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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질문과 답변(말1:1-3)

by 금빛돌 2013. 2. 1.

이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으로서 이스라엘백성들의 질문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답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말라기서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가?(1:2)” 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이 말라기서의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겠습니다. 말라기서의 기록 시기는 3차 포로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된 후 느혜미야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은 다시 신앙이 헤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포로 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이 되었고, 느혜미야를 통한 신앙의 부흥이 있었지만 그들의 상황을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인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2절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내가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2절 중반절에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가장 큰 근거는 형에서를 버리고, 동생인 야곱을 선택하셔서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형 에서가 구원의 축복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떨 때 하나님 과연 나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질문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바랐던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또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힘이 들 때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이런 상황가운데서 나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가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하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삼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과 근거를 오직 육신적인 형편의 잘 됨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육신의 형편에 좋지 않을 때 하나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제일 중요한 근거는 구원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랑만을 가지고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아멘). 우리에게 양이 없고 밭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1:6)라고 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읽지는 말고 보기만 하십시오)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시 제사장들에게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백성들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멸시한다고 하십니까?” 라고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답변을 하십니까?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제물과 또 최고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그들 자신을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립니다. 또 눈먼 제물과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으며 주의 상을 경멸하였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 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물들을 불태우면 없어지니까 좋은 것을 드리나 병든 것을 드리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좋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또 이들이 이런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페르시아 총독보다 더 못한 존재로(8)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절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을 아주 번거럽고 귀찮고, 우스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총독에게는 이런 예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만일 총독의 생일 잔치였다면 결코 이런 예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총독보다 못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느냐 고 반문하십니다.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우리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도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너희가 왜 나를 멸시하고 무시하느냐?” 그때 우리는 하나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우리가 주님을 멸시한다고 하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대통령에게 초대를 받아서 청와대 만찬에 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모습과 지금 너희가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비교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대통령 앞에서는 모든 정성을 다하는데, 너희가 과연 그 대통령보다 나를 더 귀중히 여기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식합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 의식하십니까?

/혹 우리의 예배가 단순히 형식이며 습관이며 외식이 아닙니까? 또 예배를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번거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또 아쉬운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저는 우리교회연세 드신 분들의 예배의 모습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예배시간에 30분전에 나와서 앉아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 예배 전 기도회에 나와서 열심히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지난주에 어떤 위원회의 회계를 맡으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감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의 형편을 너무 잘 아는데,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볼 때 정말 우리교회에 비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또 이스라엘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세 번째 질문은 정의의 하나님이 과연 어디에 계시냐는 것입니다.

217절입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구약시대나 지금 이 시대 하나님께 대한 질문 가운데 제일 많은 것이 이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 교만한자를 멸하신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라기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모든 악을 행하는 자를 좋게 보시며, 또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쁨이 되는 분이 아닙니까?”라는 말을 합니다.

또 그들은 정의의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답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십니까?”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먼저 어떻게 답변을 하십니까?

2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우리가 만일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하나님은 왜 너희가 말로 나를 괴롭게 하느냐고 답변하십니다.

또 하나님 당신은 과연 정의로우신 분이십니까? 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3:5. 내가 (악인을)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악인의 심판을)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박국서에서도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악인을 멸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은 악인은 벌하시고, 의인은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무조건 복을 주시리라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악인을 반드시 벌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또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네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입니다(2:8).

2: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 말씀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은 2: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십일조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너무도 당연히 자신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었고, 또 예루살렘성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형식적이지만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돌아와 있는데, 어떻게 돌아와야 한다는 말입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28절에서 십일조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서 어떻게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서 어떻게 내게 복을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넘치면 남은 돈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란 내 모든 소유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3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예수님은 마귀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에 대한 간증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처음 십일조를 드리고 난 다음에 내가 신앙의 작은 언덕을 넘었다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우리 신앙의 작은 언덕과 같습니다. 그 언덕을 넘으면 이제 또 다른 산도 얼마든지 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산을 하나씩 넘을 때 마다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의 평원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우리는 말로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첫걸음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학생 때부터 10만원 세배 돈 받으면 만원부터 십일조를 드려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부분에 있어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5)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다섯 번째 질문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3:13b)입니다.

3:13절부터 보면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죄를 회개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우리도 현실가운데서 이렇게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또 내 죄를 두고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내 삶에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내 주위를 보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멸하신다 하셨는데, 교만한 자가 더 잘 되지 않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가 더 번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심판을 받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우리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하였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들이 느끼는 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또 상황가운데 보이는 대로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자,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현실가운데 내가 느낄 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내가 현실 가운데 도무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살아계십니다. 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현실가운데 하나님은 악을 용납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악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 삶 가운데 고난 불행 상처 이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셔서 반드시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히 나를 따를 것입니다우리가 어렵고 힘든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끼는 대로의 하나님, 상황가운데 보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입술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특별한 소유-즉 보배로 삼아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친 아들 예수님에게 대하듯이 우리를 더 가까이 대면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반드시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박영돈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하나님과의 인터뷰라는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과 인터뷰하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구?"

", 시간이 허락하신다면요" "내시간은 영원이니라." "뭘 묻고 싶으냐?"

"인간에게서 가장 놀랍게 여기시는 점은 어떤 것들이세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어린시절이 지루하다고 안달하며 서둘러 어른이 되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되면 다시 어린애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나서는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번돈을 다 써버리는 것"

"미래에만 집착하느라 현재를 잊어버리고 결국 현재도 미래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마침내는 하루도 못 살아 본 존재처럼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것이지"

하나님은 내 손을 잡으셨다. 그렇게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여쭈었다.

"부모로써 당신의 자녀들에게 줄 교훈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셨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좋지 못하다.

또 누군가로 하여금 자신들을 사랑하게끔 만들 수 없고. 오직 스스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수밖엔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느니라."

"가장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부자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데는 단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서로 극진히 사랑하면서도, 단지 아직도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두 사람이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서로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로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나(즉 다른 사람이 먼저 용서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나), 너희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느니라."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밖에 또 들려주실 말씀은요?"

내가 겸손하게 여쭙자

"늘 명심하여라,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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