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1장 10절에서부터 4장까지 고린도교회 파당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고린도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결론적으로 고린도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교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교만이라고 했습니까?
1)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2)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것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이 고린도전서 4장 6절에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서로 하나가 되라고 했는데(고전1:10), 그리스도파 사람들은 그들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 성경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3)또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그래서 내가 이 교회의 왕이고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군림함으로)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섬김으로)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섬김으로)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마치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하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식한 너희들과는 달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보다 더 똑똑하다”고 말합니다. 또 “나는 너희들과는 달리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과 달리 특별하다” 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7절에서 “누가 너희를 남들과 다르게 구별하였느냐 네가 받은 지식이나 은사가 누구에게 나왔느냐 사실 그 모든 은사나 지식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너희들은 마치 그것이 나온 것처럼 하여 자랑하느냐” 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지 않은 지식이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교회의 왕 노릇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8절에서 “너희가 우리는 제쳐놓고 교회에서 군림함으로 왕 노릇하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너희들이 진정으로 우리와 함께 교회의 왕 노릇을 하려면 우리와 같인 참으로 겸손히 섬김으로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에서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교회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까? 고린도교회 사람들처럼 군림함이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오직 겸손히 섬김으로 주인의식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가 어떻게 겸손하게 주님과 교회를 섬겼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3절에서 고린도교인들 너희들은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잘되고 높이 되었는데, 사도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러운 것이란 걸레라고 했습니다. 걸레란 자신이 더럽게 되면서 남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만물의 찌꺼기란 몸의 때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 때문에” 란 말은 문맥적으로 보면 “교회 때문에”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회 때문에 걸레와 같이 되었고, 몸의 때와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고린도교회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합니까?
서로 서로 이 교회에서 높은 자리가 아니라 제일 비천하고 낮은 겸손의 자리에 서 있어야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앞에 까지는 사도바울이 아주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너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 교만한 사람들이구나, 너희는 이제 배가 불렀구나, 그래서 너희가 이제 이 교회에서 군림함으로 왕 노릇 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너희가운데 걸레와 같이 몸의 때와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이 고린도교인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녀와 같이 권면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영적으로 말하면 너희를 낳은 아버지와 같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어떤 존재입니까? 어머니의 사랑방식과 아버지의 사랑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어머니는 무조건 덮습니다. 그리고 할 말도 가급적이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조건 덮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자녀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아버지의 사랑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어머니의 사랑은 있는데, 아버지의 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권면을 하는데, 말로서만 권면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삶의 본을 보여줌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로서)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절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는 말은 사도바울이 자신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여기서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는 것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첫째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맡겨준 일에 충성함을 본받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6절을 한 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이 본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앞의 문맥을 따라서 판단하지 않고, 충성하는 본을 말하고, 또 하나는 뒤에 문맥을 따라서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은 본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오래하면 할수록 나타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판단만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남들과 다른 분별의 은사를 가졌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여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여 정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에 오직 주님께서 모든 판단과 심판을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에게 맡은 일에 충성만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도바울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만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더 어렵고 힘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리지만 분별은 하되 판단과 정죄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같이 자신에게 맡은 일에만 오직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는,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사도바울은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본을 보였습니다.
셋째는, 사도바울은 낮아짐과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보여 주였습니다.
넷째는, 사도바울은 교회가 서로 파당으로 갈라지지 않고, 서로 화합하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 제일 먼저 비판하고 책망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하는 바울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8장과 9장에는 고린도교회의 화합을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조차도 포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 자신이 사도로서 받을 수 있는 사례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 무엇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전함으로 교회가 서로 화평하고 화합하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교회의 화평과 화합을 위해서 제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화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게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고 오직 충성하는 것과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것과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것과 서로 화합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본받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사도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는 말은 내가 이렇게 예수님을 본받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1장 1절에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의 정통성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느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참 교회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도바울은 온전히 본 받는 교회가 정통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로마 카톨릭이 정통교회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거짓 교회라고 보십니까?
로마교회는 정통교회가 아닙니다. 거짓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무엇이 정통교회라고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정통교회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도들에 의해서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정통교회란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도들을 본받아야지만 정통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때 무엇이 정통교회입니까?
제일 먼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벗어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어야합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교회는 정확하게 성경보다는 교황의 말을 성경보다 위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디에 마리아를 숭배하라는 말이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마리아 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절하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로마카톨릭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벗어낫기 때문에 정통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하나 되는 본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서로 하나 되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울중심도 아니고, 아볼로 중심도 아니고, 베드로 중심 즉 인간 중심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인 인간이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아닌 인간 교황을 중심으로 다른 종교와도 화평하고 화합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내가 화평을 쫓는 것처럼 너희도 화합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 그리스도가 없는 비 진리와 이단과 다른 종교와도 화합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 합니다(갈1:8).
또 사도바울이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교황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른 교황보다 더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황이 쓴 관이 어떤 줄 아십니까? 교황은 진주와 보석으로 꾸며진 삼중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11개의 사파이어 19개의 애메랄드 32개의 루비 252개의 진주 529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런 보석으로 꾸며진 관을 쓰시면서 섬김과 희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까? 사도바울도 이런 관을 쓰면서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정통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직 성경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인간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진정한 섬김의 모습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이 아니라 직접 고린도교회를 찾아가서 그동안 사도바울이 보여 주였던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17절-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사도바울이 보여준 본)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합니다.
여기서 19절에 사도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가서 너희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요즘 신사도주의에서는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이 말씀을 문맥과는 관계없이 인용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을 넘어뜨리고, 황홀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나라를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은 어떤 특별히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보여준 삶의 본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하나님나라의 능력입니까?
서로 판단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능력입니다.
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능력입니다.
또 서로 갈라지지 않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능력입니다.
또 예수님 때문에 교회 때문에 낮아지고 희생하고 비천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능력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본 받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참된 능력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 제일 먼저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말만하고 행하는 능력이 없지 않은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고, 사도바울을 본받아 살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능력을 소유한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약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전서강해⑪교회의 자존심을 지키라(고전6:1-11) (0) | 2014.08.29 |
---|---|
고린도전서강해⑩음행에 대한 경고(고전5:1-2) (0) | 2014.08.24 |
고린도전서강해⑧(고전4:6-13)고린도교회 분쟁의 원인-교만 (0) | 2014.07.04 |
고린도전서강해⑦(고전3:16-4:5)하나 되기 위하여 (0) | 2014.06.14 |
고린도전서강해⑥(고전3:10-15)신앙의 집짓기 (0) | 2014.06.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