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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전서

사랑이 있으면(고전13장1-13)

by 금빛돌 2015. 3. 25.

어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매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님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매주 내용이 비슷한 사랑의 말씀만 전합니까? 우리는 그 말씀을 다 알고 또 들은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도님은 서로 사랑하는 이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저는 이 말씀을 지킬 때까지 전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교회성도들은 여러 번 들었던 말씀입니다. 또 여러분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다 암송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 목사님과 같은 심정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사랑이 없이도 천사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방언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장래의 일을 예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큰 믿음을 가지고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재산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주는 헌신과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3절에서 사랑이 없으면이라는 말이 실제로 고린도 사람들이 사랑이 없이 이 모든 일들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사랑이 없는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방언기도 때문에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이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말했습니다. 또 서로가 방언기도를 하면서도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가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이 들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았습니다.

또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지식으로 사람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81절에 보면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을 덕을 세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상의 재물을 먹는 문제에 관해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무시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우상의 재물은 우상숭배가 아니다, 또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신이 아니다. 또 우상의 재물도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다는 지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우상의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자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으면 마치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식이 있는 자들이 지식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면서 왜 마음대로 우상의 재물을 먹지 못하느냐하고서 그들을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유창한 방언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많은 성경적 지식을 가질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남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타는데 까지 내어주는 헌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이 없이 이 모든 일들을 행하면 세 가지가 무익합니다.

첫째는 내게 무익합니다. 3절에 보면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이 기도하고, 사랑이 없이 잘 가르치고, 사랑이 없이 열심히 헌신을 해도--사랑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이 가르치고, 또 사랑 없이 기도하고, 사랑 없이 희생하고, 사랑 없이 봉사를 하면 그 사람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또 자신은 일을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더 메말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아무 영적인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무언가 열심을 일을 했는데, 그것이 내게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합니까? 또 일을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더 고갈된다는 느낌을 가지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혹시 그 동안 사랑이 없이 이 일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 남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무익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몇 십 년을 수고하고 봉사를 했는데, 그 일들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습니까? 그래서 나의 봉사와 수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아니면 도리어 나의 수고와 봉사를 통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또 내가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 일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으로 했는가? 자신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칭찬과 상급이 없습니다.

---8절 말씀에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합니다. 이 마지막 종말에는 예언의 은사도, 방언의 은사도, 지식의 은사도 다 없어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한 일들 가운데 사랑으로 행한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이 땅에서 내 모든 것을 불사르고 희생하여 정말 열심히 봉사를 했습니다. 내가 한 평생 이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 때 그 모든 것이 다 불타고 없어지고 겨우 구원만 받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랑이 없이도 큰 교회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선교사역과 구제사역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또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칭찬과 상급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서 사랑이 없이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한분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는데 까지 내어 주는 헌신을 할 수 있다면 그러면 과연 사랑으로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해서 4절에서 7절까지 사랑으로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사랑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줄 친 부분을 보시면 먼저 사랑은 무엇을 않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앞뒤를 보시면 사랑이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에 대해서 해야 할 부분보다 하지 말아야할 것을 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행한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합니까?

사랑은 제일 먼저 시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시기란 남들이 잘하고, 잘되는 것에 대해서 배가 아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이 잘되어서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남이 잘 못되었을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사랑은 자랑하지 말아야합니다. 자랑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이란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아무리 큰 일을 했어도 그 어떤 인간적인 칭찬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났을 때 도리어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란 나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나의 왼손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교만하지 말아야합니다. 교만이란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못하시기에 낮아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높으신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우리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낮아지신 분이셨습니다. 왜 높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내 방식대로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사랑이란 그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에는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또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필요합니다. 또 그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는 19절에서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모든 총명(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랑이란 내가 희생하고 죽어지고 없어지더라도 상대방이 잘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성내지 말아야합니다. 여기서 성이란 파록시노라는 말인데, 이 말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발작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상대방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줄 줄 아는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여기서 악한 것이란 상대방을 해한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계산한다, 계획한다, 심사숙고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상대방을 해하기 위해서 계산하고 계획하고 심사숙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상대방을 해할 목적으로 악한 것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습니다.

