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편은 다윗이 밤중에 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입니다.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이 온 우주의 광대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광대한 우주가운데 너무나 미약하고 보잘 것이 없어 보이는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과연 이 우주가운데 인간은 무엇인가?? 또 이 광대한 세상가운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요즘은 너무나 좋은 계절입니다. 저는 한 때는 겨울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겨울에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따뜻한 방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냄새나는 석유난로에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성경공부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이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봄이 왜 좋습니까? 봄은 모든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얼었던 대지가 녹는 계절입니다. 움추렸든 새싹들이 새로운 힘을 얻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대지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혼자 외톨이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나에게는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하게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는가?
저 사람들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나와 함께 해주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아름답고 광대한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혼자가 아닌가”라고 하는 허무와 낙담의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이 세상의 만물을 보고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사람들가운데 “나는 혼자가 아닌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 이 시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묵상하시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편은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돌보아 주시고, 나같이 보잘 것이 없는 인간에게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자연만물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인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교회의 영광스러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먼저 다윗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1절에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우리는 우주 만물을 통해서 무엇을 바라보아야합니까? 단순히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저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입니다. 롬1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이 자연만물가운데 나타나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문 학자 뉴-톤(Newton)은 말하기를, "천문학자로서 불경건한 자가 있다면 그는 미쳤다"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는 넓고도 경이롭습니다. 지구에서 태양에 이르는 거리만 해도 얼마나 먼지 최대한 빠른 급행열차로 35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떤 별들의 빛은 창조된 후 오늘까지 지구를 향하여 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의 시선에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만큼 우주는 넓고 광대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우주 만물은 우주만물의 광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을 보여주시고 있는데, 그러면 누가 과연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까?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주의 대적자들, 원수들, 보복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누구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두 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자연적인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아무리 자연만물을 보아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또 누가 나옵니까?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과 반대로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두 사람이 똑 같은 우주공간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사상에 물든 러시아의 우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에 올라가보니 하나님은 없더라, 오직 아름다운 지구만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똑 같이 우주에 오라 갔던 한 우주인인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곳에 와서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주 만물가운데 함께하고 계십니다. 또 그 속에서 지금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 마음가운데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 가정에 위로심방을 하러갔습니다. 그때 모두 함께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를 불렀습니다. 남편을 아버지를 먼저 보낸 슬픔 때문에 약간은 우울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그 찬송을 부르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그리고 몸을 흔들거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순간 위로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천국의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그 아이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마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시편8편에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8편2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시8편1절에 하나님의 능력이 온 땅과 세상가운데서 가득 차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교회(성전)를 통하여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충만히 나타내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수만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영광과 능력을 얼마나 드러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수많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면서도 과연 참으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운데서도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같은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십니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찬미와 기도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어린아이들은 형식과 가식이 없습니다-어린 아이들은 욕심이 없습니다-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 잘 믿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십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입니다--우리도 이런 어린아이들과 같은 심령을 가지고-이 교회안에서 바르게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렇게 우리가 이런 아이와 같은 심정을 온 우주를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3절부터 나옵니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보면 시편기자는 자연만물과 사람을 먼저 비교합니다. 우리가 자연만물을 보고 우리 인간을 보면 사실 우리 인간은 보잘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의 달과 별처럼 빛을 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자처럼 용맹하지도 못합니다. 물고기처럼 물에 살수도 없습니다. 새처럼 하늘을 날수도 없습니다. 악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악어는 아주 더러운 물웅덩이에 삽니다. 또 악어는 썩은 동물도 잘 먹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가운데서 악어가 썩은 동물을 먹어서 배탈이 났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악어의 몸속에는 썩은 동물을 먹어도 감염이 되지 않는 물질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조금만 잘못 먹어도 배탈이 납니다. 이와 같이 자연만물과 우리 인간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우리 인간은 정말 별 볼일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자연만물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다른 피조물과 다른 이유는 우리 인간은 모든 만물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기억의 대상이 되며, 특별한 관심과 돌봄의 대상이 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가 무엇을 말합니까? 내가 우주 만물을 보고 인간을 보니 아무 것도 아니지만--사람이 무엇인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를 그를 돌보시나이까 라고 합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은 기억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은 창9장에서 하나님께서 홍수가운데서 노아를 기억하셨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또 여기서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우주 만물가운데, 또 무수한 많은 사람가운데서 특별히 나를 생각하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항상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잊으버리셨는가? 왜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지 않으시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생각하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49장14“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아무리 어려워도 배아파 낳은 자식을 어머니는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혹 이 세상에서는 배아파낳은 자식을 잊어버리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절대 나를 여러분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것만 아닙니다. 만물과 비교 했을 때 아무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 했을 때 아무 것도 아니며, 또 심지어 내가 나를 보았을 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계십니까?
