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연구 Ⅲ : 성전설교문
- 1997년 8월호
1.본문 번역(템 7:1-15)1
1절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은 야웨로부터 온 것이다
2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야웨의 집 문에 서라. 그리고 그곳에서 이 말들을 외치라. 그리고 말하라. “야웨께 경배하기 위하여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너희 온 유다인들이여, 야웨의 말씀을 들으라.
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웨가 이같이 말씀하신다. 너희들의 길들과 행위들을 옳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2
4절 너희에게 거짓된 말들을 신뢰하지 말라. 말하기를, ‘저것들이 야웨의 성전이다. 야웨의 성전이다. 야웨의 성전이다’(라는 거것된 말을 신뢰하지 말라)
5절 정말로 너희들의 길들과 너희들의 행위들을 진정으로 옳게 한다면, 각 사람과 그 이웃 사이에 공의를 진정으로 행한다면,
6절 외국인, 고아, 그리고 과부들을 압제하지 않는다면, 결백한 자의 피를 이 곳에 흘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희들에게 불행이 되기 위하여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7절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너희의 조상들에게 준땅, 이곳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거하게 하리라.3
8절 보라. 너희가 너희에게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구나.
9절 너희는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제사드리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가?
10절 그리고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출되었도다’하니, 이 모든 가증한 일들을 행하려 함이로구나!
11절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는가? 보라. 나 곧 내가 보았노라(야웨의 말씀)
12절 자!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두었던 실로에 있는 나의 처소에 가보라. 그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보라
13절 이제, 너희가 그 모든 행위들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야웨의 말씀),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일찍부터 계속적으로 말하여도, 너희는 듣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너희를 불렀어도 너희는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14절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했던 것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그리고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할 것이다.
15절 그리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모든 자손을 쫓아냄과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 내리라”
2.예비적 고찰
예레미야 7장은 서로 관련이 있고 의존적인 4개의 예언(설교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산문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 8장 초두에는 한가지 예언(설교문)이 더 발견되고 있는데, 7장의 4개의 예언(설교문)들과 8장 초두의 한가지 예언(설교문)을 합하여 총 다섯 가지의 예언(설교)들이 이어져 수집되어 있다. 이 모음집을 가리켜 학자들은 일명 예레미야의 ‘성전 연설’(Templeaddress)혹은 ‘성전 설교’(Temple sermon)라고 부른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레미야 26장에 기록된 사건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같은 사건에 대해, 동일한 이유아래 서로 다른 관점과 형식으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7장이 선지자가 행한 설교의 내용에 관해 기록해주고 있다면, 26장은 그 설교들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레미야의 ‘인기 없는 설교’에 대한 반응도 천차만별이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같은 종교 지도층 인사들은 예레미야의 설교에 대해 매우 격분했으며, 그 반응은 매우 격렬하였다. 예fp미야를 당장 죽여야 한다며 그의 멱살을 잡고 윽박질렀다. 반면에 관료들과 일반 대중들은 선지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설교를 들은 후 마음을 바꾸었던 것 같다. 예레미야의 외침은 대중들의 피부를 벗겨내는 듯한 날카롭고도 매서운 설교였다. 사람들 사이를 둘로 나누고, 공동체를 양분시키고, 청중들로 하여금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한 충격적인 설교들이었다.
