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권위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권위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잘못된 권위자들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위라고 하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로마서13장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권위)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권위)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권위)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위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름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못된 권위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까 절대 복종해야합니까? 일제시대나, 북한의 정권도 모두 잘못된 권위인데, 다 복종해야합니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고, 남편이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위이기에 다 복종해야합니까? 라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권위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만일 권위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잘못되게 사용한다면 그 권위는 잘못된 권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이 권위를 주신 목적을 잘못 사용할 수 있다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는 잘못된 권위자가 있고, 참된 권위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잘못된 권위자란 어떤 사람이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된 권위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잘못된 권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잘못된 권위자는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이 세상)의 임금들은 백성들을 주관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백성들 “주관하며” 라는 말은 “주인 노릇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대통령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목사가 아닙니다. 또한 장로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또한 회중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내가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권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2.또 잘못된 권위자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자입니다.
25절에서 백성들을 “주관하며” 라는 말은 “주인 노릇 한다”는 말도 되고, 또 백성들을 권위로 “지배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니까 내가 내 마음대로 이 나라를 지배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이니까 내가 이 교회를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타락한 권위입니다.
3. 또 잘못된 권위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대통령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말을 듣고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위로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타락한 권위자가 됩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교회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교회의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누가 전하건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 권위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권위자들은 항상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번에 열방대학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열방대학은 큰 일이 건 작은 일이건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나눕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절대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공감이 될 때까지 나눔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공감할 수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이 되면, 이제는 절대적으로 지킵니다. 그래서 한 두 사람의 뜻에 따라서 진행이 되지 않고,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또 교회의 권위자들은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아래로는 교회 안의 작은 소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권위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4. 또 잘못된 권위자들은 업적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나타내려 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시면“(세상의)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인이라는 말은 권위자의 업적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권위자들을 보면 항상 자신의 때에 업적을 쌓으려 합니다. 열악한 재정에 화려한 청사를 짓는 다든지, 아니면 다른 도시에서 이미 실패한 사업을 굳이 강행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은 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자신의 때에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김으로 사람들에게 은인이라는 칭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잘못된 권위자들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의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을 때 교인이야 어떻게 되었건 내 때에 무언가 한번 큰 업적을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자가 잘못된 권위자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건물을 무리하게 지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하고 교인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 교회 권위자의 업적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 때에 이런 일을 했다고 은인이라 칭함을 받기를 원한다면 이런 사람이 교회의 잘못된 권위자입니다.
5. 또 잘못된 권위자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섬김과 대접을 받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예수님은 “27(세상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그 많은 많은 혜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의 섬김과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권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26(세상의 권위자들은 이러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십니다. 최고의 권위자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그러면 섬기는 참된 권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상처를 주는 자가 아니라 상처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이 참된 권위자입니다.
요즘 연일 북한의 2인자인 장성택의 숙청소식을 듣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의 1인자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장성택과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런 김정은이 진짜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권위는 억압의 권위고, 공포의 권위고, 강요의 권위고, 수많은 백성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타락한 권위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권위자들이 권위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주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나라의 권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나라의 권위자는 상처를 주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상처를 많이 줄수록 권위가 더 높지만, 하나님나라는 상처를 더 많이 받을수록 그 사람의 권위가 더 높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십니다. 또 시편16편 11절에 보면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통과는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권위자로 고통과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을 왜 고통가운데 계신 주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자신은 고통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 땅에 고통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서 늘 우리 때문에 고통가운데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권세를 누리며 편안하게 계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최고의 권위자인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본받은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사도바울의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 많은 거짓선생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영광의 목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수많은 고난의 목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실 때도 많은 영광과 대접을 받는 목회자들이 권위가 있어 보입니까? 아니면 수많은 고난과 상처를 받는 목회자가 더 권위가 있어 보입니까? 우리도 많은 영광을 받는 목회자가 더 권위가 있어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23 그들이(영광을 받고 있는 거짓선생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라고 하면서 수많은 고난의 목록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저는 지난 3개월 동안 제일 많이 공감되었던 말씀이 바로 사도 바울의 이 말씀입니다. 제가 “어렵고 힘들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가운데 어렵고 힘든 성도가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 제일 큰 어려움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혹시 좋지 않을 일이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 제일 좋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가운데서 단 한 분이라도 교회에서 상처를 입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하러 가면 제일 어려운 사람이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조차도 거부합니다. 