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3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완전히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 한 부류는 세상 속에서 살면 세상과 동화될 것 같아서 완전히 세상을 등지고 세상에서 도피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철저히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속에서 동화되지도 않고, 세상을 도피하지도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셔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세 가지 부류 중에서 하나님은 세 번째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 어떤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주일에만 그리스도인이고, 세상 속에서는 완전히 세상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아니면 세상과 도피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절대 세상을 떠나서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철저히 우리가 이 세상에 있되,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 거하면서 세상과 동화되거나 도피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왔던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선지자거나 제사장이거나 하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정치인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이 아니라 이방나라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정치인으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게 됩니다. 특히 정치인으로서 신앙을 지키며, 그 신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케 했던 인물이 다니엘이었습니다.
오래전에 어떤 프로에서 자기 직접 찍은 여행 동영상을 보여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그 여행자가 찍어온 영상 중에서 어느 중동국가의 작은 마을 보여주는데 제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탑이었습니다. 저의 귀와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분명 다니엘의 탑이었습니다. 그 다니엘은 성경의 다니엘로서 중동국가에서도 역사적으로 영웅적으로 대접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니엘이 어떻게 세상속의 정치인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다니엘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니엘이 처해 있는 정치적 상황입니다.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다니엘이 속해 있었던 유다나라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점령을 당해서 포로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또 다니엘이 처해 있는 종교적 상황입니다.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참기 어려운 상황이고, 또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의 가장 큰 영적인 암흑기인 사사시대에도 법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빼앗겨서 다곤 신당의 창고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다곤 신상의 머리와 두 손을 끊은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가 빼앗겨 바벨론 신의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여태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이방사람의 손에 패하게 된 상황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초자 이방신당의 창고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은 전혀 이스라엘가운데서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이런 상황가운데서 다니엘의 개인적인 상황입니다.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6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벨론의 왕궁에 들어가서 바벨론의 공부를 하고, 바벨론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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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가운데서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갔습니까?
한 부류는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혹은 하나님은 이제 이 세상가운데서 살아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다 버리고 바벨론 속에 들어가 바벨론과 완전히 동화가 되었습니다.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적 현실가운데는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도피해서 광야에 가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70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게 되니까 바벨론에 동화가 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들이 포로기간 동안 바벨론과 완전히 동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북쪽인 사마리아 지방에 거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이런 사라미아사람들에 대해서 이방인보다 못하고, 개보다 못한 존재로 부정하게 취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 세상을 떠나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신비주의 종교의 근원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다니엘은 이런 답답한 현실 가운데서 바벨론의 현실에 도피하거나 바벨론과 동화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8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서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이것을 음식을 먹는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레11:2-8). 그런데 바벨론 왕이 준 진미가운데서 그것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금하는 음식을 먹지 아니함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함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비록 바벨론의 왕궁에 거하고, 바벨론의 이름을 하고, 바벨론의 학문을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천국의 시민이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비록 세상 속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뜻을 왕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아니함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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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히 주일 교회에 나와서 단순히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인 매일 일상적인 삶속에서,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다니엘은 엄청난 불이익과 고난도, 심지어 생명의 위협도 감수했어야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사람들에게 정적들에게 모함을 받았습니다. 또 풀무불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또 사자굴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평생 그에게 그 어떤 불이익과 위협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세상의 역사 속에서도 잊어지지 아니하는 위대한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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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니엘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개인적으로 도무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이지 않은 상황 속에도 어떻게 그가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습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 그 힘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동화되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생각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첫째는 다니엘의 놀라운 신앙의 힘입니다. 다니엘의 신앙이 본문 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그(느부갓네살)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지금 다니엘은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기구가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탈취되어 바벨론 신의 보고에 들어가게 된 것을 하나님이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성전기구가 모독을 당하게 되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고, 하나님이 현실 가운데서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 지는 그 모든 상황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놀라운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승리한 것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패배했을 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해주지 않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니엘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승리했을 때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 속에서 동화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패배하는 상황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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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해 있는 상황은 마치 다니엘이 처해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가운데서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전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현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현실의 상황은 더 절망적입니다. 내 현실이 삶속에서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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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가운데서 조롱거리가 되고,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상황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지금 교회현실내사역그렇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일이 잘되고 형통한 것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아니고, 우리의 일들이 실패하고 좌절하고실망되는 상황조차도------------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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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낙심되고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라도 세상의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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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으로 산다는 것--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마치 도박과 같습니다.
도박이 무엇입니까? 미래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그렇게 될 것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도박은 무모한 장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거는 도박은 결코 무모한 장난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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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 신학교가고 고3때 목회를 선택했을 때 이것이 마치 도박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결코 무모한 도박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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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떤 것에 여러분 인생의 도박을 걸고 싶습니까?
세상의 흘러가는 현실대로 사는 삶에 인생의 도박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 삶의 현실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여러분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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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분명 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는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입니다.
또 다니엘은 세상 모든 일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1장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세상의 지식입니다. 다니엘로 하여금 세상의 지식을 얻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또 2장에 가면 바벨론나라를 세우시고, 그 왕위를 세우시고, 또 그 후에 나라들을 일으키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다니엘은 알고 있었습니다. 또 나중에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뜨인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비록 자신의 나라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왔지만---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2)또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힘이었습니다(9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체식때문이 아니다--오주여내 목회에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 '은혜'로 번역된 '헤세드'(* )는 매우 포괄적
인 의미에서의 '자비'나 '사랑'(왕상 8:30;느 1:11;시 106:46)을 나타내는 말이나 본
구절에서는 '(애정어린) 친절'이나 '호의'(favor, KJV, NIV)의 의미로 쓰여졌으며,
'긍휼'(* , 라함) 또한 유사한 의미로 '인간적 연민'이나 '동정'(sympathy, NIV,
LB;compassion, RSV)을 가리킨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었다는 사실
은 왕의 명령에 저래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환관장에게 있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는 바, 본절은 문장 초두에 그러한 기적적인 내적 변화의 수여자가 하나님이심
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3))또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그는 위기 때마가 혼자 기도하지 않고 같이 친구들과 기도했습니다(2장17,18).
2장
17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또 그는 위기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씩 일상적으로 기도했습니다.
6장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기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까? 베드로는 일상적인 기도에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게세마네 기도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습관적으로 하던 기도였습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성령충만 받고 난 후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기도하면 위급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가 다니엘로 사자굴에 들어가더라도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단6장10).
또 이제 다니엘은 문제가 해결되고 평안할 때도 기도했습니다(단9장).
이와 같이 세상 속에서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사람입니다.
제일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생활에 힘쓸 것이다.
제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제삼은,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제사는,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제오는,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제육은,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제칠은,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 드릴 것이다.
제팔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제구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제십은,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링컨이 존재할 수 있던 이유 그것은 오직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바쁠수록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사보다 더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속의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또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기도는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기도의 힘으로 절망과 낙망을 극복하시고, 하나님의 뜻 때로 살아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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