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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심주제/언약과 하나님 나라

복음과 하나님나라(교제)

by 금빛돌 2011. 4. 9.

제1과: 창조의 목적-하나님나라 (본문: 창1장-2장 7절)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깨닫게 될 때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알 수 있다.

1.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창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동산을 창조하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는 에덴동산을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유토피아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살수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유토피아라면 하나님께서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겠는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에덴동산이라는 곳이 인간이 자기마음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곳인 것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이와같이 온 세상이 하나님 말씀대로 통치되며, 하나님 말씀대로 진행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질문/(연구). 창1장에서 태초의 세상이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다"는 표현을 찾아보시오.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창조때 나타난 하나님나라(창2:7)

그러면 태초에 창조하신 하나님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한다. 또한 이 나라의 백성들인 태초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창조 때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이해 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창조때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분은 먼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 땅과 에덴동산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세상을 자신의 기뻐하심을 따라 지으셨고 다스리시는 분이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에 사람들에게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이와같이 태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다스려지는 나라였다.

질문/(연구). 창1-2에서 하나님께서 태초의 사람들에게 하신 명령들은 무엇인가?

둘째, 처음 사람들의 모습

우리가 한 나라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그 나라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도 알아야하지만, 또한 그 주권자의 통치는 받는 백성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알아야한다. 창조 때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떤 모습인가? 이것은 창조 때 나타난 처음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피조물

성경에서는 태초에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진 피조물인 것을 말하고 있다. 요즈음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서 마치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창조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람이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진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진 피조물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과 인생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사람이 저절로 진화되어져서 만들어졌다고 항변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피조물 됨을 인정치 않고 자신이 인생과 세상의 주인인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사실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의지하고 순종해야되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현대의 사람들은 거의 부정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인생과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심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피조물이다.

문/1(묵상과 나눔).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얼마나 인정하고 계십니까?

문/2(나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도피주의적이냐? 현실을 도피하여 신에게로 도망하지 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당신은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2)하나님의 형상

성경은 태초에 나타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인간이란 하나님을 비추이고 반영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것에 대해서도 어떻게 말하고 있나? 현대인들은 인간이란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창11:4). 그러나 이것은 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의 최고의 가치는 그가 하나님을 나타내고 드러내는데 있다. 이것이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다. 사람이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야 할 존재이다(고전10:31).

문/. 당신이 드러내어야 할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가?

마치면서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다. 오히려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는 반대가 되는 죄악된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때문이다. 2과에서는 이러한 죄에 대해서 알아보자.



제2과: 죄의 의미-하나님나라에 대한 도전 (본문: 창3장)

시작하면서

1과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도전이 왔다. 그 도전자는 사탄이었다. 사탄은 인간을 끌어들여 창조 때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도전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탄이 하나님 나라를 도전하게 되었을까? 또한 사탄의 도전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오게 된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공부해보자. 이 공부를 통하여 우리에게 왜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1.사탄의 도전

사탄은 태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했다(사탄의 말-하나님이 정녕 그 나무실과를 따먹지 말라하시더냐, 그것을 먹는 날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3). 사탄이 사람을 시험할 수 있었던 사람의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된 자리(주로 섬기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동기였다. 사탄은 말하기를 "이것을 따먹는 날에는 선악을 아는데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사람을 유혹했다(창3:5).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땅에 선악을 판단하는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었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선악과였다. 선악과는 에덴동산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드러내는 나무였다. 그런데 이러한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태초의 사람들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태초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감추어지게 되었다(창3:22-24)

질문/(정리). 사탄이 선악과를 통해 사람을 시험한 의도가 무엇입니까?

2.죄의 본질

사탄의 시험에 사람이 넘어감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왔다. 그러면 사탄의 시험으로 이 땅에 들어오게 된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

첫째. 죄란 하나님께 대하여 불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탄은 그것을 따먹으라고 했다. 하나님의 경고를 바꾸어 이것을 따먹으면 "결코 죽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이러한 사탄의 시험에 태초의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죄인 것이다.

질문/(연구).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사탄과 인간에게서 어떻게 바뀌어지게 되었나?. 이것을 통해서 당신이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인가?

둘째. 죄란 사람의 피조물된 자리(하나님을 주로 섬기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과 같이 되어 이 땅과 인생의 주인노릇 하려는 것이다.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을 주로 섬기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과 같이 이 땅과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 땅의 주인은 당연히 자기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주인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인생을 움직여 나갈까 라는 것이 그들의 최대의 관심사이다. 이것이 바로 죄의 모습이다.

셋째. 이제 사람은 이러한 죄로 말미암아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독립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제한된 자원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죄다.