제가 상처를 받더라도 여러분은 상처받으면 안 됩니다. 내년의 표어가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교회입니다(롬12:15). 우리교회는 권위자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도리어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작은 자의 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는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섬기는 자란 집에서 음식을 나르는 종을 뜻합니다. 주인이나 손님이 밥을 가지고 오라하면 밥을 가지고 와야 하고, 국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국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잘못된 권위자는 오직 자신의 뜻이 중요하지만, 섬기는 참된 권위자는 자신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진정으로 참된 권위자는 자신의 뜻이라고는 없습니다. 오직 위로 하나님의 뜻과 작은 소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만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받들어 섬기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지난주에 고려신학대학원 길성남 교수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18장14절 “이와 같이 이 작은 자(소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하고 있습니다. 길성남교수님은 여기서 작은 자는 믿지 않는 자 중에서 작은 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 중에서 작은 자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18장의 문맥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크냐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는 상황에서 제일 많이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작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의 다툼 때문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길성남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낮추는 자가 곧 높은 자라는 천국의 원리를 내팽개치고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지도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무시를 당합니다. 많은 소자들이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자들이 실족할 때 날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그들의 천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소자들을 돌아보지 않고 힘 있고 재력 있는 이들을 가까이하면서, 자리다툼에 골몰하는 지도자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자기를 낮추는 자가 곧 천국에서 큰 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회복하고, 교회 안에서 소자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소자들을 배려하고 잘 돌보아야 하겠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섬기는 참된 권위자입니까? 교회 밖에 불신자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한 작은 자라도 실족시키지 않는 권위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자가 하나가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교회 안에서 내 권위가 중요하다”고 하는 자는 참된 권위자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참된 권위자는 교회 안에 작은 자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을 수 있는 자라야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소자)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작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천사들이 매일 작은 자가 당하는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께 매일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권위자라면 절대 작은 자를 실족케 하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그들의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권위자가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참된 권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힘이 없는 작은 자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참된 권위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희생하고 손해 봄으로 자신의 배가 아니라 양들의 배를 불리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성경에서 잘못된 권위자의 예로서 사울 왕이 나옵니다. 사무엘상14장24절“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사울왕의 관심은 오직 복수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규칙을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된 권위자를 따르는 자는 불행합니다. 그러면 참된 권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따르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잘못된 권위자는 왜 당신들이 나를 섬기지 않느냐? 당신들이 왜 내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느냐? 당신들이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 합니다. 그러나 참된 권위자는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당신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며,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사탄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사탄에게 미혹이 되어 사탄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을 따르면 결국 사탄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빼앗아가고, 결국 멸망시키고, 함께 죽게 만듭니다. 여러분 절대 사탄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참된 권위자인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권위자는 자신이 손해보고 희생하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오직 따르는 사람의 행복과 더 풍성한 복을 받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이 복을 받는 길이라면 그 어떤 희생과 손해도 얼마든지 감당하려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저는 지난 3달 동안 제일 아쉬웠던 것은 강단입니다. 3달 동안 그 어떤 교회에서도 설교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마지막 주에 제가 출석하던 조천장로교회에서 설교를 부탁받았는데, 학교에서 허락을 하지 않아서 결국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맡은 청소구역을 강단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서 어떤 말씀을 전할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오직 축복의 말씀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오직 복 밖에 없습니다. 제 안에는 여러분들을 향한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와서 제일 가슴이 아픈 것은 여러분 가운데서 가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제일 기쁜 소식은 여러분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제가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마음껏 축복을 하겠습니다. 이 복을 정말 나의 것으로 받고 싶으시다면 아멘으로 화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온 가족이 하나 되는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 연세 드신 분들이 몸 아프신데 없이 건강하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우리 가정의 모든 자녀들이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미 결혼한 가정에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이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님들이 경영하는 사업장이 형통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에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의 적성에 맡는 직장이 구해지기를 축복합니다. 결혼을 앞둔 모든 청년들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서 신앙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그들의 적성에 맞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군에 있는자녀들이 몸 건강하게 훈련을 잘 받고 돌아오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이 건강하게 신앙으로 잘 자라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가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014년에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교회가 되어서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어, 새롭게 도약하는 새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가 권위자들로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자가 참된 권위자입니다.
여러분 열방대학에 간사님들이 설교를 잘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교회 교역자들이 설교를 잘하겠습니까? 우리교회교역자들이 설교를 더 잘합니다. 저는 요즘 교역자들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열방대학에서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열방대학은 철저히 팀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대표를 하셨던 홍성건목사님도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고, 현 대표도 특별한 재능이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단체가 움직여지는가 보니까 철저히 팀사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함께 같이 사역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우리 인간과 기도로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참된 권위자는 홀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5)친구 같은 사람이 참된 권위자입니다.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우리의 참된 권위자가 되셨습니다. 참된 권위자는 따르는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죽더라도 따르는 사람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권위자들이 우리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참된 권위가 이 교회에 세워질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권위자들이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여 따르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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