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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구약의 중심주제

하박국의 중심주제

by 금빛돌 2011. 4. 9.



1. 하박국서의 역사적 배경과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합1:1-11).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좀 더 잘 이해하기위해서 하박국서의 역사적 배경을 잘 이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허공 속에서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속에서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이 쓰여 지게 된 시대는 북쪽의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한 상태입니다(722년bc. 이스라엘 멸망 뒤 110년 지난 때). 이제 남쪽의 유다만 남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박국 바로 직전에는 유다 왕 요시아 왕이 일어나 하나님의 율법 책을 성전에서 발견하고, 그 율법 책을 읽고 회개하고 모든 우상과 악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시아 왕이 죽고난후 그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엘리야김, 여호아하스, 시드기야입니다. 원래는 첫째아들이 왕이 되어야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둘째아들이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애굽왕 바로 느고에게 3개월 만에 페위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왕 바로느고는 유다를 속국으로 삼고 첫째아들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바꾸고 유다 왕으로 세웁니다. 이렇게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 되고난 후 여호야김은 애굽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서 유다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게 합니다(황하24:4).
그리고 여호야김은 자기 아버지 요시아와는 달리 하나님께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하나님의 참 선지자인 우리야를 죽입니다(렘26:20-23). 그리고 예레미야 조차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살아납니다(렘26:24,36:26)
렘22장에서 여호야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이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의 모습이 하박국 3절과 4절입니다.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이런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악에 대해서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내용이 2절에 나와 있습니다.
"2 여호와여 !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 왜 이 악한 여호야김 왕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지 않습니까? 내가 그의 강포함에서 구출해 달라고 기도하는데도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적용/
예화1) 어느 여 성도님이 펑펑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우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성도님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 성도님의 자녀가 인간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병을 치유해달라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도 없고, 그저 답답하기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일을 격게 하시는가?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화2)간사 7년 동안 저를 후원하시던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은 정말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그 동안 하시던 사업을 정리하고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갈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왜 오스트리아로 가시게 되었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나라가 너무 불의해서 이 땅에서는 도무지 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깨끗하고 정의로운 나라에 가서 한번 살고 싶어서 이민을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사업,자녀교육등).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불의한 세력과 사람들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그 사람에게 특별한 죄가 없는데도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한 일들을 격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공의를 의심하게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왜 내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합니까? 또 하나님이 공의로우신데 왜 악과 불의를 허용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인합니까? 또 왜 많은 사람들이 한때는 하나님을 잘 믿었다가 이제는 낙심하여 신앙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불의한 일을 당할 때 몇 가지의 반응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불가지론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나 말씀을 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현실의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신다면 왜 악을 허용하시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합니다(2차대전). 또 하나님이 살아계시더라도 그 분은 아무런 힘이 없으며, 악인을 허용하시기도 하고, 의인을 버려두시기도 하시므로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절망으로 인해 자포자기와 방탕한 생활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때 제일 많이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바로 절망입니다. 이런 불의한 상황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하는 이유와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가 형통하고, 악인들이 망하는 것을 보면 그 어느 누구라고 하나님의 말씀도 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불의한 현실 때문에 더 이상 내가 말씀을 본다는 것이, 읽고, 그것을 묵상하며, 공부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불의한 현실가운데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시73편11,12"볼찌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가만히 두십니까? 또 왜 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설치는대도 가만히 두십니까?
네 번째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를 행하기 보다는 악을 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박국시대의 모습이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아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합1:5-11절에 나와 있습니다.
5-11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악한 유다왕인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유다나라를 물리치시기 위해서 6절에 보면 갈대아사람(즉 바벨론-이라크)을 일으켜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바벨론)을 일으켰나니
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8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10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11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이 바벨론 나라는 7절에 있는 것처럼 두렵고 무섭고, 또 아주 큰 조직을 갖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 8절에 보면 표범처럼 빠르고 이리처럼 사납고, 또 아주 빠른 기병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 9절에 보면 그 바벨론 나라는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와서 모래같이 많게 될 것입니다.
또 10절에 보면 바벨론 나라는 주위에 많은 나라와 왕들을 쳐서 멸망을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이 바벨론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신을 삼는 나라인데, 그 나라는 바람과 같이 급하게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여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유다나라가 잘못하고 그것에 대해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말씀하시기를 그 악한 유다나라를 치시기 위해서 더 악한 바벨론을 일으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을 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악한 세상 사람을 이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2.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합1:12-2:3).

