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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레위기

구약제사와 예배(레4:1-12)

by 금빛돌 2013. 4. 11.

성경을 한군데 더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47,8입니다.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여기서 언약서는 앞에 3절과 4절에 있는 대로,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그들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스라엘백성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리이다고 합니다(7). 이렇게 말하니까 8절에서 모세가 그들에게 언약의 피를 뿌립니다. 이 피는 속죄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말씀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다든지, 아니면 죄를 짖고 있는 장면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왜 모세가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그들에게 뿌렸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해보세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라고 하지만, 결국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것을 예상하시고

속죄의 피를 뿌려준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속죄의 피를 뿌려준 것이 제도화된 것이 출25장부터 나오는 제사의 제도이고, 이 제사제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경이 바로 오늘 읽었던 레위기서입니다. 또 구약의 제사제도가 바로 신약시대 예배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구약시대에 제사제도가 왜 필요했는지를 알 수 있고, 또 신약시대에 우리에게도 예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예배가 필요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말씀대로 살아가야합니다. 그런데 항상 한주간의 삶을 돌아보면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우리의 죄를 처리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남으로 다시 새 힘을 얻고 또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또 한 주간 살다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해야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눈이 감길 때까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려야하는 이유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잘못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처럼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보다 잘 살았습니다, 나는 저런 죄인들과는 정말 다르게 살았습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를 가지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는 잘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 살았다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서 있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절대 그 어느 누구도 나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았고, 또 한 주간동안 기도만 하고 살았어도--항상 하나님 앞에서면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너무나도 하나님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런 죄악 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생들 경우에 토요일 밤 늦게 까지 티브를 보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믿지 않는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또 초신자나 신앙이 어린 사람의 경우에는 분명히 주일 교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토요일 친구가 연락이 와서 밤새도록 술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겨우 일어났습니다. 이런 경우 정말 내가 감히 교회 나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양심상 꺼리 끼고 부담스럽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이럴 경우에 예배를 드려야합니까?

-이럴수록 더 예배의 자리로 나가야합니다.

그럴수록 더 하나님 앞에 나가야합니다.

우리가 예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말씀대로 잘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항상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지만-죄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1019절에서 내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완벽하게 살아간 사람입니까? 그런데 그도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 히1022절에 보면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합니다.

 

왜 양심의 악이라 합니까? 양심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너무 양심적이라서, 내 양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양심이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때 비록 내 양심에 꺼리 낀다 하더라도 오직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가야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속죄입니다. 회개입니다. 또 그 속죄와 회개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구약의 5대제사는 모두 죄를 씻는 속죄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은 나오는 속죄의 제사는 속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속죄의 제사에서 우리가 몇 가지 살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각 직분마다 제물의 종류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는 가장 비싼 수송아지를 잡습니다. 22절에 보면 족장이 죄를 범하면 그 보다 낮은 수 염소를 드립니다. 27절에 평민이 죄를 범하면 그보다 낮은 암염소나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드립니다.

이것은 직분이 중할수록 그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큰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합니다. 직분이 중하면 권리도 많습니다. 권리가 많은 만큼 하나님은 더 철저히 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중직이 되고,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만큼 하나님이 더 큰 책임과 성결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중직일수록 더 조심해야합니다(중직 되는 것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나는 책임이 덜한 위치에 있으니까 회개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죄도 회개해야하지만 -평민의 죄도 회개해야합니다. 이와 같이 중직이면 더 크게 회개해야하지만-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회개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또 물어보겠습니다. 모르고 짖는 죄는 죄입니까? 모르고 짖는 죄도 회개해야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422절 중반 절“--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3/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이라고 되어있습니다. 427,28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러니까 모르고 짖는 죄도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낱낱이 다 알아야합니다. 철저히 공부해야합니다. 몰라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성경1189장을 읽고 공부하는 하면 할수록 몰랐던 죄를 깨닫고 더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516-성물-갚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줄 것-적용-교회에서 쓰는 물건-실수로 손해를 끼쳤다면 반드시 갚아야한다-프로젝트-몰랐는데 레위기서공부하면서 다 값았다-25만원).

모르고 짖는 죄도 죄입니다.