질문/1(연구와 나눔)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난 이러한 죄의 현상들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질문/2(묵상과 나눔). 지금 당신은 이러한 죄의 유혹을 받지 않는가?

3.죄의 결과

사탄의 시험과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태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가 깨어지게 되었다(창3:22-24). 이제 이 세상은 죄와 불의가 난무한 세상이 되었고,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세상이 되게 되었다. 이러한 죄의 궁극적인 결과는 사망 곧 지옥이다.(계21:8) 그런데 이러한 죄의 궁극적인 결과 이전에 죄와 사망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죽을병인 암에 걸려 있다. 이 암세포의 궁극적인 결과는 죽음이다. 그런데 암세포가 죽음으로 가기까지 암과 죽음의 증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 눈이 뛰어나온다든지, 혹이 나온다든지, 몸에 반점이 생긴다든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암의 증상들로 이 사람에게 암세포가 있으며, 또한 결국 이 사람은 죽게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죄 가운데 처해있고 궁극적으로 사망(지옥)가운데 처하게 되는데, 이러한 죄와 사망의 증상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와 사망의 증상들이 무엇인가? 죄와 사망의 증상은 태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바른 관계들의 단절(왜곡)로 나타난다.

첫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단절.

태초의 사람은 하나님을 주로 섬기고 그를 의지하고 순종하고(피조물),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하나님의 형상) 존재였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이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주된관계,의지고 순종하는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존재가 되게되었다.(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으로 더불어 기뻐하며 안식을 누리는 관계에서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고 항변하는 존재가 되었다(창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제한된 자원으로 살아가 보려고 하게 되었다.

둘째. 대인관계의 단절(왜곡)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었을 때 사람과의 관계도 바른 관계였다. 태초에 나타난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의 관계였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부부간의 관계도 깨어지게 되었다. 아담은 처음 그의 아내를 보고 "빼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했다(창3:22). 그런데 범죄한 후에는 "이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다"고 죄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돌렸다(창3:12). 창4장에 보면 형제의 관계도 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내가 아우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했다(창4:9). 또한 창6장에 보면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관계에 정욕과 폭력이 개입되게 되었다(창6:2.4).

질문/. 지금 우리 세대에 나타난 대인관계의 왜곡(단절)은 어떤 것이 있는가?

셋째. 대물관계의 왜곡

태초의 사람은 만물에 대해서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관계였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물질(돈)에 메이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땅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땅이 되게 되었다.(창3:17)

질문/1. 지금 우리 세대에 나타난 대물관계의 왜곡은 어떤 것이 있는가?

질문/2(연구). 이러한 죄의 현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한가?(창6:6,7,롬1:18)

질문/3(연구와 나눔).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서 볼 때 구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치면서
이 과에서 죄란 무엇인가를 공부했다. 죄의 본질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다. 죄의 최종적 결과는 사망(지옥)이다. 그리고 그 죄와 사망의 증상은 대신, 대인, 대물관계의 단절(왜곡)이다. 이렇게 죄와 죄의 결과와 증상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언급한 이유는 우리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비정상적인 죄 가운데 있고, 또 그 죄의 결과들이 어떠한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인간의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은 인간이 이렇게 죄로 말미암은 사망과 고난의 상태에 있기에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죄의 상태를 이해함으로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 과에는 이러한 관점에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공부하겠다.



제3과.구원이란 (본문-엡2:8-9)

시작하면서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죄와 그 죄의 결과들에서 구출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이란 처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할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이 구원이 가능한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굳이 일반 종교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교적 수행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은 모든 악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죄의 결과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 보려고 하는 것이 죄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결국 구원받는 것조차도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어떠한 조건과 노력으로도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을 찾아보자.
사64:6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고전1;21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사람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만 있으면 사람의 죄 문제를 담당 할 수 없다. 또한 만일 예수님이 단순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질문/1. 다음 구절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보시오.

질문/2. 다음 구절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시오.

3.예수님께서 하신 일-십자가와 부활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막10:45이다(참.사53:12).