26장 1절은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장소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즉 ‘성전 설교들’이 행해졌던 시기는 여호야김 왕의 통치가 시작하던 해로서, 아마 여러가지 상황 아래서 행해진 설교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설교문들이 한데 모아져 나란히 실리게 된 것은 이 설교문들이 일정하게 공통되는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란 다름 아닌 ‘빗나간 종교의식’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에 기록된 예레미야가 행한 설교와 그 사건에 관한 보도는 3인칭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레미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록으로 보아진다. 아마 선지자 예레미야의 친구이며 개인 비서관이라 할수 있는 서기관 바룩(Baruch)이 아닌가 추정된다(32:12ff., 36:14ff.).4 특별히 본문(7:1-15)은 문체상 1-2절과 3-15절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두 번째 부분인 3-15절에서 예레미야는 1인칭으로 자신의 예언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반면에 첫 번째 부분인 첫 두절은 예레미야에 관하여 3인칭으로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2절은 3-15절과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을것 같다. 이 경우 그는 사건적 기록인 26장을 기록한 사람일지도 모른다.5
앞서 언급한 바처럼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는 ‘빗나간 종교 의식’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6
1) 성전에 대한 잘못된 신뢰(7:1-15)
2) 하늘의 여왕을 경배함(7:16-20)
3) 무가치한 희생 제사(7:21-28)
4) 이방 풍속의 제사 예식(7:29-34)
5) 언약적 저주로서의 황폐(8:1-3)
3.성전 설교의 상황
하루는 예레미야가 야웨의 집 문 앞에 섰다(7:2). 성전 뜰이었던 것 같다(26:2). 성전 문을 통과하면 먼저 성전 바깥뜰이 나오고 다시 계단을 올라 좀더 들어가면 성전 안뜰이 나오게 된다. 안뜰은 바깥뜰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윗뜰이라고도 불렀다(렘36:10). 바로 이 윗뜰에 서게 되면 아래로 펼쳐 있는 바깥뜰을 바라볼수 있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설교하기에 매우 좋은 위치이기도 하였다. 이 뜰들에 관해서는 다른 선지자들도 여러 차례 언급한 일이 있다(사 1:12;겔11:1).
예루살렘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온 유다의 거주민들을 부르는 것으로 봐서(2절) 예레미야는 아마 특별한 종교 절기를 택하여 설교한 것으로 보여진다. 즉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드는 특별한 날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특별한 절기가 어느 때인지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26장 1절에서 여호야김의 등극 원년(B.C.609)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학자는 여호야김의 왕위 즉위식 때가 아닌가 생각하며, 다른 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가을 축제일로 전국적인 순례 행렬이 이어지는 초막절로 추정하기도 하고(슥 14:16) 또 다른 학자들은 이 두 가지가 겹친 절기가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4.첫 번째 성전 설교문
(“성전이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천만의 말씀이로소이다!”, 7:1-15)
불안한 정국7
그 당시 백성들은 두려움과 초조의 눈으로 다가오는 앞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심은 동요하였고 사회를 흐르고 있던 기류는 불확실과 불안이었다. 미래는 매우 어두워보였다. 당시 근동의 국제 정세는 새로운 세력들의 발흥과 열강들의 패권 다툼으로 불안하였으며, 특별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남과 북의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골목길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세력인 신 바벨론제국은 위대한 지도자 느브갓네살의 영도아래 늙은사자 앗시리아를 쉴 사이 없이 공략하였으며, 이미 앗시리아의 수도는 함락된 상태였다. 이러한 신흥 세력의 발흥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남방의 또 다른 강대국 이집트는 앗시리아를 돕기로 결정함으로써 갈대아인의 팽창을 막아보려 하였다.
강대국들이 패권 다툼을 하고 있던 이런 기회를 국가 갱신의 기회로 삼고 민족 독립의 기반을 확고히 할뿐만 아니라 영토확장의 계획을 추진하였던 인물이 개혁의 왕 요시야였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그렇게도 믿고 의지하였던 그들의 왕, 종교개혁의 영웅 요시야는 불행하게도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의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한다(왕하 23:28-30). 이것은 예기치 않은 국가적 비운이었다. 어두운 먹구름이 유다 온 국토에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요시야 왕의 갑작스러운 전사 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옹립되나 그도 즉위 3개월 후에 결국 이집트의 바로 느고에 의해 폐위되고, 또 다른 요시야의 아들인 엘리야김(후에 여호야김으로 개명)이 왕으로 세움을 입는다.
어둡고 불안한 시대였다. 왕위에의 즉위는 즐거움 대신 걱정을 더할 뿐이었다. 이집트는 이제 유다를 향하여 어떤 정책을 세우고 있을까? 갈대아인(신 바벨론 제국)들이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시기에 수많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무엇이 라고 설교하였을까? 그들에게 안위와 확신과 위로가 필요하였을 것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메시지가 있는가?
