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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연구/고린도전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13,14)

by 금빛돌 2015. 3. 13.

오늘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의 결론입니다. 작년에 오후예배시간에 고린도전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입니다.

이것은 원래 4개의 동사로 이루어졌습니다.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 있으라, 남자다워라. 강건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항상 깨어 있고 믿음에 굳게 서 있으면 남자답게 강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 신앙이 남자다워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남자 성도님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여자 성도님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렇다고 해서 여자성도님들이 남자답게 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여기서 남자답다는 말은 우리의 신앙이 남자다워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남자답다는 말은 어떤 말씀이겠습니까?

먼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본 남자다운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고전1장에 보면 파당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남자 분들도 파당을 짓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끼리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너희의 신앙이 남자다워라는 말씀은 서로 파당을 짓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이면 아무나 서로 친해질 수 있어야합니다.

둘째 남자다운 신앙은 고전2장에 보면 우리가 단순한 인간적인 지혜나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성령의 능력으로 남자답게 강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또 고전 5장에 보면 음란의 죄악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성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고전6장에 보면 교회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해결해가는 것을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고전 8장부터 보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하는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부분에 있어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특히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는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고린도교회와 같이 어린 신앙이 아니라 좀 더 성숙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과 성경전체를 통해서 본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어떤 것입니까?

1)먼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을 분별하는데,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163절에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성도님들은 무엇이든지 잘 믿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다운 신앙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대전에서 제일 큰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신옥주목사라고 하는 이단에 빠져서 자기 남편을 보고 교회에서 나오라고 성명서를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신앙입니다. 합신과 합동에서는 벌써 신옥주씨를 이단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은 이단에 빠져서 잘 분별하지 못하고, 남편 목사님과 그 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주여 주여하고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예는 예고 아니면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남자다운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남자다운 신앙이란 체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우선시하는 신앙입니다.

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자신의 체험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꿈이나 환상이나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벧후117-20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17절에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위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 소리는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이렇게 베드로가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를 들은 것 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20절에 성경의 모든 예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그가 체험적을 직접 들은 것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을 한군데 읽어보겠습니다. 신명기 131-5절입니다.

신명기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도 꿈꾸는 자, 그래서 무슨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거짓선지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거짓선지자가 어떤 특별한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과 다른 영을 섬기게 합니다. 이런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미혹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말에 청종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특별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으로 음성으로 나타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꿈이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잘 해석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들은 그 어떤 것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우선시해야 합니다.

예전에 다미선교회에서 1028일에 주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제가 아는 어떤 자매가 거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는데 하는 말이 예수님께서 빨간 팬티를 입고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음성을 듣고 또 꿈과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진짜 그런 꿈이나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철저히 거절해야합니다.

그래서 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남자다운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나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라는 말은 우리의 믿음이 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보다 상황을 더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면 그 상황을 보고 우리 마음이 불안합니다. 또 우리 마음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은 사탄의 초정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불안한 마음을 줍니다. 두려운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 이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 아닙니다.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환경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하나님말씀을 항상 붙들고 살아야합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단순히 여성적인 감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고전136절에 보면 사랑이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다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불의를 볼 때 그것을 아니오 라고 저항할 줄아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아무 말도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사랑인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단도 사랑해야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이단을 미워하는가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이란 반드시 진리에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남자다운 사랑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자답게 강건한 것으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일을 모든 사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다운 사랑이란 내가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남자다운 사랑이란 내가 감정적으로는 도무지 사랑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랑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남자다운 사랑이란 아카페적인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라고 사랑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잘못된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말하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참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같이 미워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사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우리 육신의 사람을 이기지 않으면 절대 남자다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다운 사랑, 남자다운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더 강건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에서 제일 성령충만했던 사람은 스테반입니다. 저는 항상 성령충만의 모델을 스테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자답게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에게 돌이 날아왔습니다,

그때 스테반은 성령이 충만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자다운 신앙이란 생즉사 사즉생 살려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죽어봅시다. 찬양하다가 죽어봅시다. 교회를 섬기다가 죽어봅시다.

진리를 위해 죽어봅시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해야하는 사람들,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서 순교를 각오한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부활의 영광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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