선지자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은 유다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데, 왜 하나님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갈대아 사람(바벨론 나라)를 일으켜서 유다나라를 죄를 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5-11).

이렇게 말씀하니까 또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유다나라가 악하지만 바벨론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더 악한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 악한 나라를 통해서 그보다는 덜 악한 유다나라를 치시는 것이 맞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 하박국의 두번째 질문입니다(또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바벨론은 그렇지 않다).
이런 질문이 합2: 13절에 있습니다.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

주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지 못하며 패역을 참지 못하시는 분인데 왜 궤휼한 자를 방관하십니까?
여기서 궤휼한 자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여기서 악인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또 여기서 의로운 사람은 유다사람을 가리킵니다. 비록 유다나라가 아무리 악해도, 바벨론사람보다는 의롭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사용하셔서 유다나라를 벌하려고 하십니까? 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나라의 죄를 벌하시기 위해서 그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 나라를 사용하십니까?

이러한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박국은 스스로 답을 내립니다.
그것은 12절 하반절 에 있습니다.
“여호와여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시기 위해서 그를 두셨나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유다를)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를(바벨론)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유다나라를) 경계하시기 위해서 (즉 깨어서 정신 차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를(악한 바벨론)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하7장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일 저가 범죄하면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이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면 인생채찍과 막대기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다나라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인생채찍과 막대기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12절에서도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2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경계하고, 회개시키기 위해서 막대기로 사용했던 저 악한 바벨론은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2장 3절에 있습니다.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여기서 종말은 바벨론의 종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으켜서 사용하셨던 바벨론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완전히 멸망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역사가운데서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유다나라가 회개시키기 위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철저히 회개를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나라는 망하지 않고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파사(페르시아)나라를 일으켜서 바벨론을 완전히 멸망을 시켰습니다.