걱정들 하지 마시오1!
그들의 일관된 목소리는 그러한 불행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히나님은 항상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었던가! 그들 가운데서 있는 이 성전이 그 보이는 증거물이 아니던가!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가 그곳(성전)에 영원히 계시겠다고 말이다(시132:13). 성전이 우뚝서 있는산, 그 시온산은 결코 함락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그분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사 10:2414:32.30:19,31:5). 지난 세기의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는 시온의 영원함과 예루살렘의 영속성에 관해 설파하지 않았던가?8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 서 있는 성전을 보면서 안전함과 안위함과 미래를 볼수 있었다. 그러나 아뿔싸! 불행하게도 그들은 어리석게 조작 당하고 있었던 민중들이었다. 종교 지도자들이라 불렀던 당시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의도적으로 혹은 무지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잘못된 안전의식과 호도된 구원관을 심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야웨의 성전! 이것이 야웨의 성전! 이것이 야웨의 성전!” 대다수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소위 ‘야웨 성전 삼창’을 강요하였고, 이렇게 세뇌된 백성들은 강력한 안위감과 깊은 안전감을 얻고 만족하였다. 그들 모두는 일명 ‘성전 콤플렉스’(temple-complex)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9
종교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러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 그렇게 하는 길만이 자기들의 대중적 인기를 지속하는 길이며, 왕궁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들로서는 그들의 권리와 특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국가의 불행과 멸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왕궁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될것이며, 그것은 곧 자기들의 생명과 생존, 안녕과 생계유지와도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잘못된 호국 종교의 이론가들로 자처하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나오는 반사 이익들은 마치 불한당들의 수입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가 호국 종교화 되면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수많은 예들을 갖고 있다. 한편 백성들이 가졌던 잘못된 안전 의식과 호도된 구원관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무지 때문에 기인한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잘못되고 오해된 소위 정전신학(TheologyofTemple)을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성전이 곧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는 잘못된 신학과 시온의 불가침성을 선포한 이사야의 설교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신차리시오!
신학적 오해 혹은 무지로부터 출발했든지, 아니면 개인적 이익에 눈이 가려 진리를 왜곡하여 백성들에게 전하였든지 간에, 치명적인 결과는 백성들에게 나타났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잘못된 안전을 성전에 대한 잘못된 신뢰 속에서 발견하였다. 성전이 그들의 눈 앞에 서 있는 한 그들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성전이 있는 한 예루살렘 도시에는 불행이 엄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에 대한 그들의 애착은 가히 맹목적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군중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예레미야! 그는 청중들을 향하여 외쳤다. “성전이 당신들을 구원한다고? 성전이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천만의 말씀이오!” 그들의 신뢰는 철저하게 잘못된 기초를 둔 신뢰라고.
외형적인 예배 행위나 제사의식, 혹은 성전에 대한 맹목적 신뢰, 광적 믿음이 백성들을 구원할 수 없다(사 1:12IF.;렘 6:20). 어떤 경우에서도, 어떠한 상황아래서도 성전이나 예루살렘 도시 그 자체가 그 백성들을 위한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행위가 뒷받침되지 않는종교, 윤리와 도덕이 따르지 않는 제의, 정의와 공의가 기초가 되지 않는 예배는 자기 기만이며, 인권 침해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설교는 한 마디로 삶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부르짖음이었다. 문제의 대상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아니 유다 백성들은(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함하여) 하나님을 종교적 영역에 제한시켜 가두어놓고, 온갖 뇌물성 예물들을 그분에게 바쳤다. 하나님의 환심을 뇌물로 살 수 있다는 이 어리석은 백성들의 행태를 우리는 감히 옛날 이야기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그렇게도 기름진 것에 걸식이라도 들렸던 적이 있었는가? 그들은 앞시대의 위대한 선지자들의 비아냥대는 조롱섞인 말씀들, 칼날 같은 외침들을 그렇게도 쉽게 잊어버렸단 말인가?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라
너희는 길갈에 가서 죄를 더 행하라
매일 아침마다 너희의 희생 제사를 드리라
매 삼일마다 너희의 십일조를 바치라
감사 예물로 누룩 및은 떡을 구우라
너희의 자원 예물에 대해 선전하여라
너 이스라엘들아, 그것들에 관해 자랑하여라
왜냐하면 이것이 너희가 즐겨하는 일들이 아닌가!(암 4:4-5)
무수한 제물이라고 -
그것이 도대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너무도 많은 제물들에 배불렀다 -
수양의 번제물들과 살린 짐승의 기름들로 말이다!
