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면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존심과 비슷한 말은 자긍심, 자부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없으면 사람은 비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존심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존심이라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존심이 아닙니다. 말 그대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자존심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교황이 다녀간 후로 과거에 로마카톨릭에 대해서 개혁을 부르짖었던 기독교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할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가져야합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감옥에 끌려가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손톱이 뭉개지면서 그가 벽에다 남긴 한 마디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아무리 큰 권세가 있고, 많은 돈이 있어도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로 인생 자체를 보면 너무나 허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죽음으로 인생이 끝이다” 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인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무엇으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돈이 없고, 좋은 집도 없고, 좋은 명예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절대 영원한 형벌로서의 심판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운데 인간 성인이 있느냐가 아닙니다. 또 우리 교회가운데 위대한 인간 지도자가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리스도인으로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불러주셨다는 자존심을 가져야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가난한 갈릴리 어부 출신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너희는 산위에 동네다. 너희는 등경위의 등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너”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인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등불이 될 자격이 있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가져야할 자존심은 어떤 것입니까? 또 우리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은 어떤 것입니까?
이 세상이 어둡다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빛은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썩었다면 그 썩음을 방지할 소금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산위의 도시입니다. 산위의 도시는 옛날로 말하면 왕궁입니다. 옛날에 왕궁은 산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는 영적인 왕궁, 즉 영적인 청와대입니다. 이 세상은 청와대의 모습에 따라서 울고 웃습니다. 청와대가 잘 하면 이 땅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잘못하면 이 땅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영적인 청와대 즉 산위의 도시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교회가 잘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영적 청와대인 교회가 잘못하면 이 땅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 이 세상은 교회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인 우리가 영적 청와대로서 사랑을 잃어버리면 이 세상은 사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청와대로서 하나 되지 못하면 이 세상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제일 어렵고 힘들 때 밤새도록 암송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엡1:23. 교회는 그(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세상) 안에서 만물(세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이(하나님)의 (하나님의 축복의) 충만함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육신의 몸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교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는 이 땅에서 낮아지시고 섬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이 땅에 드러내어야할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교회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축복이 내려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동부제일교회 비전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다 같이 잃어보겠습니다.
“동부제일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성도, 교육으로 예수님을 닮는 제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새 생활 새 언어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의 종소리를 울리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 24시간 cctv카메라가 작동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또 15일 동안 영상은 녹화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 안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녹화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누가 여자화장실 앞에 의자를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녹화한 것을 살펴보니까, 경찰서에서 의경들이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경찰서에 가서 당장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cctv가 작동이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천사들이 산위의 동네, 영적 청와대인 우리를 계속해서 보고 있으며 그것을 녹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 아무 생각이 없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동원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에 하나님께 수종을 드는 천사의 안팎에 눈이 달려 있습니다. 천사들이 이 땅의 교회들을 감찰하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보고 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청와대로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벌을 내리십니다.
/지금 이 세상에 왜 돈에 미쳐 있습니까? 그것은 영적 청와대인 산위의 동네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상이 사랑이 식어진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온기를 전해야할 우리교회가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물질에는 부요하지만, 왜 영적으로 공허하고 메마른 삶을 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다는 자존심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떨 때는 밤을 세우며 고민하고 끙끙거리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를 산위의 도시, 즉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다는 사실만은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오늘 교회의 모습을 보라, 너는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고 너희들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종교 집단 중에 하나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사탄은 끊임없이 거짓말로 우리를 정죄하고 조롱하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6:9.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명한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여도 절대 비굴하게는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라하게 보여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존심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죄수로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감옥에 갇힌 것 외는 너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라고 당당하게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교회의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사도바울은 교회의 자존심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1절에 보시면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다툼이란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다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다른 성도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것을 갚지 않은 그런 문제로 인한 다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가지고 고린도교회는 교회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상법정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한 성도가 돈 문제로 다른 성도를 세상법정에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성도)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세상사람)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교회)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이 말씀가운데서 불의한 자는 이 세상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불의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에 불의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이 성도 간에 일어난 문제로 세상법정에서 고발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까?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 심판 날에만 이 세상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옛날에 왕은 재판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판단하고 심판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판단하고 심판할 교회가 어떻게 불의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고라” 라고 해서 시장과 같은 광장에서 모여서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안의 문제를 가지고 시장과 같은 광장에 모여서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문제도 되지만, 영광스러우시고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명예를 이 땅에서 실추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성도들끼리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법정에 가지 말아야합니다.
/성도들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법정에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문제고, 교회의 자존심의 문제고, 그리스도의 명예와 영광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절대 그런 일이 없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범죄 한 천사인 사탄을 판단하고 심판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과 천사들까지도 판단하고 심판한 자들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을 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자존심의 문제라고 사도바울은 다시 한번 더 말씀을 합니다.
또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여기서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란 이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 돈이 많고 세상적인 지위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보면 가벼운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히 여김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예수를 믿는 여러분들은 절대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이 많다고 해서, 또 어리다고 해서 절대 나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절대 나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돈이 없고, 세상에서는 미미한 자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제일 존귀하고 무거운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중하고 존귀한 자입니까?
