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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이방인과 다른 기도(마6:7-8)

by 금빛돌 2014. 1. 17.

 

이방인과 다른 기도1(6:7-8)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중언부언이란 생각 없이 말을 많이한다는 뜻입니다.

즉 기도할 때 무조건 내가 간절히 많이 말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서 보게 되는 일반종교인들은 모두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종교인들에게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소원성취입니다. 내 뜻이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구에는 정말 불교가 아주 심합니다. 길을 가면 불교대학도 눈에 많이 뜁니다. 지난번 서문로교회 주위에도 절이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가다가 보니까 밖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소원성취-그러니까 일반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소원입니다.

또 일반종교인들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도의 정성입니다. 사실 기도의 열심에서 본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100일기도, 1000일기도, 등 기도에 열심입니다.

또 그들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무조건 말을 많이 하여야 신이 들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십번 수천번 뜻도 모르는 불경을 외우고 또 외웁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8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기도할 때 얼마든지 이방 종교인들처럼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을 절대 이방 종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반종교인들처럼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기도하기에 앞서서 일반종교인들과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기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일반종교인들처럼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제가 3달 동안 기도에 대해서 제일 많이 배운 것은 하나님 무엇을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간구의 기도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대략 이런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런 순서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방해하는 사탄을 대적하는 기도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가 나의 무능을 고백하고, 오직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즉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가 자신의 뜻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어떤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그것을 나눕니다. 그리고 서로 나누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공동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로 그 하나님의 뜻을 두고 간구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포와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시종일관 내 뜻만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의 전부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소원을 자꾸 아뢰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 년 52주 우리의 기도와 간구의 내용이 거의 동일입니다.

정말 우리교회가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기도회가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회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이방종교인들의 기도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기도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절대 우리의 소원의 성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우리교회에 우리가정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두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선인만 아니라 악인조차도 사랑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도 어떨 때는 북한의 김정은이 하나님의 불벼락을 맞고 죽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역사를 왜곡하는 저 일본이 그냥 주저 앉았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8: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악인)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죽어 마땅한 악인이라도 벼락 맞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회개하여 스스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마5:4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저는 한번은 제주 바닷가에서 햇살을 보면서 이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우상숭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동네는 아직 뱀을 신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이 시집가면 항아리에 뱀을 넣어 보내는 곳이 아직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뱀을 신으로 섬기는 그 곳에는 해를 비추어주지 않습니까? 비를 내려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에게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사랑과 축복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이런 분인 것을 안다면 어떻게 기도해야겠습니까?

저 북한의 김정은도 회개하여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저 일본도 우상을 버리고 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저주의 기도가 가능하겠습니까?

중보기도 강의시간에 어떤 형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어떤 권사님이 저주의 기도를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주의 기도가 가능합니까? 라는 질문을 강사에게 했습니다.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점을 치는 무당들은 간혹 자신이 싫은 사람들을 위해서 저주의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2:14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데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잘되도록 축복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이방종교인들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도 기도하실 때 마음껏 축복의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루 지나서 내일 너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이 같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하루 만에 들어주시겠다고 해도 그것이 천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천년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시간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기도응답이 천년이 걸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 않아도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제가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에 중직자분들의 자녀들 중에 잠시 하나님을 떠난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그 사람에게로 들어가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로 들어가서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제 마음 속에서도 하나님 왜 빨리 돌아오게 하지 않습니다. 돌아와도 벌써 돌아 왔어야하지 않습니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걱정하지 말라 돌아오고 있다. 비록 더딜지라도 오래 참고 기다리라 그러면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면 절대 기도에 있어서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오래 참으면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기도할 때 무조건 내 뜻과 소원이 빨리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간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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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방종교인들은 신과의 친밀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종교인들이 우상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듭니까? 가능하면 크게 만듭니다. 대구에 동화사라는 절이 있는데, 발가락이 사람크기만 합니다. 그들이 믿는 신은 자신들이 근접하기에 어렵고 힘이 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어떤 불상은 사람이 잘 접근하지 못하는 산꼭대기에 새겨놓기도 합니다. 이방 종교인들에게는 왜 신과의 친밀감이 없습니까? 그들이 믿는 신이란 살아있는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거룩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저 높고 높은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구할 것을 다 미리 아시는 아주 친밀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만일 여러분이 저에게 말하기도 전에 제가 여러분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다면 제가 얼마나 더 친밀하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제목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만 기도해도 됩니까? 오 주여 주님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라고해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이방종교인들의 기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가질 수 있습니까?

1)우리가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 큰 일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어야합니다.

천주교가 아니라 성공회 신부인 얼마 전에 돌아가신 대천덕 신부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킬 때도 하나님 제가 자장면을 먹을까요? 짬뽕을 먹을까요? 하면서 하나님께 물어보고 음식을 시킨다고 합니다. 매일 타는 차를 타시면서도 이 차가 무사히 잘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런데 정말 특별한 큰일이 닥치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과의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하기에 앞서서도 내 뜻을 간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2)또 우리가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과 더 친밀감을 가지지 위해서 우리가 사소하게 느껴지는 죄라도 더 꼼꼼하게 걸러 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진다고 하면서 죄에 대해서 느슨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 친밀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더 꼼꼼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준은 항상 하나님이 되어야합니다.