나는 즐거워하지 않는다 -
수송아지, 어린양, 그리고 수염소들의 피를(사 1:11)
그들은 적어도 제사의식, 종교 예식의 본질과 그 의미를 잊어버렸다. 제사의식과 각종 종교 집회의 목적은 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들 손에는 피가 흔근하였고, 그들 주머니에는 떳떳하지 못한 돈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그들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 영적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중환자들이었던가, 아니면 만물보다 부패한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던 예레미야의 탄식을 증명하기라도 하던 살아있는 증거물들이었던가? 아니 그들 눈에 비친 하나님은 뇌물과 예물과의 차이도구별 못하는 신이었단 말인가?
문제는 그들의 터널 비전(tunnel vision)에 기인하였다.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과 다스림을 바라볼 수 없었던 그들의 좁은 시야 때문이었다.
너희가 기도 시에 손을 높이 펼 때에
내가 나의 눈을 가리울 것이며
심지어 너희가 많은 기도들을 드릴지라도
내가듣지 아니할 것이다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사 1:15)
이미 지난 세기의 위대한 설교자들은
목청을 높여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지 않았던가?
나는 인애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며,
번제보다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바란다(호 6:6)
사람아, 착한 것이 무엇인지 그분이 너에게 이미 보이셨도다
야웨께서 네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과 자비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고 겸손히 너의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미 6:8)
그러나 언약 공동체로서 유다 백성들과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어찌 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자들처럼 행동하였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화산과도 같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더냐?” 살인, 강도, 착취 등과 같은 불의한 일들을 백주에 자행하고서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안전하다”라고 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요, 조롱이며, 경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피난처를 찾다”, “우리가 숨김을 받았다”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문구인 “우리가 안전하다”는 말은 매우 역설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세상에서 당하고사는 자들, 연약한자들, 아무런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억울한 속사정을 아뢰고 신원받는 장소가 성전이었는데, 이제는 바로 피해자들이 아닌 가해자들이 성전에 들어와 “우리가 숨김을 받았다”라고 희희낙락하니 이 어찌 크나큰 모순과 역설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밝아야’ 할 성전, 신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모습 전체를 드러내야만 하는 공명정대한 예배 행위는 이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들로 전락하게 되었다. 어두움과 거짓, 뻔뻔스러움과 탐욕으로 가득찬 그들의 얼굴들은 이 어두운 강도들의 굴혈 속에서 모두 ‘숨기움을 받았다.’ 그들을 마치 시편의 악인처럼, “하나님이 어찌 보시랴? 어찌 그가들으시랴?”하던 자들이었다. 여호와의 토라를 범한 자들은 종교-제의의 신성성 안에 그들의 범죄들을 숨기었으며, 성전은 실제적 삶에서 행해진 수많은 파괴적 삶의 방식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치고-숨는’(hit and hide) 치졸한 도피자적 사고 구조는 종교 제의를 조작하기에 충분하였다.
특별히 본문의 표적 대상(target)은 세력을 가진 기득권층(Power establishment)인 종교지도층인 것을 감안할때, 맹렬한 비난의 대상인 범죄들을 단순히 개인들의 착취 행위들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사회 체계 전체적 행위들로서,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복리와 안녕을 처참하게 짓밟는 행동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수 있다. 온 사회전체가 철저하게 부패하고 오염되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제의와 윤리 사이의 심한 괴리와 거리감에 대해 일말의 수치감도 상실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회보다 더 불행한 사회가 또 어디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다스림은?
