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관심 있는 분야는 안전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안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전에도 우리교회에도 도둑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교회에 cctv를 달았습니다. 그 당시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시는데 그런 것이 필요한가? 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건물에서 cctv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밤에도 용역을 불러서 경비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 그 어디에게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를 지키는 것이 단순한 건물이나 방범시스템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인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어떤 사람이 측량줄을 잡고 있습니다. 이 측량줄은 길이를 제기 위한 줄자입니다. 이 측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이 측량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예루살렘을 측량해서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측량줄을 가지고 예루살렘 주위를 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인 예루살렘의 성곽을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왔습니다. 와 보니까 성전은 이미 다 파괴되어 있고, 또 예루살렘성곽은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건축하는데, 여러 가지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중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학개 선지자는 왜 빨리 성전을 짓지 않느냐고 합니다. 빨리 성전건물을 지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짓는다 하더라도 예루살렘성곽이 건설되지 않으면 다시 외적이 들어와서 성전을 파괴할지 모릅니다. 또 예루살렘성곽이 건설되지 이스라엘백성들의 삶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성곽을 건설하기 위해서 측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희망적인 모습입니다. 또 느혜미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성곽이 건설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성곽을 쌓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또 그 성곽을 건설하기 위해서 측량을 한다는 것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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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루살렘성곽을 건설하기 위해서 측량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이 말씀은 정말 이해가지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앞으로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과 가축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예루살렘 성곽을 쌓아라” 라고 해야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인데,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곽없는 성읍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성곽없는 성읍이란 히브리 말로 프리자-즉 광정이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프라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프라자 라고 합니다. 프라자가 어떤 곳입니까? 폐쇠된 곳이 아닙니다. 아무나 다 올수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오리는 뜻에서 프라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예루살렘성이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성곽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려먼 성곽없는 성읍이 되면 성전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안전은 누가 지킵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내가)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옛날성경으로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내가)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원문에 보면 내가 라는 두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걸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친히 사면에 불성곽이 되어서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보호하고 지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곽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주십니다.
여기서 불성곽이란 말은 그 불안에 있는 사람은 따뜻한 보호를 느낍니다. 그런데 그 불밖에 사람들은 불로 태워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을 불기둥으로 보호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불기둥안에 있는 이스라엘사람들은 그 불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은 그들을 위협하는 바로의 군대를 불사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신다 뜻은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불 성곽이 되어주십니다-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너희들은 성곽이 필요없는 성읍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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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에게 건물이 필요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없다는 말씀입니다.
분명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건물 자체을 위하거나 신성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안장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건물이 필요하지만--이 건물만 있으면 우리의 모든 안전이 지켜진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물 속에 있더라도 우리를 지켜주시기 보호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 주실 뿐 아니라 어떻게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8절을 다 같이 같이 읽겠습니다.
“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침)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침)범하는 것이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눈동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눈동자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눈꺼풀이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일분에 몇 번 눈을 깜박거리십니까? 우리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꺼풀은 지금도 계속 깜박거리면서 눈에 수분을 공급하고, 또 이 물질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만일 누구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침범하고 위협한다면 그것은 누구를 침범하고 위헙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눈동자를 침범하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눈동자를 침범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런 사람은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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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내가 손을 그들(우리를 위협하는 자)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우리를 위협하는 자)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육시키시려고 잠시 이방나라를 사랑의 매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자녀를 치는 도구로 사용한 다음에 그 나라를 완전히 멸망을 시키십니다. 바벨론이 그러했고, 앗시리아가 그러했고, 페르시아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헙하는 자들 위에 손을 움직인즉 우리를 위헙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노략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반드시 망하게 하십니다.
--또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왜 우리가 사방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하고 기뻐해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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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건물이 있어도 건물이 없는 것처럼 하고 살아야합니다. 건물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에게 건물이 있고, 보안 장치가 있더라도 건물안에서 폐쇠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세상에 대해서 더 열린 마음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그 날에 많은 나라(많은 사람들이)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이 그 날은 신약시대인 오늘을 가리킵니다. 오늘 이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혹 방범장치를 한다하더라도 폐쇠적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교회에 올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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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 교회에만 적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분의 개인적인 삶에도 적용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성곽을 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모든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집, 더 안전한 아파트에서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의 이름도 --무슨 캐슬(무슨 성이라는 말입니다) 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또 무슨 타워 펠리스(망대 요새 궁전 라는 뜻입니다)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그래서 그 아파트가 나의 모든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크고 안전한 아파트라도 우리 육신의 안전을 잠시 지켜주지만 이 세상의 죄와 사탄의 침범을 막아 주지 못합니다.
//얼마전에 잉꼬부부로 유명했던 연예인 서모씨가 아내를 폭행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서모씨의 집이 공개가 되었습니다. 정말 화려하고 넓고 멋진 인테리어로 꾸며진 집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집이 그 가정을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요즘 집들은 크고 화려하고 안전하지만 사탄과 죄의 침범으로 우리 개인의 인격들이 파괴도 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자녀들이 죄와 사탄의 미혹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또 그로 인해서 집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좋은 집-안전한 집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불성곽이 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와 가정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셔서-- 성곽이 필요없는 성읍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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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불성곽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성령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 합니다.
이사야 7장에 보면 유다왕 아하스 때에 외적이 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왕과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과 같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불성곽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왕이 어떻게 말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에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에 의해서 유다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불성곽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불성곽 대신에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방법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불 성곽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범시스템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것만을 의지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건물이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지식을 의지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불 성곽은 성령하나님입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하나님으로 불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불성곽인 성령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합니다.
슥4장 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
찬송가 184장 1절을 다같이 불러보겠습니다. “불길 같은 주 성령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보여 주소서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저는 요즘 목회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목회는 내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면서, 육체로 있던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은 보혜사 성령으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나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오직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심지어 제 설교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령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행복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실제 우리가운데 계신 인격적이신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성경공부를 많이 해도 성령하나님이 아니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령하나님만을 의지하니까 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을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충만하여 우리 교회와 가정이 성령의 불 성곽으로 둘러싼 교회와 가정이 되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따뜻한 하나님의 따뜻한 보호하심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 예배당 건물에 들어오기만 해도 하나님의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성령의 불성곽으로 그 어떤 사탄의 권세도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는 교회와 가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불성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불 성곽을 체험합니다. 기도를 하면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깡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도 술 먹은 깡패출신인 어떤 사람이 저를 보고 갑자기 당신이 목사냐 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내가 목사라고 했습니다. 목욕탕에 가면 문신이 세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전혀 그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똑바로 쳐다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기도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불 성곽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불성곽으로 사면으로 보호고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의 불 성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성경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의 관점에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성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호세아 11:8절을 보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사랑)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상황가운데서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의 마음이 “불붙은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렘20:9).
또 사49:15에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사랑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그 무엇이 참으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겠습니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참으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참으로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한 주간 동안도 우리를 향하신 이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으로 날마다 보호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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