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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레위기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레 1:1-9)

by 금빛돌 2019. 10. 2.

레위기는 성경읽기의 암초, 성경의 고비사막, 성경의 히말라야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까? 그 이유는 레위기가 읽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읽기를 시작하는 분들도 레위기에 와서 중단합니다. 또 성경을 공부하는 분들도 이 레위기에 와서는 어려워서 그만둡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 레위기를 보아야합니까? 그 이유는 이 레위기는 너무나 은혜로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레위기가 은혜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레위기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나눌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레위기를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지성소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먼저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보통 회막이라고 하는 것을 성막이라고 합니다. 성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천막과 다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성막을 회막이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막할 때 회자는 만날 회자입니다. 그러니까 회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성경에서는 제사 또는 예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누가 누구를 부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원문으로 보면 제일 처음 나오는 단어가 와 이크라라고 해서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 레위기서의 이름은 와 이크라”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회막에서 모세만 부르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2절에 보시면 “2너희 중에 누구든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누구든지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회막을 만드셨는데, 이 회막이 언제 만들어진 것입니까? 출애굽기 35장부터 40장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이 회막을 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에서 그리고라는 말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회막을 짓게 하시고 난 다음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레위기서를 볼 때 레위기서만 아니라 그 이전에 출애굽기를 보아야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광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자신을 축소하시고, 또 축소하셨습니다. 그래서 회막이라고 하는 작은 장소를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너무나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이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이 우리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넓고 큰 청와대나 백악관에서 만나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청와대나 백악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온 우주를 거처로 삼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서 좁은 장소인 회막을 만드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줄이시고, 또 줄이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무한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작은 공간에 넣으셔서라도 우리를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구약시대에 회막 만을 만드신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신약시대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을 입히시고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왜 하필이면 인간 중에서 왕으로 오시지 않으시고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까? 그 이유도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누구라도 만나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서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병이 들어도 괜찮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괜찮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삶의 수많은 고난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그 누구라도 달려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또 우리 모두를 만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만일 육체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영원히 계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유대 땅으로 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대기표를 만나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하나님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는 오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고 하는데, 이것이 미완료형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과거에만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미래에 어느 시간에 우리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외면할 때가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넓고 우리가 만나야할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 이세상은 넓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인생의 수 없는 고난의 광야입니다(오주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막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지성소로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가운데 수많은 고난의 광야를 허락하십니다.

어떨 때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가시기도 하십니다.

또 어떨 때는 우리가 가장 의지하는 것들을 모두 빼앗아 가시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그 고난의 광야에서라도 우리를 만나셔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의 광야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장입니다.

2:16.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사랑으로) 꾀어내어 빈들(광야)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주리라.

17. 거기에(광야에) 포도원을 마련해 주고 아골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바꾸어주리라. 그제야(광야에 있을 때에야) 내 사랑이 그 마음에 메아리 치리라 애굽에서 나오던 때, 한창 (사랑이) 피어나던 시절같이. 18.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낭군이라고 부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시다. 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광야에서 절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광야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사랑의 지성소로 더 달려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이 레위기는 그 이전에 이스라엘백성의 출애굽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또 이 레위서는 다음에 나오는 민수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민수기의 다른 이름은 광야에서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있을 때 그들의 중심에 성막 또는 회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에서 움직일 때도 회막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너희가 광야에서 생활을 할 때 광야만 바라보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회막 가운데서 너희와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 광야를 지나갈 때 회막 가운데 있는 나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지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야를 지나갈 때 광야를 바라보지 않고 회막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광야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생활을 끝 부분에서 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 광야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러면 광야만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인생이 광야와 같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안으시는 생애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민수기 뒤에 나오는 신명기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31: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여기서도 보시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나아오라고 말씀하시고 그 회막에서 그들과 만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는 광야의 끝부분에서 미래에 들어갈 가나안땅을 보며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장차 미래에 들어갈 가나안땅도 회막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 능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31장에 너희가 그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버리고 내 말씀대로 살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너희가 만일 그 가나안땅에서 우상을 섬기고, 내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숨기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미래가 불안하고 두렵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회막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회막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가나안 땅을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제일 갈급해야할 것이 단순히 경제의 회복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결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갈급해야 할 문제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회막에서 우리를 만나시려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계속해서 만나기 위해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1장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구약 제사를 통해서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화랑 교수님은 예배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란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도 아닙니다.