하나님이 언약 공동체의 주님이라면 그분의 다스림과 통치의 영역은 그의 백성들 삶 전체이다. 백성들의 삶은 그것이 종교적 측면이든, 사회적 측면이든, 정치 경제적 측면이든 상관없이-전체가 하나님의 뜻의 실현장이요, 그분의 의지의 실습장이 아닌가! 철저한 삶의 변혁과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의 관심은 놀랍게도 종교적 영역보다는 소위 ‘비종교적’ 영역에 관련된 것들이다. 십계명의 후반부, 즉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십계명의 전반부, 즉 하나님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소위 ‘종교적’ 문제들보다 앞서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삶속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죄된 행실들이 구체적인 옷을 입고 등장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는가? 아니면 차별하여 대우하는가?(사11:23,29:21;미 3:9ff.;암5:10). 타국인들, 과부들, 고아들을 압제하거나 착취하는가?(왕하4:1;미 2:9). 고대 사회에서 그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던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억울한 일의 피해자가 없도록 하였는가?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아서 결백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일은 없는가?(왕하21:16;렘 26:20ff.). 한마디로 공의와 정의의 문제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사회에, 가정에, 한 개인에게 있어서 허울 좋은 종교 행위란 위선이요, 자기 속임수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10 십계명을, 특히 그 후반부를 파괴한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가슴과 심장을 치는 행위라 할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율법’(십계명)은 하나님의 심장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고 유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찌 당신들은 그렇게도 쉽게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렸는가?
선지자는 성전 제의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가장 충격적이며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은 실로와 예루살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대목에서이다(12-15절).
당신들은 실로에 한 번 가보라.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폐허가 된 성읍, 잡초로 뒤덮여 흔적을 찾기 힘든 마을, 들짐승과 올빼미의 소리만 들리는 황폐한 고장이 아니던가! 당신들은 역사의 교훈을 잊었는가? 물론 그들은 역사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역사의 교훈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선지자의 질타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실로’가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오래 전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져버린 이스라엘의 성소가 위치한 지명이었다. 일적이 사사시대에는 언약궤와 함께 야웨의 성소가 있었던 곳이 실로였다. 이스라엘의 큰 축제일들이 되면-가을철 추수축제일, 장막절, 신년 축제일 등-수많은 인파의 순례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장소이기도 하였다(수18:1;삿18:31,21:19;삼상1:3,9, 24,2:14,4:3). 그곳에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그의 백성들은 그들의 감사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던 곳이었다(신 12:11, 14:23).
그러나 이스라엘의 언약에 대한 철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실로의 성소는 파괴되었다. 물론우리는 언제 그러한 파멸이 발생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종종 주전 11세기 중반의 사사시대 마지막에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추측하지만(삼상4:11,7:1,21장을 보라)11, 최근의 한 연구는 실로 성소의 멸망을 주전 8세기 말엽의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인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유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2 좌우지간 한 시편의 시인도 이 역사적으로 불행했던 사건을 되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큰 사건 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시 78:60).특별히 예레미야 시대에 실로의 폐허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 같으며,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으로부터 실로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임을 감안해 볼때 예레미야의 청중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장소임에 분명하다.13
그러나 그들은 그들 눈 앞에 분명하게 놓여 있는 실로라는 장소, 그리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잔해물들, 그것들이 불러 일으키는 실로 몰락의 역사적 사건의 의미에 대해 잘못된 해석과 결론을 유출하였던것 같다. 