/또 우리의 죄 가운데 마음의 생각으로 짖는 죄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의 죄만 아니라 생각의 죄까지도 철저하게 걸러 내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가 발견되면 하나님 앞에서 즉시로 회개해야합니다. 회개란 그냥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죄에 대한 그물망을 더 좁히면 좁힐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활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지 못 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 생활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9시 뉴스는 보아야하고, 10시 드라마는 반드시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3달 동안 tv나 스마트폰이 없이 살아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설교준비를 할 때는 제외하고는 9시쯤에 잠을 잡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이 사람들을 보니까 사람들이 잠시도 스마트폰이 없이 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tv나 스마트폰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과 교제의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실제 우리가 기도회 시간이나 예배시간에 앉아 있어도 하나님에게 잘 집중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생활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십니까? 이 기도회 시간에 하나님과 더 친밀한 기도를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내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일들을 조금씩이라도 줄여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친밀히 느끼는 기도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방인과 다른 기도2(6:7-8)

6: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의 기도가 이방종교인들의 기도와는 다른 기도라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방종교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소원성취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기도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선인만 아니라 모든 악인들도 사랑하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저주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사랑과 축복의 기도만 해야 합니다.

또 이방인들은 신과 친밀감이 없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고 기도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는 더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 우리의 생활이 단순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3)오늘은 우리의 기도가 이방인과 다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찾아가서 구체적으로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들을(이방종교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아신다는 이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다 아시는데, 왜 우리가 굳이 하나님께 힘들게 기도해야하는가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도 그냥 대충 하나님 잘 아시지요라고 하면 되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생각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중에서 이신론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신론이라는 것은 이론적인 신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살아있는 인격체로 믿지 않고, 하나의 원리로만 믿습니다. 예를 든다고 하면 지금 이 세상과 지구가 움직이는 것은 마치 시계태엽을 감아놓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시계태엽과 같이 누가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냥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마치 자동판매기와 같이 생각합니다. 자동판매기는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맞추어져 있어서 시간만 되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굳이 자동판매기 앞에 나가서 아침을 주십시오, 점심을 주십시오, 저녁을 주십시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미리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 얼마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기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인격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달라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4:2--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준비해놓으셔도 우리가 하나님께 찾아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말을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믿음과 기도에 제한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교회(가정과 개인)에 놀랍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미리 다 준비해두셨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합니다. 또 믿는다면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신 놀랍고 풍성한 은혜를 우리가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나안땅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순종했으면 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었어도 그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한해 우리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놀랍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다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것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원망 불평만 하고, 불신의 말들만 하면 4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을 준비하신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는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욕심대로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구나? 내가 욕심으로 잘못 구한 것이었구나?” 깨닫고,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바꾸어야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내 고집의 성취가 아닙니다. 내 고집의 굴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다라고 하시면 금방 기도제목을 바꾸어야합니다.

/또 이것이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까지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다니엘9장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해서 포로70년이 되면 이스라엘이 돌아오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때부터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믿지 못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니엘은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라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셔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니엘서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한 천사가 그것을 가지고 내려오는데 3주가 걸렸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까 악한 천사가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도 왜 기도해야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사탄의 방해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방인과 다른 기도3(6:7-8)

6: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방인과 다른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방인과 다른 기도는 첫째 내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 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친밀감이 있는 기도라 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구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뜻과 계획을 세워도 우리가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찾아가서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응답해주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로 우리의 기도가 이방인과 다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왜 이방인 종교인들이 뜻 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합니까? 이방종교인들은 그들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라도 무조건 정성을 대해서 기도하면 신이 들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불교시간에 배운 것이 이것입니다. 반은 불경을 외우게 해 놓고, 그 다음에는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심학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처란 무엇이냐,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컷 불경을 외우게 해 놓고, 불경의 뜻이 무엇이냐. 그것도 몰라야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뜻을 몰라도 정성을 다해서 외우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을 떠 놓고 정성을 다해 기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생긴 돌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과연 그 물이 응답을 해줍니까? 그 돌이 응답을 해 줍니까? 라고 하면 그들은 말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겠죠, 중요한 것은 내 정성이 아닙니까? 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이방종교인들의 기도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할 때 이렇게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그런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새벽기도시간에 사무엘상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삼상11-8절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의 고통을 다루고 있고, 9-18절은 그 고통을 가지고 한나가 기도하였습니다. 이 한나의 기도에 대해서 117절에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8절에서 한나는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합니다.

앞에서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을 믿고 확신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통곡하지 않습니다. 이제 밥도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줄을 믿었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기도만 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고, 이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응답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면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람들이 기도는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만하였지.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입으로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간절함은 있었지만, 기도에게 제일 중요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11:24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가복음 9장을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탐 마샬이라는 사람은 기도의 싸이클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기도제목----간구의 기도---믿음의 시점(마음의 확신-평안)----감사,선포(이일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일을 이루어질지어다)------응답의 시점---하나님께 영광

//제일 먼저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간구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마음에 확신이 듭니다. 이렇게 마음에 확신이 생긴 증거는 평안입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염려하고 불안했는데, 기도하면서 마음에 확신이 드니까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그 다음에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질지어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응답의 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의 시점과 응답의 시점사이에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내게 마음에 확신을 주시고, 평안을 주셨는데, 시간적으로 당장 응답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1)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은 맷돌을 가시되 천천히 가신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맷돌을 가는데, 빨리 빨리 갑니다. 그래서 대충 눈으로 볼 때 희게 보이면 다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히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더디게 보일지라도 정확하신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2)마음의 확신과 응답의 시점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보다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두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확신과 응답의 시점사이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기도의 응답물을 더 사랑하느냐”. 만일 우리가 하나님보다 기도의 응답물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응답의 시점을 더 늦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을 우리가 받아서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불행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도의 응답만에 가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피폐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응답의 시점을 늦추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에게 그것을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3)그래서 마음의 확신과 응답의 시점사이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조급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교제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정확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입으로 믿습니다. 고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속으로는 안될거야라고 한다-그래서 하나님은 입이 아니라 우리의 속을 보고 응답하신다--

 

내 하나님은 크고 힘있고 능있어 못할일 전혀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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