는 자라고 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한번 믿고 믿기는 정도가 아니라---끊임없이---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내 삶에 어떤 부분들은 하나님께 믿고 맡겼다고 하지만-아직 내 삶 가운데서 완전히 내려놓고 믿고 맡기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직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고 믿고 맡기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 부분들조차도 다 하나님께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또 내려놓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시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정오의 빛과 같이 밝게 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37)

두 번째, 성령의 능력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딤후17을 우리말 성경을 보면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의 영(사탄)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성령)이다 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려움의 영은 바로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은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두려워하는 문제는 단순히 인간적인 문제가 아니라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두려움이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약해서 두려워한다라고만 생각해서 두려움을 그냥 방치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니까 그 두려운 마음 때문에 하나님도 믿지 못하게 하고--아무런 하나님의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구나--영적 문제구나 사탄이 주는 마음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담력훈련과 같은 심리적인 훈련으로만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문제는 영적 문제이고, 사탄이 주는 마음이라고 했을 때--이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권세만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능력도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어 연약 해 보이는 여 순경이 불법을 행하는 조폭두목의 자동차를 세울 권세가 있습니다. 그때 조폭두목이 네가 뭔데 나를 세우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여순경은 나는 대한민국경찰의 이름과 권세로 네게 명령한다. 당장 차를 세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폭두목이 갑자가 여순경을 치고 도망을 갑니다. 이때는 권세만을 가지고 자동차를 세울 수 없습니다. 서라고 하는데, 도망가면 쫒아가서 그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먼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을 주는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합니다.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 계집종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난 다음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았던 사도들의 첫 번째 현상은 두려움이 없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런 성령의 능력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탄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우리의 두려운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우리의 두려운 감정을 굳게 붙들어 놓아야합니다.

폭포를 외줄로 건너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습니다. 또 그 줄도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이제 누구든지 내 등에 업혀서 이 폭포를 건너가 봅시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용기를 내어 등에 올랐습니다. 다 건너고 난 다음에 곡예사가 말했습니다. 이 폭포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아닙니다. 폭포는 커녕 두려워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두려워한 것은 사실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그 사람의 두려운 감정의 문제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실이 아닌데도 감정상 괜히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괜히 불안해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처럼 우리 속에서 불안한 마음들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는 괜히 마음에 불안합니다. 괜히 두렵습니다.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 불안 해 하는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하여하는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두려워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참된 신앙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불안한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 있는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필요하신 분이 있다고 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한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넷째, 또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헨리 나우엔은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 가지 표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있어야하고, 둘째는 하나님으로 인한 풍성함이 있어야하고, 셋째는 하나님으로 인한 희열(엑스타시)이 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친밀감입니다. 그래서 독일 나치에 의해서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유대인 여성의 기도를 인용합니다.

"하나님 불안에 찬 시대입니다. 오늘 밤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누웠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장면이 하나씩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눈이 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딱 한 가지만 약속드리겠습니다. 아주 작은 것 한 가지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를 오늘의 짐으로 가져오지 않겠습니다. 물론 연습이 좀 필요하겠지만요. 하루하루가 그날 자체로 충분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당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물론 내 믿음이 조금 약해지면 때로 소원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당신을 위해 노력하고, 당신께 신실하고, 당신을 내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습니다. 사소한 물질적 염려 때문에 내 힘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낭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매 순간을 잘 사용하여 하루하루를 열매 맺는 날로 만들어서, 너무도 불확실한 우리 미래를 위한 토대에 또 하나의 돌을 놓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친밀감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또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로 말미암은 희열감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로 말미암은 은혜의 풍성함이 우리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갔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전23절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고린도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언가 두렵다고 느껴지십니까? 무엇보다 나의 미래가 두렵다고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의 희열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랑 안에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기면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첫째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요단강이 있어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여리고성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라 하면 가고 하나님께서 서라 하면 섭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 속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해서 열린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나 자신의 아픔보다 이웃의 아픔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나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3)또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절대 세상 향락과 쾌락에 기대어 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쾌락의 원천으로 삼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상황에도 메이지 않습니다. 너무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너무 절망하거나 또 너무 기쁜 있어도 그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한분 만으로 자족하며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또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위급한 상황가운데서도 당황하지 않고 온전한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5)또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 온전히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절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심을 온전히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실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적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기회로 바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적인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 상황을 탓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도 한탄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다 할 수 없다고 하고 안 된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심으로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일어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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