선지자는 바로 그러한 그들의 잘못된 역사적 교훈의 해석을 심각하게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이후 남쪽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인들은 북쪽 이스라엘과 그들의 성소에 대해 우월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월감과 적대감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그들의 실로 성소의 파괴를 통해 보상받고 있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실로는 야웨에 의해 배척당하고 멸망하였으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선택되어 지금까지 남아있으므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실로와 예루살렘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를 통한 이러한 잘못된 우월감과 오만한 비교의식은 유대 왕정 이데올로기의 진실성을 형성하고 주장하는데 사용되고 있던 강력한 세력이었다.14 예루살렘의 기득권층들인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류들 중 그 누구도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것이라는 선지자의 주장은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로의 파괴는 열방들 앞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공개적인 언약 저주 행위였고, 그와 동일한 운명을 예루살렘이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선지자의 시각이었다. 아니 예루살렘 성전은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라는 예언적 메시지였다(참고. 행6:13;마26:61;요2:19)
내가 이 집(예루살렘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예루살렘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물거리가 되게 하리라(렘 26:6)
예루살렘은 더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와 호의를 받는 특권 부류가 아니었다. 그들은 토라의 요구와 언약의 의무 조항들에 대해 응답하고 대답하여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요구들에 대한 응답에 실패한다면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과 파멸일 뿐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언약적 저주로서의 사형선고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15 예루살렘은 그들의 정책안 마련과 그 집행들, 신앙파 종교적 제의 사항들, 수많 은결정안들 안에서 더이상 ‘안전한 행위들’을 즐길 수 없게 된 것이다.16 앗시리아군대에 의한 사마리아 함락으로 그 종말을 본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B.C.721)이 있은지 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남방유대인들은 잘못된 선택 이념(ideology Of divine election)과 호국 종교화된 제의적 종교 아래 하나님의 언약의 심판과 저주의 표현이었던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선지자는 외친다. “실로에 가본 일이 있는가?”(12-14절), “북방이스라엘의 몰락과 패망의 교훈을 아는가?”(15절). 역사를 되집는 이유는 그 역사의 오류를 되밟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행동의 역사들, 조상들의 비극적 실패의 역사들-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금 낭송하고 기억하고 추억하여야만했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의 신앙을 간직하는 길이요, 그들의 신앙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언약적 삶으로 ‘돌아오라’17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대해 삶을 개혁하고, 행위들을 바꾸고, 악한 길들에서 떠나 ‘옛 길’(렘 6:16-26), 즉 시내산 언약과 율법에서 제시되었던 짧의 길로 걷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임할 것이다. 아니 그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옛 언약18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마지막 말씀이었다(렘 7:13-15). 하나님의 간절한 권고와 약속들에 대해(3-7절) 유다의 청중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13절). 그러한 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재난과 멸망밖에 그 무엇이 있겠는가!(14-15절).19
그리고 그 말씀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 선포가 있은 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이국땅에 살았던 유다 백성들 중 얼마는 아마 깊은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이 말씀을 다시금 상기하였을 것이다. “왜 우리는 여기 와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심각한 실존적, 신앙적, 그리고 신학적 질문과 함께 그들은 그리 먼옛날이 아닌 예레미야의 설교를 다시금 회상하였을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선지자들의 종교-제의 비판은 단지 옛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지상교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신자들의 삶을 종교제의(교회 -예배)적 측면으로 환원시키며 집중시키는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의 신학관은 옛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좋은 평행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곳에 각종 종교 행사와 예식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위선과 아집, 불의와 차별 등이 있는 곳에 ‘주여 삼창!’은 무슨의미가있는가? 우리는 예레미야의 선포가 있은 후의 유대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벨론 유배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교훈들을 배우는데 이스라엘은 너무도 비싼 값을 치러야만 했으며, 너무도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아니 아직도 이스라엘은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누가 ‘이스라엘’인가 하는 점이다.20 그리고 ‘성전’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21
그렇다! 하나님의 통치는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만 국한시킬 수 없다.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은 언약 백성들의 삶의 전 영역이다. 그분은 우리의 삶 전체를 요구하고 계신다. 우리의 삶이 종교요 인생은 예배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駐)
1. 아래에 제공된 한글번역은 히브리어 원문(BHS)으로부터 직접 번역한 본인의 사역(私譯임)을 밝힌다.
