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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욥기

잘못된 위로(욥25:1-26:4)

by 금빛돌 2014. 6. 5.

오늘 본문은 빌닷의 말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25:1-6절에 빌닷은 먼저 2절과 3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위대하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 그런즉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고 합니다. 5절에서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달이라도 빛을 내지 못하고, 별도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물며 그런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은 구더기와 같고 벌레와 같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빌닷의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입니까? 틀린 이야기입니까? 모두 맞는 이야기입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 맞습니다. 또 그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을 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에게서 난 자 즉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어찌 나는 죄가 없고 깨끗하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모두 구더기와 같고 벌레와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하나님 앞에서 죄악 되고 연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빌닷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욥에게 네가 죄인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하는 말이 네가 죄가 있기 때문에 이런 구더기와 벌레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 성경적으로 바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느냐 입니다. 지금 빌닷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욥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 있는 욥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262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여기서 힘 없는 자 기력없는 자는 욥 자신을 가리킵니다. 빌닷이 욥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욥에게 바른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가 절대 욥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힘 없는 나를 잘 도와주는구나는 말은 네가 힘 없는 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네가 지혜 있는 자로 지혜 없는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것은 참된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너의 모든 말이 맞는 이야기인데,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네가 무슨 정신으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 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욥의 이 말을 통해서 무엇이 참된 위로이고, 충고인지를 잘 알아야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빌닷의 이야기는 하나도 틀린 이야기가 없습니다, 모두 성경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또 나름대로 욥을 위로하고 욥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빌닷의 위로가 잘못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이 빌닷은 욥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욥기에 나타난 욥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욥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빌닷은 이런 욥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성경지식을 가지고 욥이 죄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이 참된 위로입니까? 참된 위로는 제일 먼저 그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잘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아야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말을 한다면 도리어 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아무리 바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잘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사람을 정확하게 잘 이해를 하고, 그 사람의 형편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려가지 어려운 일들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느냐, 네가 그렇게 게을러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네가 잘 되게 위해서 내가 하는 말인데, 너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은 모두 그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말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여 아무 것도 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을 행해야합니다.

형제님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 왜 낙심하십니까? 왜 절망하십니까? 하나님은 절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십시오 이렇게 말을 해야합니다.

/이와 같이 바른 위로는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게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또 이 빌닷의 위로가 잘못된 이유는 빌닷에게는 사랑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4절에 네가 하는 말이 누구를 향하여 하는 말이냐고 하고, 또 네 말이 누구의 정신이 너에게서 나왔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내게 한 말이 무슨 정신에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빌닷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빌닷은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참된 위로입니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사랑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도리어 그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지혜는 그 사람을 완전히 낙심하게 하고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어떨 때는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말을 하느냐입니다.

이 빌닷의 잘못된 위로를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른 말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그 사람을 잘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위로자가 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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