우리가 천하보다 귀한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이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보다 우리를 더 중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존귀하고 가치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다고 해서 늙은이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느니 절대 이런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노년의 백발을 수치가 아니라 영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혹 중고등부 학생들이 지하실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해서 절대 그 아이들을 혼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소를 좀 못한다고 해서 절대 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의 모 교회에서는 교회에 독서실이 있어서 매일 학생들이 밤낮으로 교회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저희 모 교회 목사님은 그것을 가지고 한 번도 야단을 치시기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학생들이 떠들고 노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존재가 가벼운 아이들이 아니라, 무겁고 존귀한 아이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무거운 자들입니다.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겁고 존귀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겁고 존귀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가볍게 여김을 받는 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5절과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세상을 심판하고, 천사를 심판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겁고 존귀한 자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판단을 받겠느냐고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다음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이 말씀에 보면 무엇이 허물이 있는 일이라고 합니까? 내가 아무리 정당하고 옳은 일을 가지고, 세상법정에 고발한다 하더라도, 성도가 세상법정에 서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뚜렷한 허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심지어 속는 것이 더 낫지 아니하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차리리 네가 손해를 보는 것이 낮지 아니하냐는 말입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교회의 영광과 교회의 자존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자존심이 손상을 당하고, 내 명예가 손상을 당한다 하더라도 교회의 자존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나의 영광이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내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십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라면, 나의 인간적인 모든 자존심은 손상이 되어도 교회의 자존심만은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왜 교회의 자존심이 나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합니까? 그것은 이 교회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교회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교회만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내 생명, 내 자존심, 내 명예보다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과 자존심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할 기장 중요한 자존심이 무엇이겠습니까?
1)첫째는, 거룩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 합니다.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지위를 가지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합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거대함을 가지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려합니다. 그래서 피라미드를 세울 때도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들도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이 땅에 교회도 많은 것을 가짐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음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거대해야지만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자존심은 거룩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거룩을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으로 세우며 나가야합니까?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종말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를 판단하시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라갔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얼마나 깨끗했느냐 입니다. 거룩함과 깨끗함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둘째는, 하나 됨입니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준 영광과 자존심은 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 같이 우리가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분열하고 다투고 싸우더라도 교회는 하나 됨의 이 영광과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되게 하셨고, 또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더욱 힘써 지켜나감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세째는, 사랑입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세상)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제일 큰 자존심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비로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린도전서강해⑪교회의 자존심을 지키라(고전6:1-11)
자존심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면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존심과 비슷한 말은 자긍심, 자부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없으면 사람은 비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존심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존심이라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존심이 아닙니다. 말 그대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자존심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교황이 다녀간 후로 과거에 로마카톨릭에 대해서 개혁을 부르짖었던 기독교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할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가져야합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감옥에 끌려가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손톱이 뭉개지면서 그가 벽에다 남긴 한 마디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아무리 큰 권세가 있고, 많은 돈이 있어도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로 인생 자체를 보면 너무나 허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죽음으로 인생이 끝이다” 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인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무엇으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돈이 없고, 좋은 집도 없고, 좋은 명예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절대 영원한 형벌로서의 심판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운데 인간 성인이 있느냐가 아닙니다. 또 우리 교회가운데 위대한 인간 지도자가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리스도인으로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불러주셨다는 자존심을 가져야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가난한 갈릴리 어부 출신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너희는 산위에 동네다. 너희는 등경위의 등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너”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인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등불이 될 자격이 있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 세상의 빛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가져야할 자존심은 어떤 것입니까? 또 우리 교회가 가져야할 자존심은 어떤 것입니까?
이 세상이 어둡다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빛은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썩었다면 그 썩음을 방지할 소금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산위의 도시입니다. 산위의 도시는 옛날로 말하면 왕궁입니다. 옛날에 왕궁은 산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는 영적인 왕궁, 즉 영적인 청와대입니다. 이 세상은 청와대의 모습에 따라서 울고 웃습니다. 청와대가 잘 하면 이 땅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잘못하면 이 땅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영적인 청와대 즉 산위의 도시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교회가 잘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영적 청와대인 교회가 잘못하면 이 땅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 이 세상은 교회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인 우리가 영적 청와대로서 사랑을 잃어버리면 이 세상은 사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청와대로서 하나 되지 못하면 이 세상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제일 어렵고 힘들 때 밤새도록 암송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엡1:23. 교회는 그(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세상) 안에서 만물(세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이(하나님)의 (하나님의 축복의) 충만함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육신의 몸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교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는 이 땅에서 낮아지시고 섬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이 땅에 드러내어야할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교회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축복이 내려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동부제일교회 비전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다 같이 잃어보겠습니다.