또 예배란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무조건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란 첫째, 우리를 만나시기 위한 성부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입니다.

또 둘째, 예배란 성부하나님과 우리를 만나게 하기 위한 성자 예수님의 사랑의 헌신입니다.

또 셋째 예배란 성부하나님의 사랑의 초청과 성자예수님의 사랑의 헌신에 응하는 우리들의 사랑의 헌신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배란 첫째 우리를 만나시기 위한 성부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통해서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회막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성부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인간을 만나 위해서 회막을 만드시고, 그 회막에서 모세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굳이 인간을 만나시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족하시며 스스로 교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굳이 인간과 만나서 교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물은 모두 예수님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번제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가 내 아들을 이 제물과 같이 피를 흘려서 죽이겠다,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이 제물과 같이 각을 떠서 죽이겠다,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내장까지 불태워서 죽이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셔 하나님은 내가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 얼굴을 보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배란 성부하나님과 우리를 만나게 하기 위한 성자 예수님의 사랑의 헌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제사의 제물의 공통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수컷만 아닙니다. 암컷도 드릴 수 있습니다. 또 동물만 아닙니다. 곡식도 드릴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제물의 공통된 점은 모두 흠이 없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 보시면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왜 흠이 없는 제물이어야 합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 없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119절에 보면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흠이 없으시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물과 같이 죽으시고 불태워져서 없어져야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제사드리는 자)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동일시, 전가)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제사드리는 자)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여기서 속죄라는 말은 죄를 가린다, 덮는다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에게 다 전가시키면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어지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심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나갈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가 다 가려지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만나주시고 받아주시게 된 줄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래서 오늘 분문에 나오는 희생제물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사 자신의 몸을 번제의 제물로 드리신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사를 통해서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부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기쁘게 죽이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제 인간 편에서 우리가 올려드리는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번제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번제란 말의 뜻은 불태워서 드린다입니다.

그래서 번제의 제사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불태워서 드린다는 헌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헌신예배란 단순히 한 달에 한 번씩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가 헌신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번제의 제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쳐지는 제물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런데 만일 소를 번제의 제물로 드릴 때는 5절에 보면 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송아지는 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자가 드리는 최고의 제물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귀한 아들을 우리에게 드리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수송아지를 바칠 수 없는 형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송아지가 아니라 양아니 염소를 제물로 드린다면 10절에서 “10.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과 염소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인 수컷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양이나 염소를 바칠 수 없으면 14절에 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를 반제로 드린다면 새 중에서도 최고의 제물인 비둘기를 드릴 것이요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어릴 때 집이 가난하여 비둘기를 예물로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둘기는 예수님의 가정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수송아지를 예물로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양이나 염소를 드린다면 그것은 온전한 번제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양이나 소를 제물로 드린다면서 수컷으로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최고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단순히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예물을 받기 위함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번제물을 모두 불태워서 없애기 때문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헌금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으로, 최고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최고의 예물만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4절을 다시 보시면 4. (제사를 드리는 자)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동일시, 전가)할지니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안수의 의미는 그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자가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이 있는 레위기 1장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번제의 제물을 잡아서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을 누가 하는지 아십니까?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합니다. 그래서 “5. (제사를 드리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6. (제사를 드리는 자)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안수란 그 제물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수한 제물을 잡아서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을 통해서 지금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누구를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제물과 하나가 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안수한 제물의 목을 따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의 가죽을 벗기면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외식의 겉껍질을 완전히 벗겨서 드립니다. 그 제물의 각을 뜨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 안에 아직 살아있는 모든 자아를 잘근 잘근 죽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제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자가 완전히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것을 가지고 불을 붙여서 완전히 불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렇게 하여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9. --제사장은 그 (제물)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사실 여러분들 실제로 보면 그 모든 제물들이 탈 때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드리는 번제의 제사, 즉 헌신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헌금)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예배가 완전한 헌신의 예배가 될 때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며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헌신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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