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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연구/학개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권(학1:1-15)

by 금빛돌 2012. 11. 21.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을 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세운 우선순위에 근거해서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는 삶을 산다. 하기 쉽고 재미있는 일보다는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세워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와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내 삶에서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만일 우리가 현실에 메여서, 또 바쁜 삶 가운데서 빠져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지 않는다면, 바쁘기만 하지 공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살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삶이 공허하지 않고, 또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가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가 잡혀가 있다가 70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137편에 보면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 예루살렘성전을 생각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강가에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놓았습니다. 그 말은 바벨론에서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히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성전을 다시 짖고 거기서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음으로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다가 사마리아사람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갔을 때 바벨론사람들과 같이 결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은 성전건축에 이들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 일을 방해했고, 나중에 페르시아왕인 아닥사스다 왕에게 모함을 해서 성전건축을 금지하는 조서를 내려져서 성전건축이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건축하다가 중단된 16년이 지난 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닥사스다 왕 뒤에 페르시아의 새로운 왕인 다리오 왕 2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와 총독인 스룹바벨과 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절과 2절입니다.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기서 재미있는 말씀은 2절에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을 내 백성이라 하지 않고 이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유다백성들의 모습이 하나님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유다백성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다백성들의 핑계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박해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으로 성전건축이 금지가 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페르시아의 정책은 유다백성만 아니라 모든 정복국가의 정치와 종교의 자치권을 부여해주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이 죽은 이후에 다리오 왕에 와서는 성전건축을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은 유다백성이 이제 더 이상 성전건축 할 마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왜 그들이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없었습니까?

그 이유가 3절과 4절에 있습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9절 하반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b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이것은 유다백성들의 삶이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그들의 마음의 우선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다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모했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그들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이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보다 그들의 집을 짓는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더 두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말씀하는데, 이 판벽한 집이란 벽과 지붕에 각종 장식을 한 화려하고 안락한 저택을 말합니다.

/여기서 16년 동안 짓다가 황폐하게 된 성전과 각종 장식을 한 체 화려고하고 안락한 저택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 왔을 때 그들의 집도 다 무너지고 없어 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집도 지어야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들의 무너진 집을 짓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내 집안은 아무렇게나 되어도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작은 교회로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냥 자신의 무너진 집을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그 집은 지나치게 화려하게 짖고 장식하면서도--황폐하게 된 하나님의 성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삶의 우선권이 잘못된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5절과 6절입니다.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이렇게 삶의 우선권이 바로 되지 않았을 때, 그들이 아무리 수고 노력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삶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이것뿐만 아닙니다. 10,11절을 보겠습니다.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여러분 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우선권이 바로 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만 허무한 삶이 아니라 이 세상과 자연세계에도 재앙이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신 목적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이 삶의 우선권을 바로 하면 그들도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이중적 축복이라고 합니다. 즉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우선권이 바로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 때문에 이 세상도 자연세계에도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이룬 것 같은데, 허무합니다. 그리고

정치, 정치 경제, 교육, 농업 모든 부분에 있어서 먹구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조류독감 때문에, 지금은 구제역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합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삶의 우선권이 바로 되지 않아서---우리 때문에 이 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7,8절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삶의 우선순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펴볼찌니라--

즉 자신의 삶의 우선권이 어디 있는지 자신의 삶을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8절에 보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내가 기뻐하고, 영광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교회를 새로 건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말씀으로 적용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근거해서 오늘 여러분에게 건축헌금을 작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2장에 보면 성전을 다 건축하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의 노인들이 불평을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건물이 솔로몬성전과 비교했을 때 너무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학개가 어떻게 말합니까?

이 성전의 참된 영광은 눈에 보이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다고 말씀합니다(학개2:2-5).

--그래서 우리는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합니까?

그것은 네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람은 단순히 겉모양과 모습만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하게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정확하게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가 있는 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어디에 가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의 일상 먹고 사는 문제에 있습니까?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 그래도 지금 나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하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반문을 하실지 모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나는 네가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도 너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네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 때 어떻게 살아갈까 내 진로가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를 더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고 사는 문제는 내가 책임져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이 중요하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유다백성의 삶이 하나님의 중심의 삶으로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해주십니까?

앞에 보면 유다백성을 이 백성이라고 했는데, 13절에 보면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십니다.

13. 그 때에(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될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삶의 우선순위로 바로 되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함께 하시면. 하나님 함께 해주시면 우리가 수고한 것 이상이 되게 해주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면 우리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삶이 동양화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양화라고 생각하십니까? 동양화입니다. 서양화는 여백의 하늘도 색깔을 칠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것을 나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그려지는 삶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양화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동양화의 삶입니다. 동양화는 여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최선을 더하여 산을 그립니다. 그런데 내가 최선을 다하여 산을 그리지만 내가 인간적인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여백으로 하나님께 남겨 놓는 삶이 동양화의 삶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열심히 노려했음에도 노력한 것보다 못한 삶이 있습니다. 바로 삶의 우선수위가 바로 되지 못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백성의 삶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한대로만 얻어지는 삶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은 노력한 것 이상을 얻는 플러스알파의 인생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여백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여백을 완성해서 우리의 삶이 플러스알파의 삶이 될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동양화의 삶, 내가 노력한 것에 하나님께 플러스알파를 더해주시는 플러스 알파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삶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 성경중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중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이 플러스 알파의 삶이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나라의 경제는 더 불안하고 어렵습니다. 특히 요즘 청년들은 무엇을 하든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이렇게 삶이 어려우니까 우리는 더욱더 먹고 사는 일상적인 삶에 더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악착 같이 일만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삶이 아닙니까? 또 무언가 얻었다 해도 공허한 삶이 아닙니까?

/이때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삶이 어려울수록 삶속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으로 돌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문제보다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해야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첫째로,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된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일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은 단순히 성전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은 그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 성전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삶,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하는 삶이 우선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육신의 삶이 어렵고 힘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를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마시가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가운데 교회가운데 그 어떤 성도라도 3주 연속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신앙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히 말씀입니다.

그런데 또 단순히 예배의 자리에 형식적으로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가 있는가? 가를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이 시간에 이 세상의 그 어떤 염려 걱정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우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여러분들의 삶에 최우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의 삶의 최고봉이 되신 하나님에게 온전히 사로잡힐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직 내 심령에 누구에 대한 원망 불평,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염려보다 오직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우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된다는 우리가 육신보다 영혼에 더 우선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육체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사는 만큼 영혼의 건강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육체는 건강하고 화려한데, 내 영혼은 황폐하지 않습니까?

내 육체를 위한 투자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데, 내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전혀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 된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건강도 진단해야하듯이 영혼의 건강도 진단해야합니다.

영혼의 감기-기도하면 졸린다//영혼의 독감-찬양이 은혜가 되지 않는다//영혼의 죽음--말씀이 전혀 내 영혼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렇다면 빨리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하여, 우리의 영혼의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하나님중심의 삶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소유보다 존재에 더 우선된 가치를 두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종말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기준은 절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또 우리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느냐가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 너희가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이 다 불에 타서 없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삶이 되어야 마땅하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 삶 가운데 소유보다 존재, 즉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더 우선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된다는 말은 내가 하는 어떤 일보다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랑하는 일에 더 우선하는 가치를 두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가 돌아봐야할 사람들의 고통소리가 우리에게 들립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눈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영혼들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이 되는 사람은 단순히 교회 건물의 외양을 보는 자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영혼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을 돌아보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쁘고 분주한 우리의 삶에 쫒겨서 살아가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우선권, 삶의 더 중요한 가치를 쫒아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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