또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불의란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7절에서도 사랑이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지만, 절대 조급하지 않으십니다. 2000년 동안 참으시고 또 참고 계십니다. 조급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내 목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 내 뜻대로 상대방이 되기를 재촉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한 없이 상대방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주고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이란 이렇게 오래 참고 기다림을 힘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은 내가 정말 많이 참는다. 내 만큼 참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내가 제일 오래 참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참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참는 사람은 참는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했는데, 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참는 것에 대해서도 힘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과 소망가운데 참는 것이기 참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7절에서 사랑이란 오래 참는다고 했는데, 그냥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으며, 바람으로 오래 참고 견딘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으며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믿어주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을 만 하니까 우리를 믿으셨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절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믿어주셨습니다. 또 우리 인간에게 어떤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을 두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소망을 가지고 기대를 걸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냥 오래 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그 사람이 믿을 만 하지 못하지만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끝까지 소망가운데 기대를 걸고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가 사랑으로 오래 참을 수 있습니까? 끝까지 기다려줄 수 있습니까? 왜 참고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믿어주기 때문입니다. 또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오래 참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교회성도님들 가운데 자녀에 대해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염려하시거나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에 보면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또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혹 지금 어렵다하더라도 믿음과 소망가운데 자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과 소망가운데서 자녀를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지난주 아내가 저에게 무한 긍정의 사람이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무한 긍정의 사람이 아니라 나는 믿음의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 또 우리 모든 성도, 특히 우리 장로님들과 교역자들에 대해서 믿어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함으로 더 좋은 것을 소망가운데 기대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그러면 이렇게 사랑이 있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습니까?

1)사랑이 있으면 삶과 사역에 활력이 있습니다.

톰 행크스의 캐스터 어웨이(Cast aw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홀로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 제일 큰 어려움은 물도 아니고 식량도 아니라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배구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배구공에 사람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 배구공과 끊임없이 대화를 합니다. 이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은 혼자서는 못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못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내가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또 내 삶이 권태롭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내 일상의 삶이 너무 지겹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또 내 삶에 활력이 없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활력이 없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내 삶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삶의 활력이 생깁니다. 또 내 삶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내가 일하는 가운데 활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선택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도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절대 지치지 않습니다. 피곤하시기 않습니다. 언제나 활력이 넘치십니다.

그래서 내 삶과 사역에 활력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사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차에 뜨겁게 서로 사랑함으로 삶과 사역에 활력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고전1331절에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더욱 큰 은사는 여러 가지의 은사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더 은사를 받는 좋은 길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바로 13장에 나오는 사랑이입니다. 그래서 고전141절을 보면 신령한 것(은사)를 구하되 사랑을 따라(사랑이 동기가 되어) (더 큰 은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우리 누님의 이름이 김성실인데, 결혼하기 전에 별명은 불성실이었습니다. 23살 때 일찍 결혼을 했는데, 매일 저희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 그래서 시집가서 무엇을 하겠느냐 였습니다. 밥을 물론이고 음식도 그렇고 집안청소도 그렇고 심지어 신앙생활 교회생활도 제대로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누님이 23살 때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혀 살림의 은사가 없던 누님이 지금은 누구보다 살림을 잘하는 살림 9단입니다. 또 무엇보다 결혼하고 난 다음에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너무나 잘하고 있습니다. 왜 누님에게 살림의 은사가 주어졌습니까? 왜 갑자기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잘하게 되었습니까?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사랑해야할 남편이 있습니다. 또 나중에 사랑해야할 자녀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랑해야할 대상이 생기니까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은사들이 주어졌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절대 방언을 금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식의 은사가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랑 없는 방언의 은사, 사랑이 없는 지식의 은사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 동기가 된다면 더 큰 은사, 더 많은 은사를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지식의 은사가 아닙니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의 은사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단순한 전도의 은사가 아닙니다. 지옥 가는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면 사랑에 따라서 전도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내게 남들에게 돋보이기 위한 은사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과 같이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하기 위한 모든 은사들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 풍성히 내려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사랑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단점을 장점으로 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조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 보면 그 사람은 너무 조용해 그래서 마치 쑥맥같아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그 사람은 참 조용히 그래서 너무 차분하게 일을 잘해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 보면 그 사람은 너무 설치고 다녀 눈 꼴 사나워서 정말 못 보겠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정말 그 사람은 에너지가 넘쳐 그래서 너무 보기 좋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따지기를 좋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 없이 보면 그 사람은 너무 깐깐해 바리새인같아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면 그 사람은 참 옳 곧은 사람이야 정말 저런 사람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겐 모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곳에는 장점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철저히 짓밟아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단점만을 부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는 칭찬합니다. 또 그 사람의 단점에 대해도 격려함으로 단점을 도리어 장점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희망이 없습니다. 좋은 장점을 가진 사람도 사랑이 없는 곳에는 그 장점도 다 죽게 합니다. 또 서로의 단점만을 가지고 서로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절대 미래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 어떤 하나님의 꿈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공동체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장점을 더 극대화시켜줍니다. 또 서로의 단점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격려는 받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공동체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교회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으로 보면 희망이 있고 사랑으로 보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고 확신합니다. 우리교회에 분명히 희망이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더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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