성경을 찾아보자.
막10:45 인자(예수)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도리어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려함이니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사람을 위해 대속물(대신하여 죽는 제물)이 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 세레 요한이 주는 세례는 죄인이 받는 세례로서 회개와 죄씻음의 증거로 받는 세례였다. 예수님이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처럼"되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외쳤다. 또한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많은 애매한 고난을 받으시고 죄인취급을 당하셨다. 이것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세상사람들의 죄때문이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는 제물이 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으심은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왔던 것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더 이상의 접촉점이 없었다. 죄인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희생제물을 통한 제사제도였다. 제사에 쓰여진 제물은 제사장이 안수하고 하나님께 바친다. 제사장이 안수한다는 것은 그 제물과 제사장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즉 그 제물이 제사장을 대신하여 죽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제사장은 또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백성-제사장-제물) 구약시대의 희생제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죄를 덮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보시지 않도록 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제사제도에 나타난 제사장과 희생제물(제물의 피를 통하여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바로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나오는 제사장과 제물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대신(대표)하여 죽으신 분이시다. 또한 그의 피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를 덮기 위한 것이다(카파르-구원). 또한 그의 피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렸던 것이다(화목제물). 이로 인해 사람의 죄로 말미암은 난제들이 해결되고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십자가사건 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입증시켜주는 사건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타나 자기가 구원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역설하고 죽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음으로 끝이 났다고 하면 그의 모든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은 분명히 역사적인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또한 그분은 역사상 유일하게 부활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이 땅의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건이다. 이 부활사건을 통해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임을 많은 사람에게 증거하게 된 것이다.

질문/1(연구). 대학가에 있는 거짓메시야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위의 사실을 두고 말해보시오.

질문/2.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당신의 말로 고백해보시오.

마치면서

오늘은 기독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사실을 다루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이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다.



제4과 구원과 복음 (본문: 행2:36)

시작하면서

3과에서 구원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죄에서 구출함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다(고전15). 그런데 복음의 의미가 단순히 우리의 죄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이란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주가 되신 사실도 증거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구원과 복음에 관한 더 풍성한 의미를 공부해 보자.

1.복음이란

초대교회당시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들이 증거한 복음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이 땅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었다(행2:36).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그런데 복음은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복음이란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주가 되신 사실도 증거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어떻게 해서 이 땅의 주가 되셨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십자가는 실패와 저주의 상징으로 보인다. 십자가는 당시의 죄수가 지는 사형틀이었다. 그래서 이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이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보게된다. 이 십자가는 사탄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이 범죄함으로 사탄이 이 세상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 왕노릇하게 되었다.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짖도록 하고 그 값으로 사망을 선물로 준다. 이것이 사탄의 통치방식이다. 이 세상에서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
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대한 사탄의 가장 큰 공격무기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렸다. 이로서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이 땅 모든 권세를 발아래 복종케 하시는 주가 되셨다(빌2:8-11). 여기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일차적으로는 구원받은 자에게 해당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세상의 주가 되신다(엡1:20-22).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주가 되셨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가(주권, 다스리심) 이 땅에 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것이 복음이다(막1:14,15)

2.바울이 이해한 복음

처음에 바울은 예수님과 그를 증거하는 자들을 핍박했다. 왜냐하면 예수를 증거하는 자들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라고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이었다. 신명기서에 보면 누구든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나무)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증거자들이 그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라고 하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었다. 유대인들이 주로 고백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를 핍박했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졌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다. 사도행전에서 이 사실을 여러번 증거하고 있다(행9:1-18,26:12-18). 다메섹에서 본 예수님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시고 또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이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실행하는 자리) 계신 분이라는 것을 바울이 직접 보게 된 것이
다. 이 다메섹의 체험을 통해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지심은 실패와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처리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협하는 사탄의 권세를 깨드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일뿐 아니라 주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질문/(연구).바울의 서신 초두 인사말에 예수님에 대해서 "주"라고 묘사한 부분을 찾아보시오.

3.구원과 복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이 땅의 주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만을 강조하고 예수의 주되심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다보니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너무 편협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자일 뿐 아니라, 이 땅의 주이심을 고백해야한다. 이것이 복음의 참된 의미이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고, 이 땅의 주가 되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중거할 때 예수가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이 온 세상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도 증거해야 한다.

질문/1(연구와 나눔).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에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당신은 예수님 께 대해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

질문/3. 강영안교수의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본 복음화"(S.F.C.간행)을 읽어보시오. 이 책을 통해서 본 강령에 나타난 복음화의 의미를 말하시오

마치면서

이 과에서는 복음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의 주인이 되신 기쁜 소식이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예수의 주되심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자.


제5과 구원과 하나님나라 (본문: 막1:14,15)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다(막1: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이다. 구원이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중심으로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의미를 공부해보자.

1.하나님 나라라는 말의 뜻

우리는 대개 '하나님 나라'라 하면 우주공간 저편에 있는 열두진주문 황금보석이 있는 나라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어떤 장소나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다.(물론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공간적인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하심', 또는 '하나님의 주권을 행사하심'이라는 말이다.