2. 이 번역은 MT의 모음 읽기를 따른 것이다( , 동사 ()을 피엘형으로 읽음). 칠십인경, 시리아역, 그리고 탈굼역도 MT처럼 읽는다(참고 7절). 현대역으로는 NEB, NAB, NASB, NIV 등이, 그리고 몇몇 주석가들(예,G.Ch.Aalders,Jeremia I, Korte Verklaring der Heilige Schrift,p.57)이 MT를 따른다. 그러나 아퀼라, 벌게이트 역본은 동사 ()을 칼형으로 읽고, 그 다음의 전치사구를 ‘너희들과 함께’로 읽는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 이곳에 거하리라” BHS나 몇몇 현대 주석가들(예, W. Rudolph,Jeremia,Handbuch zum Alten Testament 12, p.50; W. Holladay, Jeremvlh I, Hermeneia, pp.236-37), 그리고 현대역 JB, NJV, NRSV, 표준새번역 등이 이러한 읽기를 따른다.
3. 3-7절까지의 거시-구문적 구조(macro-syntactic syructure)에 관해서는 각주 18번을 보라.
4. 참고. Alders Jeremia I, p. 58; B. J. Osterhoff, Jeremia I: En praktische bijbelverklaring, Tekst en Toe1ichting(Kampen.J.H Kok,1994),p.103
5. Alders Jeremia I,p.58.참고 렘 7:1-15와 렘 26장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전승과 편집 문제에 관해서, W.Holladay, Jeremiah Ⅱ, Hermeneia(Philadelphia: Fortress, 1989), pp.101-103을 보라.
6. 본문에 대한 통시적 문제들, 예를 늘어 편집에 관한 문제들은 여기에서 다루지 않고, 공시적 관점에서 본문을 해설하려한다. 본문 주석에 관한 두 가지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 고찰과 그 상호연관성에 관하여서는 Daniel H.Ryou,Zephaniah's OracIes against the Nations:Its Synchrony and Diachrony,Biblical Interpretation Series 13(Leiden/ NewYork/Koln:E.J.Bri11,1995),pp.1-7;류호준, “차대를 위한 성경 해석, 이렇게 제안한다.”,「목회와신학」81(1996/3),pp.111-19.예레미야서에 관한 편집적 연구로서는 Winfried Thiel, Die deuteronomistische Redaktion von Jer 1-25,WMANT 41(Neukirchen: Neukirc- hener, 1973). 그리고 본문(7:1-15)에 관한 편집학적 의견에 관해서 W.Holladay(Jeremiah I,Hermeneia, pp. 236-39)는 1-12절이 원래의 성전 설교문이었고, 이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근본적인 회개가 없자,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심판선언(13-15절을 나중게 첨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좀더 복잡한 포로기 편집적 이해(특별히 신명기적 역사학파들에 의한)로는 W. Thiel, Die deuteronomistische Redaktion, PP. 106-15를 보라.
7. 이 세기의 역사적 상황에 관해서는, John Bright, A History of Israel,3rd ed.(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1), pp.324ff.=존 브라이트, 「이스라엘 역사」, 제3증보판, 박문재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PP.444ff.를 보라.
8. 참고 Gerhard von Rad,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and Ⅱ: Die Theologie der prophetischen berlieferungen Israels(Mu nchen:Chr.Kaiser Ver1age, 1975)=폰 라드, 허 혁 역「구약성서 신학II:이스라엘의 예언적 전승의 신학」(경북 왜관:분도출판사,1993), pp.154-167를 보시오.
9. B.J. Oosterhoff, Jeremia I: Een praktische bijbelverklaring, p. 104.
10.구약에 나타난 정의와 평화와의 관계에 대한 성서 신학적 논의를 위하여서 류호준, “정의와 평화가 함께 포옹할 때까지 선지서를 중심으로” 한국개혁신학회 제1회 정기 학술심포지엄 구약주제 발표 논문(숭실대,1996년 10월 5일)
11. 참고 삼상 4-5장의 기사는 실로성소에 보관되었던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겠다는 사실만을 보도할 뿐이지 실로성소자체의 멸망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12.D.G.SchIey,ShiIoh: A BibIical City in Tradition and History, JS0TS 63 (Sheffield: JS0T Press,1989),pp. 171-180.