“동부제일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성도, 교육으로 예수님을 닮는 제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새 생활 새 언어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의 종소리를 울리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 24시간 cctv카메라가 작동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또 15일 동안 영상은 녹화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 안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녹화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누가 여자화장실 앞에 의자를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녹화한 것을 살펴보니까, 경찰서에서 의경들이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경찰서에 가서 당장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cctv가 작동이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천사들이 산위의 동네, 영적 청와대인 우리를 계속해서 보고 있으며 그것을 녹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 아무 생각이 없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동원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에 하나님께 수종을 드는 천사의 안팎에 눈이 달려 있습니다. 천사들이 이 땅의 교회들을 감찰하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보고 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청와대로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벌을 내리십니다.
/지금 이 세상에 왜 돈에 미쳐 있습니까? 그것은 영적 청와대인 산위의 동네에 우리 교회가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상이 사랑이 식어진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온기를 전해야할 우리교회가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물질에는 부요하지만, 왜 영적으로 공허하고 메마른 삶을 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다는 자존심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떨 때는 밤을 세우며 고민하고 끙끙거리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를 산위의 도시, 즉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다는 사실만은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오늘 교회의 모습을 보라, 너는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고 너희들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종교 집단 중에 하나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사탄은 끊임없이 거짓말로 우리를 정죄하고 조롱하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6:9.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명한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여도 절대 비굴하게는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라하게 보여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존심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죄수로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감옥에 갇힌 것 외는 너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라고 당당하게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교회의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사도바울은 교회의 자존심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1절에 보시면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다툼이란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다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다른 성도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것을 갚지 않은 그런 문제로 인한 다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가지고 고린도교회는 교회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상법정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한 성도가 돈 문제로 다른 성도를 세상법정에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성도)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세상사람)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교회)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이 말씀가운데서 불의한 자는 이 세상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불의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에 불의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이 성도 간에 일어난 문제로 세상법정에서 고발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까?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 심판 날에만 이 세상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에 대하여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옛날에 왕은 재판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판단하고 심판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판단하고 심판할 교회가 어떻게 불의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고라” 라고 해서 시장과 같은 광장에서 모여서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안의 문제를 가지고 시장과 같은 광장에 모여서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문제도 되지만, 영광스러우시고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명예를 이 땅에서 실추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성도들끼리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법정에 가지 말아야합니다.
/성도들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법정에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문제고, 교회의 자존심의 문제고, 그리스도의 명예와 영광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절대 그런 일이 없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범죄 한 천사인 사탄을 판단하고 심판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과 천사들까지도 판단하고 심판한 자들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을 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자존심의 문제라고 사도바울은 다시 한번 더 말씀을 합니다.
또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여기서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란 이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 돈이 많고 세상적인 지위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보면 가벼운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히 여김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예수를 믿는 여러분들은 절대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이 많다고 해서, 또 어리다고 해서 절대 나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절대 나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돈이 없고, 세상에서는 미미한 자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제일 존귀하고 무거운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중하고 존귀한 자입니까?
우리가 천하보다 귀한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이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보다 우리를 더 중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존귀하고 가치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다고 해서 늙은이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느니 절대 이런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노년의 백발을 수치가 아니라 영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혹 중고등부 학생들이 지하실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해서 절대 그 아이들을 혼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소를 좀 못한다고 해서 절대 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의 모 교회에서는 교회에 독서실이 있어서 매일 학생들이 밤낮으로 교회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저희 모 교회 목사님은 그것을 가지고 한 번도 야단을 치시기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학생들이 떠들고 노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존재가 가벼운 아이들이 아니라, 무겁고 존귀한 아이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무거운 자들입니다.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겁고 존귀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겁고 존귀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가볍게 여김을 받는 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5절과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세상을 심판하고, 천사를 심판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겁고 존귀한 자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판단을 받겠느냐고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다음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이 말씀에 보면 무엇이 허물이 있는 일이라고 합니까? 내가 아무리 정당하고 옳은 일을 가지고, 세상법정에 고발한다 하더라도, 성도가 세상법정에 서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뚜렷한 허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심지어 속는 것이 더 낫지 아니하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차리리 네가 손해를 보는 것이 낮지 아니하냐는 말입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교회의 영광과 교회의 자존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자존심이 손상을 당하고, 내 명예가 손상을 당한다 하더라도 교회의 자존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나의 영광이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내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십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라면, 나의 인간적인 모든 자존심은 손상이 되어도 교회의 자존심만은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왜 교회의 자존심이 나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합니까? 그것은 이 교회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교회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교회만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내 생명, 내 자존심, 내 명예보다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과 자존심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할 기장 중요한 자존심이 무엇이겠습니까?
1)첫째는, 거룩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 합니다.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지위를 가지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합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거대함을 가지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려합니다. 그래서 피라미드를 세울 때도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들도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이 땅에 교회도 많은 것을 가짐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음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거대해야지만 교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자존심은 거룩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거룩을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으로 세우며 나가야합니까?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종말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를 판단하시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라갔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얼마나 깨끗했느냐 입니다. 거룩함과 깨끗함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둘째는, 하나 됨입니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준 영광과 자존심은 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 같이 우리가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분열하고 다투고 싸우더라도 교회는 하나 됨의 이 영광과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되게 하셨고, 또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더욱 힘써 지켜나감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세째는, 사랑입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세상)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제일 큰 자존심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비로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교회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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