2.하나님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장차 올 나라도 되지만(미래성), 이미 왔다(현재성)라고 선포하셨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하나님나라 미래에 임하여질 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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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나라 예수님의 초림 예수님의 재림(역사적 종말)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단순미래 적인 사건으로만 이해했다. 그들은 이 세상 역사의 끝이 오면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미래의 하나님 나라도 인정하셨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벌써 왔다고 선포하셨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현재성과 미래성을 가진 나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강조를 두셨는가? 그것은 현재성이다. 예수님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곧 온다, 반드시 온다, 기다려라"는 식으로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장차 올 나라에 대해서는 많은 묘사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보다 현재성에 더 촛점을 두어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에 동참해 있지 않은 사람은 미래에 임하여질 하나님나라에 동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서 미래에 임하여질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 사람은 과연 미래에 임하여질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에 동참해 있지 않으면 미래에 임하여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
다. 또한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미래의 하나님나라를 자동적으로 보장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것을 요청하셨다.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질문/1.(정리)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과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나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당신은 지금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나라안에 들어와 있는가?

질문/2(정리). 예수님은 왜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나라를 강조하셨는가?

3.현재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임하여졌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비유 중에서 제일 중요한 비유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다.(마13장:44) 밭에 감추인 보화는 겉으로 보면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밭을 소유하여 땅을 파보면 보화를 확인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도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임했다는 것은 육신 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안에 있는 우리는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임하여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확인 할 수 있겠는가?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현재에 임하여 졌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살던 죄악된 세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계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을 철저히 간섭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분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1(연구).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질문/2(묵상과 나눔).당신의 삶 가운데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안식을 누려나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임하여졌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대표적인 비유가 잔치집의 비유다. 잔치 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잔치 집은 풍요와 기쁨, 평안과 안식을 나타낸다. 이것이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임하여졌다는 사실은 잔치집과 같은 풍요와 기쁨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여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안에 들어온 자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풍요와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현재에 보이지 않지만 확인할 수 있다.

질문/(묵상과 나눔). 당신은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나라의 풍요와 평안과 기쁨을 얼마나 누리고 있는가?


마치면서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더 풍성히 누려 나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풍요로움과 안식과 기쁨을 더 풍성히 누리기를 기도한다.



제6과 구원과 믿음 ( 본 문: 롬3:21 )

시작하면서


우리는 4과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우리를 위한 구원사건임을 공부했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될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 구원의 사건을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1.믿음에 대한 오해

기독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믿음이다. 성경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식 없이 무조건 믿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우다. 이러한 믿음관은 일반 종교인들의 믿음관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무조건 믿는다는 그 사실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한 사실과 진리에 근거해서 믿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사실(의미)이다. 우리가 이 사실(의미)을 지식적으로 먼저 듣고 깨닫지 못하면 어떤 믿음이라도 발생 할 수 없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생각해 보시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못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을 깨닫게 해줄 때 비로소 믿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만일 아직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공부해 보라). 그런데 믿음에 관한 두 번째 오해는 이렇게 지식만이 있으면 무조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가 마 8장에 나오는 사탄의 경우이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탄을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 그런데 마 8장을 보면 사탄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말한다. 이와같이 사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요구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우리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그 사실을 나를 위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질문/1(정리).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말로 정리하여 말해 보시오.

질문/2(나눔). 예수님이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가?


2. 믿음의 필요성

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할까? 이것에 대해서 로마서에 증거하는 말씀은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을 찾아보자.
롬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
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장을 보면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또한 사람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증거하는 바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롬3:10) 이와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가운데 있음을 바울은 증거하고 있다(롬1:18, 롬3장1-20). 그러나 이제 율법으로 의로와 지려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있음을 바울이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오해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주는 것 자체를 의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의 믿음이 곧 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율법으로 의로와 지려는 것 외의 믿음(율법 외의 믿음)이다. 이와같이 믿음이란 인간의 공로가 철저히 배제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의 뒤에는 전치사 'in'이 항상 따른다. 그리고 그 전치사 뒤에는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온다.(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나온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음을 믿는다'라는 말이다(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일 안에 있음을 믿는다라는 말이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내가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내가 믿음으로 연합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모든 공로가 나의 공로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유일하게 도달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다. 내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순종하심이 나의 순종이 되었고,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는 말이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
가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도 나의 부활이 되었음을 믿는 것이 믿음의 역할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라고 칭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찾아보자.
롬3:23-28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의)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값을 지불해 줌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나려 하심이라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질문/1(정리). 롬3:23부터 28을 읽어보고 위에서 나타난 믿음의 필요성을 한번 더 확인해 보시오.

질문/2(나눔). 당신은 예수님의 모든 공로(의,십자가에 죽으심, 부활하심)이 당신의 것이 되었음을 믿는가?


마치면서

단순히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십자가와 부활에 담긴 구원의 의미를 깨닫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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