 

또 사람 앞에서 짖는 죄와 하나님 앞에서 짖는 죄가 서로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레위기서에 보면 속죄제는 주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이고, 속건 죄를 사람 앞에서 범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별로 구분이 없습니다(/56-“속건제를 드리되(사람 앞에서 짖는 죄에 대해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왜 그렇습니까? 사람 앞에 짖는 죄도 하나님에서 짖는 죄와 같습니다. 그래서 만일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앞에 지은 죄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서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합니다.

물론 이 죄들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죄지어도 구원은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지어도 우리의 신분은 변하지 않으며, 예수만 믿으면 천국은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내게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마치 수도관이 막한 것과 같습니다. 집에 오랫동안 세면기가 막혀서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트래펑을 넣었는데 괜찮다가 또 막혔습니다. 그래서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세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제가 관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리고 헌 칫솔로 그 관을 뚫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시꺼먼 것들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뚫고 나니 물이 시원스럽게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들이 내게 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죄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씻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부담스러움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이며, 참 기쁨이며 은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합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먼저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4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 하여 백성으로 죄를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뉘우침과 반성과 회개는 다릅니다. 뉘우침은 죄에 대해서 그냥 자기 속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성은 자기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철저히 우리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가지고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면 후회만 되고 회개는 되지 않습니다.

 

2)그 다음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먼저 자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141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14/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23절에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 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3)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켜야 합니다.

4절입니다. 4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이때 안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때 안수의 의미는 번제와 같이 제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나의 모든 죄를 나의 모든 죄를 그 제물에 전가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네 죄가 다 전가 되어지는 제물이기에 제물은 흠이 없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는 분은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안수는 우리의 죄를 전가시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대신하여 희생의 제물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 피가 회막문 하나님 앞에 뿌려집니다.

 

4)또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속죄의 제물은 진 밖, 영문밖에 버립니다.

신약에서 영문 밖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진 밖이라는 것은 완전한 저주의장소입니다. 형벌의 장소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제물이 죄로 인해서 죽고-진밖에 버려져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영문밖에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한 완전한 벌을 우리를 대신하여 져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그 속죄의 제물이 우리를 대신해서 철저히 죽고 희생되어지고 피가 뿌려지고, 그 제물이 진밖에 버려지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면 우리의 그 어떤 죄라도 다 사해주시고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물어 보겠습니다. 이 레위기서에서 죄에 대한 지적이 많을까요? 회개하면 죄를 사하여준다는 말씀이 많을 까요-예 죄에 대한 지적보다 회개하였을 때 사하여 준다는 말씀이 훨씬 더 많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426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같이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

4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 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 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

510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

516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

518 그는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범한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

67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

 

죄의 권세보다 은혜의 권세가 더 큽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한 죄에 대해서 그 다음 또 다시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죄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하며, 또 하나님 앞에서 사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함을 받은 우리들은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보았습니다. 둘째아들 달콤한 젤리의 유혹 때문에 마녀의 꼬임이 넘어가서 마녀의 편에 섰습니다. 그 둘째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사자와과 마녀가 협상을 벌입니다. 풀어주는 조건은 사자 이 둘째 아들을 위해 죽는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사자 왕이 마녀의 소굴로 들어가 갈기가 찢겨지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자왕은 다시 부활합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마녀의 무리들을 물리쳐 줍니다. 그래서 얼음에 꽁꽁 얼었던 나니아 왕국이 따뜻한 왕국으로 완전하게 변하게 됩니다. 또 이제 마녀에게 사로잡힌 둘째 아들이나 나머지 3형제들에게 똑 같이 나니아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왕의 자리를 줍니다. 여기서 사자왕은 누가 보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날마다 죄의 유혹에 실수하여 넘어가는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인 C.S. 루이스가 원작으로 쓴 것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복음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죄에서 구출되고 해방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왕자노릇 공주노릇을 하며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고-더 이상 이 세상 속에서 허덕이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그 하나님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레위기서는 죄에 대한 해방의 책이며-또 한 우리로 하여금 참된 자유의 자리에 서게 하는 복음의 책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씻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시고 그 하나님나라의 은혜의 풍성함을 날마다 누리시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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