13.북쪽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실로에 관해 언급한 예언자가 오직 예레미야밖에 없었다는 것은 예레미야가 북 왕국이스라엘 지역인 아나돗 출신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듯 보인다. 이것은 아마 예레미야가 실로에 관한 전승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아나돗’과 ‘실로’에 관하여서는 John L. Peterson, “Anathoth",Anchor, Bible Dictionary I, D.N.Freedman(ed.)(New York/London/Toronto/Sydney/Auck1and: Doubleday, 1992), PP. 227-28; Baruch Halpern, “Shiloh”,Anchor Bible Dictionaly V (1992), pp. 1213-15.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실로 성소 파괴를 북 왕국멸망과 연관짓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Contra,W.Ho11aday, Jeremiah I, pp. 247-8). 따라서 12절의 이스라엘이란 언급은 북왕국으로 이해되어야하며, 그 이전의 통일 왕국 이스라엘로 보지 않는다. 참고 Contra, 박동현, 「주께서 나를 이기셨으니:설교를 위한 예레미야서 연구」(서울:한국성서학연구소, 1995), p. 168.
l4.W.Brueggemann,Jeremiah 1-25: To Pluck Up, To Tear Down,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Grand Rapids:Eerdmans,1988),p.77.
15.참조. 예언자들의 멸망 선포와 그묘사가 특별히 언약적 저주라는 문맥 아래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연구는 D.R.Hillers, Treaty Curses and the Old Testment Prophets, Biblica et Orientalia 16(Rom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64)에서 잘 나타나 있다.
16. W. Brueggemann, Jeremiah 1-25, p. 77.
17. 예레미야서에 사용되고 있는 매우 독특한 전문적인 용어가 있다면, ‘돌아오다’()이다. 이 단어는 예레미야에서만 모두 111번 가량 사용되며, 특별히 언약적 용어(covenantaI term)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 연구로는 W. Holladay, The Root bh in the Old Testament,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Its Usages in CovenantaI Contexts (Leiden:E.J. Brill, 1958).
18. 아래의 두 가지 구문론적 형식을 보라.
A형(3절)
권고: 너희들의 길들과 행위들을 옳게 하라,
결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거하게 하리라
B형(4-7절)
권고: 너희에게 거짓된 말들을 신뢰하지 말라. 정말로 너희들의 길들과 너의들의 행위들을 진정으로 옳게 한다면, 각 사람과 그 이웃사이에 공의를 진정으로 행한다면, 외국인, 고아, 그리고 과부들을 압제하지 않는다면, 결백한자의 피를 이곳에 흘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희들에게 불행이 되기 위하여 다른 신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결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너희의 조상들에게 준 땅, 이곳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거하게 하리라.
19.특별히 14-15절을 신명기적 전통에 입각하여 포로기에 손질된 후대 첨가로 보려는 시도가 많은 통시적 연구가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다(예, 박동린, 「주께서 나를 이기셨으니」,pp.160-70) 그러나 한편, 재난선포(14-15절) 그 자체가 완고한 청중들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의도로 선언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14-15절을 반드시 후대 포로기에 첨부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 “누가 이스라엘인가”하는 문제는 본글의 범위를 넘어가는 매우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데이비드 흘베르다, 류호영 역, 「예수와 이스라엘」(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1995)
21.‘성전 신학’에 관한 신약적 이해에 관해서는, 데이비드 흘데르다, 류호준역, 「요한복음」,(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1990),제2장, 「예수와 이스라엘」,pp.87-119을 참고하라.
:: 필자 정보 - 류호준/기독신학대학원구약학교수
류호준/미국캘빈신학교(M. Div.,Th. M.)와 화란 암스레르담의 자유대학(Th. D.)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기독대학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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