이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인생채찍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고 난후에 앗수르를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시키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치시기 위해서 인생체직과 막대기를 사용하시는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죄에서 돌이켜 살게 하시고, 또 그렇게 사용하셨던 채찍은 반드시 부수어 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잘못할 때 사랑의 채찍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고 난후 자녀가 눈물 흘리며 회개할 때 그 자녀를 안아주고 그 채찍은 꺽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적용/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봐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사랑의 채찍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징계의 채찍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또 사랑의 징계는 모두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징계의 채찍이 없으면 사생자요 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다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바벨론을 사용하십니까?
그것은 사랑하시고 회복시키기 위함이지 절대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인생채찍을 맞아본 분들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했는데 아무 일도 없는데, 나는 조금만이라도 잘못하면 채찍을 맞아본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게 채찍을 내리신후 절대 우리를 망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낫게 하시려고, 죄에서 돌이시게 하시고, 우리안의 교만과 악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시려고,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채찍질하기 위해서 사용한 막대기는 반드시 부수어 버리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기독교 출판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하겠다고 고소했습니다. 그 분이 한 가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일 그 사람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됐다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내가 누구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겠다고 말씀하지 말아야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알아서 심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다시 한 번 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인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하면 세상의 모든 것 사용해서 우리를 벌하시지만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만하면, 악에서 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3. 하박국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여기서 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하박국이 처한 절망적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유다나라는 여호야김 왕이 들어서서 참된 선지자를 죽이고, 말씀의 두루마리를 불태웁니다. 온통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이 해이해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서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유다는 곧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할 위기에 있습니다.
이 바벨론은 어떤 나라입니까?
바벨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나라의 전형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힘을 신처럼 믿는 나라입니다(1장11).
그리고 아주 무섭고 사납고 성급하며 강포와 악을 행하는 나라입니다(1장7-10).
1장14절부터 보면 바벨론은 마치 세상에 모든 나라들을 낚시하며, 그물질 하듯이 다 잡아들이는 나라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이 바벨론은 교만한 나라입니다. 4절에서 “그의 마음은 교만하셔 그의 속은 정직하지 못하니라” 여기서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이런 교만한 나라가 유다백성을 포로로 사로잡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보십시오. 지금 하박국의 현재는 유다의 악한 사람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 그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 나라가 유다나라를 포로로 잡아가게 될 상황입니다.
현재에도 악인이 에워싸고, 미래에도 더 악한 사람들이 에워 살 것이 하박국이 지금 처한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절망의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낙심할 것입니다. 자포자기 할 것입니다. 포기하고 물러서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때는 소망이 있지만 교만한 사람들, 악한 사람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낙심합니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이 우리주위를 에워쌀 때 정말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73편 기자의 말대로 실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헛되게 여겨질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하박국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합니다(하나님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 악인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과연 옳습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 무어라 말씀해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1장 17절).
2장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그때 하나님의 답변이 2절부터 나옵니다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2절에 보면 그 말씀을 판에 기록하라고 합니다.
왜 판입니까?
지워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판이라고 말한 것은 영원한 없어지지 않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하박국에게 하신 말씀으로 오늘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왜 달려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하라 합니까?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3절에 악인들의 종말은 반드시 속히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때 더딜지라도 반디시 하나님께서 이땅에 악한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4절 비록 악인들은 교만하고 정직하게 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의인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 믿음은 악인들이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에워싸고 있어도 하나님은 교만하자들은 반드시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히10장
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또 침륜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침륜에 빠진다는 말은 서서히 젖어든다는 말입니다. 즉 점점 파괴되고 소멸되어져 멸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악인들과 교만한 자들이 우리를 에워산다 하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우리 믿음이 파괴되거나 점정 소멸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낙망과 절망가운데서 우리를 살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의인은 물러서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안과 교만한자를 반드시 멸망시키고 의롭고 겸손한자를 반드시 높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의 절망하는 나를 살려야합니다.
하박국이 이 믿음이 현실화 된 것이 언제였습니까?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이 멸망하게 된 것은 이후부터 몇 십 년 지난 후였습니다(바벨론 포로70년 포함하면 최소 100년 후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도 악인들처럼 악하고 교만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더욱 의롭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게 현실화 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야합니다. 또한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리도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합니다.
혹 지금 여러분 가운데서 주위에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박국이 가졌던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악인들은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더딜지라도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면서 현재 어떤 고난과 절망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우리가 답답한 일이 있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당장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도 오해가 되고 억울한 일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일 년 갈 수도 있고 10년 갈 수도 있고, 안되면 예수님이 오시는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수 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가 무엇입니까?
비록 당장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고, 답답함에 대한 원한이 현실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의인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병든 아이를 두고 한평생을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60년을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 땅에서는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병준 어머니). 그러나 그녀가 가져야할 태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와 원한이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지금 당장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큰 절망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자 핵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 앞에서 악이 당장 넘어지고 의인이 형통하는 것을 봐야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비록 내 앞에 불의한 현실이 있다할지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물리쳐 주실 것을 믿음으로 그들 때문에 기죽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악인들 때문에 그동안 기죽어 살아왔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온 세상에 악이 가득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의인은 항상 소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발상이 아닙니다. 하박국은 그가 처한 현실가운데는 악이 가득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것이 지금 우리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지 맙시다. 그 속에서 지금도 역사하고 심판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봅시다. 이것이 인생의 여러 난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정말 억울한 고난과 모멸을 격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지켰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입니다. 그는 그에게 고난이 깊은 만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갔습니다(503장,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하박국은 불의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원망하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3장2절"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여기서 말하는 주의 일이 무엇이며, 부흥이 무엇입니까? 단순한 수적인 부흥과 성장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이 땅 가운데 모든 악인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교만과 간사와 탐욕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이 이 교회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부러지더라도 휘어지지 맙시다. 움추려 들지 맙시다.

4. 합 2장5-20절까지 나오는 바벨론의 다섯 가지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어떠합니까?
첫 번째 죄(5-8)--탐욕이 가득한 죄(볼모로 잡은 것으로 악을 행하고, 자신의 소유 아닌 것을 노략질 함)
하나님의 보응--그들이 행한 대로 강포와 노략을 당하게 된다.
두 번째 죄(9-11)--타인이나 타국의 재산이나 재물을 탈취한 죄(착취와 탐욕)
하나님의 보응--패망
세 번째 죄(12-13)--폭정을 일삼는 폭군과 폭력과 피를 흘리는 죄
하나님의 보응---불타 없어짐
네 번째 죄(15-17)--몰인정하고 잔인한 죄--타인을 멸시하고 이용하여 수치를 주는 죄/
하나님의 보응--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응하심
다섯 번째 죄(18-20)--우상숭배의 허물이 있는 죄
하나님의 보응--멸망하게 하심

