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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강해⑫바울의 짝 사랑(고후7:2-4)

by 금빛돌 2015. 5. 29.

고후613절에서 사도바울은 너희도 우리에 대해서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사도바울에 대한 모함 때문에 고린도교인들이 사도바울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희도 우리에 대해서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만일 고린도교인들이 사도바울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과 축복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에 대한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나 부모는 오직 자녀들이 그 사랑을 받고, 또 축복을 받아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면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을 넓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후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여기서 영접한다는 말은 위해 장소를 비운다. --위해 장소를 제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마음에 들어가기 위한 마음의 장소를 비우라 제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13절에 너희 마음을 넓히라 너희 마음을 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는 왜 또 계속해서 마음을 열라고 합니까?

2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바울이 왜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에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헌금으로 추정되는 돈을 착복했다는 거짓된 소문을 유포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고린도교인들은 사도바울이 거짓을 행하였고, 또 속여서 헌금을 빼앗아 갔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합니다.

또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울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죄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3. 내가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다는)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그에 대해서 거짓으로 말하고, 그 말을 믿고 바울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고린도교인들을 마음가운데 이미 용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용서했지만, 그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도바울은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3. --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바울이 그 전부터 계속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11절에서도 사도바울은 너희를 향하여 우리 마음이 넓어졌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사도바울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마음속에서 항상 고린도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은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항상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나는 죽어도 너희들과 함께 죽고, 살아도 너희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옆에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죽고,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결혼 서약식을 할 때 죽음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 까지 부부의 도리를 다 할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서약합니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결혼서약문을 반드시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서 읽도록 하는데, 신기한 것은 이 글을 읽을 때 신랑, 신부 중에서 누구만 울겠습니까?

제가 보니까 신부만 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신랑은 눈물이 아니라 마음으로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사랑했기에 그들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고 담대했습니다.

또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4.---너희를 위하여(너희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

여기서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이 많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사실 고린도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여전히 자랑할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어떤 엄마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 때문에 속이 썩어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어떻게 말합니까? 그래도 우리 아이 잘 보면 너무 잘생겼잖아요, 그래도 얼마나 속이 깊은 아이인데요 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분노와 염려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서 사랑 없는 감정이 분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서 사랑이 있으면 염려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뒤에 보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를 오해하고 있는 상황가운데서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도바울의 사랑은 사실상 짝사랑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하고, 또 마음을 열고 있고, 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고 있는데, 고린도교인들은 아직 마음의 문조차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짝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짝사랑을 하다가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증오의 감정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사랑함으로) 담대한 것도 많고, (사랑함으로) 너희를 위하여(대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고린도교인들로 말미암은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이 사랑은 바울의 일방적인 짝사랑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짝 사랑이 증오의 감정이 되지 않고 계속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환난은 고린도교인들로부터 받은 환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사랑했는데,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에 큰 환난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이 끝까지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린도교회의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로부터 오는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흘러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은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사도바울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로부터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지만, 사도바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위로와 기쁨 때문에 고린도교인들을 짝 사랑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도 증오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이나 성도 간의 사랑도 인간적인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박영선목사님은 참된 거룩과 신앙이 있으면 그 교회는 사랑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왜 사랑이 식어져 있습니까?

인간적인 사랑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 죽음까지 각오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랑이 식어져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누가 사도바울과 같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사랑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신앙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날마다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공급을 받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수원지에서 사랑의 샘물을 풍성하게 마시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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