또 “인자가 무엇이기에...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인자란 말도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돌보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란 말인데, “주의깊게 돌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장 쉽게 말하면 나를 염려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만물가운데 어떤 분이 계십니까?
내가 나를 염려하는 것보다, 부모가 나를 염려해주는 것보다 더 나를 염려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아버지가, 봄에 저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아버지가, 봄에 모든 만물이 각자의 색각을 나타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가 나를 돌보아주시고 염려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자녀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사탄의 위협과 도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낙담과 실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의 깊게 돌아봐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가 되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더 염려가 되면 염려가 되는 만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자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까지 아까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대적, 사탄을 다 물리쳐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옛날 성경에는 천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엘로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의 하나님과 같은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영화와 존귀의 관이란 원래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또 여기서 관은 왕관을 말합니다.
/원래 영화와 존귀의 왕관은 하나님 자신이 쓰시는 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 하나님보다는 못하지만, 하나님과 거의 같은 왕 같은 존재로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이것이 믿어지십니까?
엡1장 12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영광의 찬송이 되게하려 하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누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의 구주로 믿는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렇게 하나님보다 못하지만, 하나님과 거의 같은 영화와 존귀의 왕관을 씌우셨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6절에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인간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인간)의 발아래 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원래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이제 인간은 이 세상만물의 노예가 되고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돈의 노예, 물질의 노예, 세상의 노예, 환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래 인간의 영광스러운 위치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이 세상과 물질과 환경에 종노릇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 도리어 이 세상과 물질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 인간에게 왕과 같은 영화와 존귀의 왕관을 씌우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의 왕관을 세워주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거의 같은 왕 같은 존재로 만드셨다고 하니까, 실제로 우리에게 세상의 왕관을 씌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왕은 왕관이 필요 없습니다. 그 자체로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항상 가짜 왕들은 왕관 같은 것을 쓰고 싶어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영광스러운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우리에게 세상적인 그 무엇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영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 자체로서 이미 우리는 영광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또 구원받았다면 그 자체로서 이미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왕 같은 우리에게 이제 사명을 주십니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것을 에베소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지배하고 군림함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만물을 우리 발아래 두시고 이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모든 만물과 사람들을 섬김으로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축복을 전달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광대한 우주 만물 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만물가운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이때 우리는 절대 만물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합니다. 또 심지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합니다. 심지어 나 스스로 나를 판단하지도 말아야합니다--인간의 참된 존재가치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찾아봐야합니다. 즉 세상적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고 나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점에 본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비록 만물보다 못고,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연약한 존재이지만--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는 나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과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 나는 만물보다 못하지만--만물을 지배하는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 나는 이 만물위에서 이 만물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의 전달자의 사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그콘서트에 분장실 강선생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못생긴 골륨으로 분장한 안영미가 나옵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서 안영미는 제일 못생겼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면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야 이것들아”--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태도를 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사실 기죽어서 살필요가 없습니디--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기를 바랍니다. 야 이것들아----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다--
--거기서 안영미가 그렇게 큰 소치를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믿는 구석이 있기때문입니다-그는 분장실 강선생에게만 사랑을 구걸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고 보잘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야 이것들아 라고 할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계시기때문입니다----우리는 그 하나님앞에서 말로 다할수 없는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대상이기때문입니다--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연약하지만--날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구걸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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