적용/유다나라는 하나님의 백성(교회)이고, 베벨론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만 의로 통치하시는 것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의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악에 대해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는 세계만 아니라 믿지 않는 모든 세계의 주권자요 의로운 통치자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만 신앙의 세계에서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불의의 세상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와 보응이 있음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상에서도 성공하게 됩니다. 다니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5. 합3:1-2에서 하박국은 어떻게 하나님께 노래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노래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기오놋은 경쾌한 댄스리듬의 노래입니다.
지금 하박국이 처한 상황은 애가를 불러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유다가 악인으로 에워싸여 있고, 또 그 보응으로 하나님께서 곧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즉 악인이 의인을 완전히 에워싸서 온 세상이 악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또 곧 하나님의 심판이 닥칠 상황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와 살아계심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합3장에 와서 하박국은 이런 상황을 보고 애가를 불러야하는데, 경쾌한 댄스 리듬의 노래인 시기오놋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하박국이 경쾌한 댄스 리듬으로 노래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절에 있습니다.
2 여호와여 !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께 대한 소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앞에서 하박국이 주님께로부터 직접들은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의 악을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다를 벌하게 될 악한 바벨론의 멸망이 반드시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합2장5-20절까지는 바벨론의 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멸망을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사실을 듣고 믿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은 불의하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일을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믿음으로 바라보면 애가를 부를 상황 속에서도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되는 상황이 닥친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면, 염려스러운 상황가운데서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상황만을 바라보고, 현실만을 바라보고, 불의한 사람만을 바라보면 슬픔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애통할 상황에서도 경쾌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또 불러야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박국은 그 유명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절 하반 절 “여호와여 !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

여기서 주의 일이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하박국 전체의 흐름을 보면 이 땅에서 모든 악인이 물러가고, 의인이 가득 차는 일을 말합니다.
악인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자가 온 세상에 가득 차는 일을 말합니다.
또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 차는 일을 말합니다.

부흥이란 단순히 수적인 성장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해도 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가진 의인들이 수적으로 많아지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부흥이란 온 세상에 악이 물러가고 의가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자가 물이 덮음같이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주의 일이고,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부흥입니다.
이런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수년이란 금년 내란 말입니다. 그래서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란 말은 이런 주의 일을 속히 이루어 달라는 말입니다.

적용/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박국은 절망의 상황가운데 단순히 말씀만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또한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주신 말씀이 오랜 뒤에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말씀이 속히 이루어질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선지자들과 주의 종들의 모습입니다.
다니엘은 유다백성이 말씀대로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날 기한이 다 된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난 다음부터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단9장).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말씀만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한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이 내 현실의 삶 가운데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까?
야곱은 얍복에서 벧엘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자 기도했습니다.
신앙이란 말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그 말씀을 삶속에서 날마다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은 우리에게 단순히 믿음만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현실화되기 위한 기도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말씀을 보고 믿기만 하지 그 말씀의 현실화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까?

6. 합3:3-19절에서 하박국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청년들이 텔레반에 잡혀 있습니다. 가족들도 떨고 있고, 또 온 국민들이 지금 긴장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왜 하필 거기에 갔느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박국의 상황과 같습니다.
지금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가게 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만을 보면 애가를 불러야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박국은 시기오놋에 맟춘 노래(댄스 리듬)에 따라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박국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는 애가를 불러야할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한 기쁨의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합3장 3-15절에 보면 여기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구원하실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7절 구산의 장막--애굽의 장막으로 해석합니다.
"8 여호와여 !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 강을 노여워 하심이니이까 ? 바다를 대하여 성 내심이니이까 ?
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지금 상황을 보십시오.
유다가 포로로 잡혀갈 상황입니다(지금 청년들이 포로로 잡힌 상황).
그런데 하박국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듯이 장차 제2의 출애굽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굉장한 믿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신앙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 갈 상황이라도 포로에서 구출해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렇게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해주실 것을 믿고 찬양하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16절을 읽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감사하고 친양했지만 여전히 현실을 바라볼 때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지금 가족들도 떨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속으로는 떨리지만 하박국은 어떻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이렇게 믿음으로 찬양하고, 믿은 사실들이 열매로서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비록 믿고 기도한 사실이 눈에 보이는 열매로서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제3의 출애굽으로 그들을 구출해주실 줄 믿고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도의 열매가 없더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감사해야합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노래합니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장에서 하박국은 성격이 낙천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의론자입니다. 그래서 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회의의 질문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판에 세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구출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에 근거해서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그는 성에 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3장에서 와서 이런 절망적 상황이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치 아무 일없는 사슴처럼 뛰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찬양하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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