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계속해서 친구들로 인해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2절에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고 합니다.
욥이 당한 고난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온 친구들로 인한 마음의 괴롭힘과 고난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에 대한 충고가 욥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너희가 열 번이나 (마음의 괴롭힘으로)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고 합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만일 이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너희들도 죄가 있지 아니하냐 라고 말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마치 자신이 죄가 없는 의인인 냥 욥의 허물과 죄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이렇게 욥이 죄가 있다고 그 죄로 인해서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욥의 친구들의 자만,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자신은 완벽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아래로 보면서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오 주여 저로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욥의 친구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만일 그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보았다고 하면 어떻게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또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 본 사람이 어떻게 형제의 아픔을 위로해준다고 하면서 그에게 그 큰 마음의 괴로움을 주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이 무엇보다 형제에게 아픔을 주고 있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만든 어떤 신을 섬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서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존재하고 계시고, 서 계심을 실재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보다 자신 안에 있는 작은 죄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남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충고하는 눈보다 오히려 자신의 죄에 대해서 날마다 회개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기에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실제 하나님을 만나 본 사람은 그 사람이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더라도 혹 내가 남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일이 없는가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늘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의 삶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삶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욥은 친구들로 인해서 받았던 마음의 괴롭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욥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욥의 죄때문이라고 계속 주장을 하지만 욥은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억울한 고난입니다. 욥의 죄로 인한 고난이 아닙니다.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또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렇게 자신이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분도 결국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욥이 자신이 당한 고난이 단순히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고 말하는 것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만일 욥이 당한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하면 욥의 친구들의 말처럼 욥이 착한 행위를 통해서 그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당한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결국에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은 욥이 당한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잘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욥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은 욥의 미래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섭리라고 하는 말은 “미래를 미리 보다”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절대 미래를 미리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미래를 미리 볼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욥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주신 것은 장차 미래에 욥에게 더 크고 좋은 갑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욥의 이 고난을 결국 미래에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고난가운데 있더라도 욥과 같은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조차도 다 하나님의 주관하심이다. 그리고 내가 당하는 모든 고난가운데 나의 미래를 내다 보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당한 고난이 얼마다 억울하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때로 욥처럼 이모든 고난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나의 미래를 내다 보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때도 욥처럼 이 모든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난에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더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난에 나의 미래를 더 좋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욥19:1-6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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